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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다음 날 아침, 여인들은 예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기 위해 무덤에 찾아갔다(1절). 그런데 무덤 입구의 돌이 굴려져 있었고(2절) 무덤 안에 시체도 없었다(3절). 이들이 이를 보고 근심하고 있는 찰나 천사 둘이 나타나(4절) 예수의 부활을 증언했다(5-7절). 그제서야 예수의 말씀을 기억한 그들은(8절) 돌아가 제자들에게 이를 알렸고(9-10절), 제자들은 대부분 이 말을 믿지 않았지만(11절) 베드로는 무덤에 와서 그 사실을 확인했다(12절).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그 외에도 몇몇의 여인들(10절)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를 따라 예루살렘까지 왔다(눅 23:49, 55). 그들은 예수가 죽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고, 이제 스승의 안타까운 죽음을 슬퍼하면서 그..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을 말씀하신다(31절). 즉 예수께서 이방인들에게 넘겨질 것이고, 능욕을 당한 후에(32절) 죽으실 것이다(33절). 하지만 사흘 후에 살아나실 것이다(33절). 제자들은 이 말을 깨닫지 못했다(34절). 예수께서는 수난과 부활 예고를 딱 열두 제자에게만 하셨는데(31절), 그들마저도 깨닫지 못했다(34절). 아마 너무 말도 안 되는 말씀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어 예수께서 여리고 근처에 이르셨는데, 한 맹인 거지가(35절)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36-37절)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38절). 사람들은 그를 꾸짖었지만 그는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39절).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 오라고 하셨다(40절). 예..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첫 번째 이야기는 교만한 자들을 향해 예수께서 베푸신 비유이다(9절).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 서서 기도하고 있었다(10절). 바리새인은 자신이 죄인이 아님에 감사하며(11절) 자신의 종교적 행위를 자랑했다(12절). 반면 세리는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자비를 구했다(13절). 예수께서는 이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14절).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임이 드러난다. 바리새인은 겉으로 보이는 행위로는 흠 잡을 데 없는 신실한 종교인(12절)이었지만, 그 행위는 그에게 의로움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14절). 반면 세리는 다른 이들에게 경멸의 대상이었지만(cf. 11절), 그가 겸비하여 하나님 앞에 ..
이전 본문(눅 17:22-37)에서 마지막 때에 관한 가르침을 베푸신 예수께서는 그들이 기도하면서 낙심하지 않도록 비유를 하나 베푸신다(1절). 여기서 이야기하는 "그들"은 눅 17장에 따르면 "제자들"이다(눅 17:22). 특별히 맥락을 볼 때, 환난의 때를 맞아 고난을 당하게 될 제자들을 대상으로 주시는 말씀인 것 같다. 누가가 이 말씀을 기록한 것 역시, 고난 중에 있는 초대 교회를 위로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예수의 비유는 다음과 같다. 어느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이 있었다(2절). 과부 하나가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 달라고 그를 자주 찾아 왔는데(3절), 그는 처음에는 듣지 않았지만(4절) 이내 그 과부가 귀찮아서 원한을 풀어 주기로 결심한다(5절). 예수..
