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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이 지금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신다(12절). 이는 하나님이 자비하시고 인애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13절). 그는 그 백성이 통회하며 돌아올 때 그 백성을 내치지 않으실 것이다(14절). 요엘은 이어 이스라엘에게 선포한다. 금식을 선포하고 백성을 모아(15-16절) 함께 하나님 앞에 자복하라(17절).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고 응답하실 것이다(18절). 지난 본문까지 무시무시한 심판이 이루어질 "여호와의 날"을 예언한 요엘은, 오늘 본문부터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 해결책은, 어찌 보면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돌아오라! 본문은 반복법으로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한다(12절). 그리고 온 백..
이제 "여호와의 날", 이스라엘을 침공할 군대의 모습이 묘사된다. 하나님은 말처럼, 기병처럼 달리실 것이고(4절), 그 군대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쳐들어올 것이다(5절). 백성들은 그 앞에서 겁에 질릴 것이다(6절). 그들은 잘 훈련된 정병들로서(7-8절) 능숙하게 도시를 점령할 것이고(9절), 그 앞에서 하늘과 땅마저 그 기운을 잃을 것이다(10절). 이 여호와의 날을 누가 당해낼 수 있겠는가(11절)? 오늘 본문을 요약하는 구절은 11절이다. 본문은 11절의 표현대로 "여호와의 날"이 얼마나 무시무시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이 친히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오실 것이고, 그 군대는 "크고" "강하"다. 본문은 하나님을 가리켜 말처럼, 기병처럼 뛰신다고 묘사한다(4절). 이는 힘 있고 위엄 있는 모..
마지막 큐티를 올린 지 한 달 정도가 지났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난번에 멈춘 곳에서부터 다시 큐티를 시작하고자 한다. 요엘 1장은 끔찍한 재앙이 임해 황폐해진 이스라엘 땅을 보며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여호와의 날"이 임할 것이라는 예언이 처음 등장했다(욜 1:15). 오늘 본문에서는 다시 한번 여호와의 날이 언급된다(1절). 이 날은 이스라엘 주민들이 다 떨 만한 두려운 날이요(1절) 전무후무한 "어둡고 캄캄한 날"이다(2절). 이 날이 지나고 나면 에덴동산 같았던 땅이 불에 타 황폐한 들이 되어 버릴 것이다(3절).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본문은 그 날 임할 재앙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이 날에 "많고 강한 백성"..
마지막 외침이다. 예언자는 "제사장들", "제단에 수종드는 자들",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을 향해 외친다(13절). 그들은 굵은 베 옷을 입고 슬피 울어야 한다. 이는 더 이상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13절). 그리고 이들은 사람들을 성전으로 모아 함께 하나님께 외쳐야 한다(14절). 본문은 이어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음을 선포한다(15절). 이 날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15절), 먹을 것이 끊어지고 성전의 기쁨마저 사라지는 날이다(16절). 본문은 17-18절을 통해 그림 언어로 이 날의 비참함을 묘사한다. 곡식도 시들고(17절) 가축도 말라가는 때(18절)이다. 이제 예언자는 하나님께 부르짖는다(19절). 그는 하나님께 이 날의 참혹함을 탄원한다(19-20절). 본문이 보여..
성전 파괴를 심판의 정점으로 묘사하신 예수께서는, 나무의 변화를 보고 여름이 가까운 것을 알듯이(29-30절),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징표라고 말씀하신다(31절). 그러면서 이 일들은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며(32절) 이 말씀의 확실성을 한 번 더 강조하신다(33절). 그리고 제자들에게 스스로 조심하라는 당부를 주시며(34-35절)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가르치신다(36절). 오늘 본문 역시 성전 파괴와 주님 재림의 이야기가 뒤섞여 있다. 성전 파괴는 심판의 정점인 동시에(눅 21:22), 재림의 징조이다(31절). 그리고 주님의 예언(32절)대로 이후 백 년이 지나지 않아 성전 파괴는 현실이 되었다. 이제 징조가 다 나타났으니 주님이 곧..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 끝에 대해 예언하신다. 예루살렘이 군대에 둘러싸이면(20절)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다(22절). 어디에 있든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21절). 특히 임산부들과 갓난아기를 데리고 있는 엄마들이 큰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23절). 이스라엘 백성은 죽거나 끌려갈 것이고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에게 밟힐 것이다(24절). 하늘과 바다에 징조가 나타날 것이고(25절) 사람들은 공포에 시달린다(26절). 그 때에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다(27절). 따라서 이런 징조를 보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28절). 오늘 본문은 다소 어렵다. 예루살렘의 멸망(20절)과 주님의 재림(27절)이 동시에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은 마치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날이 예언이 모두 성취..
