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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교리를 접할 때마다 마음 한 켠에 불편함이 있었다. 성부와 성자의 동일성은 성경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성자와 성령의 동일성은 간접적인 형태 이외에 증거하는 구절이 어디 있단 말인가? 박희원 목사님께 여쭈어 보았을 때는 요한복음 14-16장이 명백하게 증언하고 있다고 답해 주셨는데, 나에게는 그 본문의 증거가 그리 명백해 보이지 않았다. 오늘 성경을 묵상하던 중에 조금 더 성자와 성령을 일치시킬 수 있는 본문을 찾았다. 24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일 3:24) 이 본문은 마치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를 주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3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 글은 동성애 논란에 엮인 글임. 나는 동성애자들이 교회 내에서 당하고 있는 고난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바이며, 현대 교회가 때론 성경을 왜곡하여 동성애를 핍박해왔다는 데에 동의한다. 하지만 과연 이 강연에서 이야기하는 성경 해석이 정녕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앞으로 제기할 의문은 철저히 성경해석학 및 조직신학의 범위 내에 있는 질문일 뿐이며, 동성애자들에 대한 공격/박해와는 별개의 문제임을 분명히 한다. 주어진 텍스트를 해석하는 작업은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다. 특히 성경과 같이 오래 전에 쓰여져서 현대의 시각에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텍스트는 더욱 그렇다. 이에 관하여 나는 복음주의자로서 성경의 영성을 무시하는 자유주의에도 반대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성경에 대한 문자적 ..
내 입장과는 별개로, 생각해 볼 만한 좋은 강연인 것 같아서 여기 소개한다. 아래의 한글 요약은 내가 한 것이며, 인용하는 성경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하였다. 이에 대한 내 코멘트는 별도의 글로 달도록 하겠다. 1. 전통적인 성경 해석에 따르면 동성애자들은 문제 있는 사람들이고, 죄를 범한 자들이며,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해석에 기반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이 동성애자들을 억압하고 박해한다. (최소한 심정적으로 이질감을 갖는다.) 2. 하지만 전통적인 성경 해석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2-1. 마태복음 7장(산상수훈 일부)에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처음 조직신학을 공부할 때부터 석연치 않았던 점이 바로 "정경"의 권위였다. 정경의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구약성경은 백 보 양보해(예수께서 39권을 전부 인정하셨다는 문자적 증거는 없으므로) 예수께서 인정하셨기 때문이라고 쳐도, 신약성경은 누구에 의해 권위를 부여받는가? 흔히 조직신학 책에서는 "사도성"을 그 권위로 둔다. 하지만 그 역시 마땅치 않은 것은, 예컨대 와 같이 사도였는지 확실치 않은 저자의 작품은 어떤가? , , 도 저자가 사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본문 내적인 증거가 알려져 있지는 않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반례는 아예 그 저자가 밝혀져 있지 않은 히브리서이다. 이쯤 되면 어떤 조직신학 책에서는 "읽어보면 성령의 영감이 개입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라는 식의, 내가 보기엔 전혀 합..
요새 IVP 조직신학시리즈 중 제럴드 브레이의 을 읽고 있다. 벌코프, 그루뎀 등의 일반적인 조직신학 개론서들에 비해 넓고 깊게 신론을 다루고 있어 좀 더 머리쓰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 책에 등장한 한 가지 주제, "인간은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짤막하게 다루어보고자 한다. 이 책 74-77쪽을 참조한다. 고대-중세 시대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을 지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책의 표현을 인용한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의 용어로 알려질 수도 정의될 수도 없으며, 하나님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지성의 언어를 넘어서 비존재(즉 개념을 넘어선)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일이 필요했다. 그 영역은 오직 황홀경 속에 있는 신비주의자에게..
[종교] 종교개혁 이야기 2 - 십일조를 알려주마! 위와 같은 글을 발견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이 글에서는 저 글과 관련해 내가 십일조에 대해 갖고 있는 견해를 설명해보고자 한다. #1. 예수와 십일조 우선 저 딴지 필자가 주장하듯 십일조가 신정국가의 세금에 해당했기에 국가에 대한 세금을 내는 지금에 와서는 낼 필요가 없는지 생각해보자. 복음서에는 예수가 직접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위선자들아!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바치면서 율법 가운데 더 중요한 정의와 자비와 신의는 무시해 버렸다. 그러나 십일조도 바치고 이런 것들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했다. (우리말성경, 마태복음 23:23)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
김세윤 교수의 3장에서 필자는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인 것을 어떻게 믿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선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 제자들이 그를 메시아로 믿었다는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의 입장을 인용하고 그 입장을 반박한다. 구약이나 당시 유대 문서에는 메시아의 부활 사상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김 교수는 이에 대한 답을 다음과 같이 도식화한다. 1) 예수는 삶과 메시지를 통해 자신이 '죽기 위한' 메시아임을 드러냈다. 2)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 이로써 예수는 자기 성취를 이루었으나 그 죽음이 참된 것인지 알 길은 없다. 3) 예수가 부활했다. 부활은 하나님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으므로, 하나님이 예수의 말을 확증한 것이다...
김세윤 교수의 를 읽어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가리켜 메시아나 그리스도라 직접적으로 일컫지 않고 "인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에 주목한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이 메시아나 그리스도라 하면 정치적 해방자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었기에 그걸 막기 위해서 다른 표현을 우회적으로 사용한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다음 구절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5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요 4:25-26)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복음서에는 이런 구절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 한 가..
그루뎀은 자신의 조직신학 책 19장에서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천사' 중에는 성자 예수님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천사가 종종 자신을 하나님으로 칭하였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피조물에 불과한 천사가 자신을 하나님으로 칭할 수는 없기에, 눈에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셨던 예수님을 그 자리에 끼워 넣은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논증은 성경에 그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 하나님의 속성과 천사의 속성을 '먼저' 정의하고 그로부터 이성을 사용하여 이와 같은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철학적 신학 논증이라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중세 신학의 잔재일지도?) 우선 성경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유명한 장면을 살펴보자.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에서가 기..
웨인 그루뎀의 상권 20장 '사단과 마귀들'에 보면 사단의 정체에 대해 타락한 천사라는 (보편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 견해는 어떠한 성경적 근거에 기반을 두고 있을까? 그루뎀은 다음과 같은 구절이 사단의 타락을 묘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12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사 14:12-14)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이사야 14장을 읽어보면 문맥상 이 구절이 사단의 타락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사야 14장은 최소한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