예수께서는 다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신다(1절). 첫 번째 가르침은 실족에 관한 것이다. 실족하는 것은 일어나게 되어 있는 일이지만, 실족하게 하는 사람은 벌을 받을 것이다(1절). 따라서 누군가를 실족시키느니 차라리 목에 맷돌을 매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2절). 이 말씀은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라는 말씀이라기보다는, 남을 넘어뜨리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하라는 말씀으로 보인다. 3절의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는 이 이야기의 교훈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은 용서에 관한 가르침이다. 누군가 죄를 범하면 경고하고, 그가 회개하면 용서하라(3절). 심지어 하루에 일곱 번 죄를 짓더라도 매번 돌아와 회개한다면 그걸 용서해야 한다(4절). 이 가르침의 앞의 가르침과 짝을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예수께서 갈릴리로 돌아오시니 기다리던 사람들이 환영했다(40절). 그 중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죽어가는 딸을 고쳐 달라고 예수를 집에 초대한다(41-42절). 예수께서 그 집으로 가시는 중에(42절)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43절) 예수께 와서 그의 옷가에 손을 대자 혈루증이 즉시 나았다(44절). 예수께서는 누가 당신께 손을 댔는지 물으셨고 베드로는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다(45절). 예수께서 재차 물으시자(46절) 여인이 두려워하며 고백했다(47절). 예수께서는 그를 위로하시며 평안히 보내셨다(48절). 그 때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딸의 사망을 알린다(49절). 예수께서는 두려워 하지 말고 믿으라고 말씀하시며(50절) 그 집에 이르셨다(51절).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오늘 본문은 두 가지 이야기를 소개한다. 먼저 예수께서 제자들과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실 때 일어난 일이다(22절). 예수께서 배 안에서 잠 드신 사이에 광풍이 몰아쳐 배가 침몰할 지경에 이르렀다(23절). 겁에 질린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자 예수께서는 바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사 잠잠하게 하셨다(24절).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을 물으셨고, 제자들은 예수가 누구인지 두려워했다(25절). 호수를 건너 도착한 곳은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이었다(26절). 예수께서 내리시자 귀신 들린 자 하나가 예수 앞에 나와 소란을 피웠다(27-28절). 그는 예수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고백하는데(28절), 흥미롭게도 이는 25절에 나온 제자들의 질문,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예수께서는 각 동네에서 모인 사람들을 향해 말씀을 증거하셨다(4절). 첫 번째 말씀은 유명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이다(5-15절). 이 비유와 해석은 초대 교회에서 꽤나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는지, 마태복음(마 13:3-23)과 마가복음(막 4:2-20)에도 거의 동일하게 실려있다.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는데, 길가에 떨어진 씨는 밟히거나 새에게 먹혔고(5절), 바위 위에 떨어진 씨는 습기가 없어 말랐고(6절),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가시에 막혀서 자라지 못했고(7절),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결실을 맺었다는 말씀이다(8절). 예수께서는 비유의 목적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제자들에게만 알리고 다른 이들은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비유를 풀어주신다(10절).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
오늘 본문은 두 가지 사건을 다루고 있다. 첫 번째 사건은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사건(1절)으로, 어느 백부장이 자신이 사랑하는 종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께 유대 장로들을 보냈다(2-3절). 이들은 이 백부장이 유대인들을 사랑하고 회당까지 지어줄 정도의 사람이므로 도와달라고 간청했다(4-5절). 그런데 예수께서 가시는 길에 백부장은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보내 오실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6절). 그는 말씀만 하시면 종이 나을 것이라 말하며(7절) 예수의 주권을 인정한다(8절). 예수께서는 그의 믿음을 칭찬하셨고(9절) 그 종은 깨끗이 나았다(10절). 다음 사건은 나인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11절). 예수께서 성문 근처에 이르시자 어느 시신을 메고 나오는 행렬을 마주치셨다(12절). 그 시신은 과부 어머니..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방문하기 위해 "산골"에 있는 사가랴의 집에 찾는다(39-40절). 본문은 마리아가 서둘러 갔다고 말하는데, 어쩌면 마리아는 수태고지 당시 가브리엘이 엘리사벳을 직접 언급(눅 1:36)했기 때문에 사실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엘리사벳이 "숨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눅 1:24) 마리아도 그의 임신 사실을 몰랐을 수도 있다. 여하간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은 이유에 대해서 성경은 침묵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은 엘리사벳의 축복과 마리아의 찬가, 그리고 마리아가 석 달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56절) 뿐이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를 받자, 엘리사벳 뱃속의 아이가 요동쳤다(41절).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마리아를 축복한다. 마리아는 복을 받은 여자요, 그 태중의 아..