예수께서는 비유를 하나 말씀하신다(9절).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었다(9절). 그 자신은 타국에 가 있다가 세를 거두기 위해 종들을 보냈는데, 농부들은 그 종들이 오는 족족 때려서 쫓아냈다(10-12절). 그러자 주인은 마침내 아들을 보냈는데(13절) 농부들은 욕심에 눈이 어두워 그를 죽이고 만다(14-15절). 이제 그 주인은 달려와 그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이에게 넘길 것이다(16절). 본문은 그 의미를 바로 풀어준다. 이 비유는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을 가리켜 하신 비유였다(19절). 즉 여기서 주인은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포도원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맡겼는데, 하나님께서 세를 거두러 여러 종들, 즉 예언자들을 보냈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재림에 관한 말씀(눅 19:11-27)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해 가셨다(28절). 이제 예루살렘 근처의 감람원에 오셨을 때 제자들을 보내사(29절)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어 오게 하셨다(30절). 그리고 누가 묻거든 주가 쓰신다고 답하라고 명하셨다(31절). 말씀하신대로 제자들은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발견했고(32절) 그 임자들의 질문(33절)에 명 받은 대로 답하여(34절) 나귀를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35절). 예수께서는 그 위에 타셨고(35절), 그 가시는 길에 사람들이 겉옷을 깔며 환영했다(36절). 비록 누가복음이 구체적인 인용을 하고 있지 않지만, 본문은 스가랴서의 유명한 예언을 그 배경으로 한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
예수께서는 삭개오의 구원 사건(눅 19:1-10) 이후에 바로 이어 새로운 비유를 주신다. 본문은 그 비유의 목적이 두 가지임을 밝히고 있다(11절). (1)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다. 즉, 이제 예수께서 사역을 마치시고 세상을 떠나실 날이 가까웠다는 말이다. (2) 한편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잘못된 이해이므로 바로 잡을 필요가 있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으려고 먼 나라로 향하면서(12절), 열 명의 종에게 한 므나씩 주면서 장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13절). 그리고 그가 돌아와서 종들을 불러 정산을 한다(15절). 첫째는 한 므나로 열 므나를(16절), 둘째는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18절) 만들었기에 주인이 그들을 칭찬하며 고을을 내주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여쭙자,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며(20절) 공간적으로 규정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대답하신다(21절). 그러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다(21절).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의 나라와는 다른 종류의 것임을 암시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리키는 대상이 물리적인 실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그 자체임을 나타낸다. 또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인자의 날"에 대해 가르치신다(22절). 그 날 많은 이들이 인자가 어디에 있다고 말하겠지만(23절) 인자는 전세계에 드러나는 형태로 오실 것이다(24절). 하지만 그 전에 버림 받으셔야 한다(25절). 이는 초림과 재림을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초림 때 고..
어떤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갈릴리 사람들이 제사 중에 살해 당한 사건을 이야기한다(1절). 맥락으로 볼 때 당시 유대에서는 이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벌로 이렇게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생각이 팽배했던 모양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특별히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2절) 누구나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3절). 마찬가지로 무너진 망대에 치어 죽은 자들도 더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니다(4절). 누구나 회개하지 않으면 망할 것이다(5절). 그리고 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할 것이라는 말씀을 부연하기 위해 비유를 주신다(6절). 어떤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3년 동안(7절) 열매를 구했지만 열매를 얻지 못했다(6절). 그는 포도원지기..
7월 11일에 누가복음을 보기 시작했으니 이제 석 달 되었다. 오늘부로 12장이 끝나니 정확히 절반이다. 앞으로 석 달 후에는 누가복음도 끝난다는 이야기다. 복음서를 깊이 들여다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작업이다. 예수의 말씀이 이어진다. 예수께서는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다고 말씀하신다(49절). 이 표현은 세례 요한이 예수를 가리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며, 알곡을 타작하시면서 나온 쭉정이는 불에 태우실 것(눅 3:16-17)이라고 하신 말씀과 유사하다. 따라서 심판을 선포하신다는 의미로 유추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예수께서는 그 불이 아직 붙지 않았다고 하시는데(49절),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 예수께서는 당신이 받을 "세례"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70명의 사람들을 세우사 둘씩 짝지어 당신이 가시는 길에 앞서 파송하셨다(1절). 그러면서 추수할 것은 많지만 일꾼이 적기에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청하라고 말씀하신다(2절). 이는 이들에게 직접 하신 말씀이라기보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자들에게 (그리고 누가복음의 독자들에게) 하나님께 더 많은 전도자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들이 이리 가운데로 가는 어린 양들과 같다고 비유하시며(3절), 아무런 재산 없이 누구에게도 문안하지 말고(4절) 그저 영접하는 집에서 주는 것을 받으며 머무르라고 하신다(5-7절). 영접하는 동네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치되(8-9절), 영접하지 않는 동네에서는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백성들은 요한이 그리스도가 아닐까 기대했다(15절). 요한은 그들에게 자신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 오신다고 말했다(16절). 요한이 직접적으로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한 것은 아니지만, 맥락상 그리스도는 따로 오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요한은 그 분에 대해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요(16절) 키를 들고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는 분(17절)이라고 묘사하였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심판의 주재이심을 드러낸다. 요한은 복음을 증거(εὐηγγελίζετο)하였다(18절). 앞의 본문을 살펴보건대, 이 "복음"은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왔고 그리스도께서 그 심판을 대행하실 것이라는 내용으로 보인다. 하지만 분봉 왕 헤롯은 요한의 책망을 견디지 못하고(19절) 요한을 하옥하였다(20절). 헤..