누가복음의 본문은 첫 주인공들을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으로, 사가랴는 제사장이었으며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이었다(5절). 이는 같은 가문 안에서 혼인하라는 율법을 잘 준수한 것으로, 본문은 이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며 율법을 지킴에도 "흠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6절). 다만 이들은 나이가 많도록 아이를 얻지 못했다(7절).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이었는데(5절), 아론의 자손을 24반열로 나눠 제사를 섬기게 한 것은 다윗 때 정해진 규례였다(대상 24:1-19). 아비야 반열은 그 중 여덟째였다(대상 24:10). 사가랴는 자신의 차례가 되어 제사장으로 섬겼는데(8절), 이번에는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는 임무를 맡았다(9절). 이는 아마 속죄제 때 피우는 향을 의미했..
오늘 점심에 식사를 하러 학교 근처 식당가에 나갔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거리를 걷고 있는데, 문득 앞을 보니 어느 흑인 분이 휠체어에 앉은 채 길 한가운데 버티고 있다. 눈을 안 마주치고 재빨리 곁을 지나쳐 가려는데 그 분이 말을 거신다. "Excuse me." 못 들은 척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Excuse me, sir? Sir!" 그 분의 목소리가 내 뒤로 점점 멀어진다. 마음은 복잡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했다. 바쁜 하루를 보내며 그 일을 잊은 채, 저녁에는 습관대로 수요예배에 나와 앉았다. 찬양을 부르며 "지금 이 자리에서 주가 영광 받으시도록" 가사에 울컥했다. 예배 후 개인 기도 시간에 그 가사를 묵상하며 입을 열었다. "하나님,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를 원해요." ..
요일 5:1에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고 증언한 요한은, 이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세상을 이긴다고 선포한다(4절). 그리고 그 승리의 원천은 우리 믿음이다(4절). 사도 요한은 요일 5:1을 적용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고 재차 표현한다(5절). 즉, 예수께서 그리스도(=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요, 세상을 이기는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사도 요한은 그를 "물과 피로 임하신 이"라고 칭한다(6절). 단순히 물이 아니라 "물과 피로" 임하셨다고 재차 말하는 것으로 보아, 물과 피가 각각 지칭하는 대상이 있는 듯 하다. 요한복음을 참고하여 보면, "물"은 세례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요 1:29-3..
지난 본문까지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면 응당 형제자매를 사랑해야 한다는 권면을 썼다. 이제 요한은 이어 사랑은 심판 날의 "담대함"을 준다는 근거를 제시한다(17절). 앞서 요일 2:28과 3:21에서도 요한은 동일한 표현(παρρησίαν)을 썼는데, 특히 2:28의 경우에는 맥락도 비슷하다. 오늘 본문은 이제 이 말을 부연한다. 우리가 주님처럼 담대할 수 있는 것(17절)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18절). 즉 참된 사랑을 안 사람이라면 더이상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심판 날"에도 담대할 수 있다. 요한은 이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재차 던진다(19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지난 본문에서 적그리스도를 경계한 사도 요한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붙들라고 권면한다(24절). 즉,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처음 사도들로부터 전해 받은 가르침을 견지하라는 의미이다. 요한은 처음부터 들은 것이 사람 안에 거하면 그는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24절). 그리고 그것은 곧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이다(25절). 이 언어는 다소 요한복음의 언어를 연상시키는데, 특히 예수의 고별 설교(14-16장)가 떠오른다. 거기서도 예수의 "말"이 제자들 안에 거하면 모든 것이 구하는대로 이루어진다는 내용(요 15:7)이 나온다. 요한이 이것을 다시 한 번 독자들에게 쓰는 이유는 그들을 "미혹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26절). 지난 본문의 "적그리스도"들을 가리킨다. 요한은 "기..
산발랏 일당은 성벽 건축 소식을 듣고(1절) 느헤미야를 해하기 위해 그를 부른다(2절). 느헤미야는 거절하였고(3절), 이런 일이 네 번 일어난 후에(4절) 산발랏이 봉하지 않은 편지를 보내(5절) 느헤미야가 반란을 꾀하고 있다는 헛소문을 낸다(6-7절). 느헤미야는 무고라고 당당히 말한다(8-9절). 이후 스마야가 칩거하여 느헤미야를 부른 후 함정에 빠뜨리려 했으나 느헤미야는 잘 빠져나갔다(10-14절). 시간이 흘러 성벽이 완성되었다. 다만 아직 성문에 문짝은 달지 못한 상황이었다(1절). 공사의 진척 상황을 알림으로써 느헤미야서의 기자는 시간이 꽤 흘렀음과, 대적들이 이로 인해 더 다급해졌음을 표현한다. 느헤미야의 주된 적이었던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1절; cf. 느 2:19)은..
산발랏과 도비야는 예루살렘 성을 중건한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며 비웃었다(1-3절).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억울함을 호소하는 한편(4-5절), 성 건축을 독려하여 절반 가량 완성하였다(6절). 그러자 산발랏 무리는 예루살렘을 쳐들어 올 계획을 세웠고(7-8절), 이 이야기를 들은 느헤미야와 그를 따르는 자들은 파수꾼을 세웠다(9절). 하지만 유다 사람들의 사기는 꺾였고(10절), 사마리아 사람들은 기세등등했으며(11절), 사마리아에 붙은 유다 사람들마저 생겼다(12절). 이제 느헤미야가 봉착한 첫 번째 어려움이 등장한다. 바로 사마리아 사람들의 견제였다. 본문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12절) 이들은 유다 사람들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는 것을 경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들은 예루살렘이 건축된다는 소식을 듣..
느헤미야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산발랏과 도비야는 근심했다(10절). 느헤미야는 도착한 지 3일 후에(11절) 일어나 밤에 예루살렘을 시찰한다(12-15절). 이는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었다(16절). 그는 이후에 방백들을 격려하여 예루살렘 성을 다시 재건하자고 했고(17절), 방백들도 그에 호응하였다(18절). 다만 산발랏 무리는 그들을 조롱하였고(19절) 느헤미야는 그들을 단호히 물리쳤다(20절).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성벽의 실태를 확인하러 잠행한다(11-12절). 이는 그가 재빠르게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음을 나타낸다. 그가 확인한 예루살렘 성의 모습은 참혹했다. 그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탔"으며(13절)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을 정도로 폐허가..
성전을 건축한다는 소문을 들은 대적들이(1절) 찾아와 건축에 참여하기를 원했다(2절). 스룹바벨을 위시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그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언했고(3절), 그 결과 대적들은 건축을 방해하기 시작했다(4절). 그들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성전 건축을 막았고(5절) 그 결과 성전 공사가 다리오 2년까지 중단되었다(24절).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1절)은 "그 땅 백성"(4절)으로도 불리는데, 스스로 "앗수르 왕 에살핫돈"에 의해 그 땅에 옮겨졌다고 말하는 것(2절)으로 보아 아마도 다른 곳에서 사마리아로 이주 당한 사람들(왕하 17:24)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그들 또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기에 성전 건축에 참여하겠다고 요..
유다는 이어서 구약의 예를 들어 그들을 저주하며(11절) 그들의 비참한 결국을 예견한다(12-13절). 그는 에녹을 인용하여 주님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선언하며(14-15절) 병치를 통해 그들이 심판을 받을 것을 암시한다(16절). 그는 수신자들에게 말세에 관한 사도들의 말을 상기시키는데(17-18절), 그들은 그 예언대로 악을 행하는 자들이다(19절). 유다는 수신자들을 격려하는 한편(20-21절)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권고한다(22-23절). 마지막으로 그는 송영을 올리며 편지를 맺는다(24-25절). 지난 본문에 이어 유다는 강한 어조로 대적자들을 성토한다. 그는 다양한 문헌을 들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유다는 대적자들이 구약의 대표적인 악인들인 가인과 발람, 고라의 뒤를 따르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