이제 하나님은 심판의 날을 선포하신다(1절). 그 날에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를 전부 태워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신다(1절). 이는 동일한 단어가 사용된 말 3:15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유다 사람들은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들이 번성하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는지 반문했다. 하나님은 그런 유다 사람들에게 그들이 멸망할 날이 있음을 말씀하고 계신다. 반면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치료의 광선이 약속되었다(2절). 그들은 "악인을 밟을 것"인데(3절), 이는 악인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의미한다. 이 말씀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가 등장하는 말 3:16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기억하시고, 그 심판의 ..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유다의 불만을 언급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헛되다고 말하며(14절) 범죄하는 자들이 번성하는 것을 한탄하였다(15절). 하나님은 이것이 "완악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13절). 다시 한 번 말라기 2:17의 주제가 변주되어 등장한다.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로 보신다. 이는 이 질문 안에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전과 동일하다. 그는 마침내 오셔서 의인과 악인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하는 말을 들으시고, 그들을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סֵ֣פֶר זִכָּר֤וֹן)"에 기록하셨다(16절..
하나님은 유다가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라는 말로 하나님을 괴롭혔다고 하신다(17절). 유다 사람들의 이 질문은 악인들이 번성하고 성공하는 것에 대한 의문으로, 결국 하박국의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합 1:13)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하박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모든 것을 심판하실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자가 하나님의 길을 준비할 것이고, 하나님이 그 성전에 임하실 것이다(1절). 이 예언은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 왔다(막 1:2). 즉, 세례 요한은 "길을 준비"했고,..
오늘부터 말라기를 묵상한다. 말라기는 기록 연대와 저자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책으로, 선지자의 이름인 말라기(מַלְאָכִי)조차 '내 사자'라는 뜻을 담고 있어 고유 명사인지가 불분명하다. (말 3:1에서는 동일한 히브리어 단어를 "내 사자"로 번역하고 있다.) 대개 말라기는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난 이후, 어쩌면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시대보다도 더 훗날에 기록된 책으로 보지만, 나는 구체적인 시대적 배경을 상정하지 않고 본문을 묵상해 나갈까 한다. 하나님은 말라기, 혹은 어떤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경고"를 주신다(1절). 이 "경고"라는 히브리어 단어(מַשָּׂ֥א)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사용되는데(사 13:1, 합 1:1, 슥 12:1 등), 그 이후 따라오는 글에서 특별히 미래에 있을..
지난 본문까지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면 응당 형제자매를 사랑해야 한다는 권면을 썼다. 이제 요한은 이어 사랑은 심판 날의 "담대함"을 준다는 근거를 제시한다(17절). 앞서 요일 2:28과 3:21에서도 요한은 동일한 표현(παρρησίαν)을 썼는데, 특히 2:28의 경우에는 맥락도 비슷하다. 오늘 본문은 이제 이 말을 부연한다. 우리가 주님처럼 담대할 수 있는 것(17절)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18절). 즉 참된 사랑을 안 사람이라면 더이상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심판 날"에도 담대할 수 있다. 요한은 이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재차 던진다(19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순조롭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잘 정착한 에스라에게 방백들이 나아왔다(1절).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현지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이는 죄를 범했다고 보고했다(2절). 에스라는 옷을 찢으며 극심한 슬픔을 표현했고(3절), 이 죄를 우려하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에스라에게 나왔다(4절). 에스라는 그들 앞에서 하나님께 탄식하며 기도했다(5-15절). 오늘 본문의 핵심은 "혼합"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면서 현지인들과 통혼하지 말라고 명하셨다(11-12절; cf. 신 7:1-4).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여호와 신앙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cf. 왕상 11:2). 하지만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1절) 그들과 통혼하여 "거룩한 자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