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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천사'를 성자로 볼 수 있는가? 본문

교리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천사'를 성자로 볼 수 있는가?

로보스 2009. 9. 21. 09:00
그루뎀은 자신의 조직신학 책 19장에서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천사' 중에는 성자 예수님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천사가 종종 자신을 하나님으로 칭하였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피조물에 불과한 천사가 자신을 하나님으로 칭할 수는 없기에, 눈에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셨던 예수님을 그 자리에 끼워 넣은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논증은 성경에 그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 하나님의 속성과 천사의 속성을 '먼저' 정의하고 그로부터 이성을 사용하여 이와 같은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철학적 신학 논증이라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중세 신학의 잔재일지도?) 우선 성경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유명한 장면을 살펴보자.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에서가 기다리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24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창 32:24-30)
헌데, 동일한 이야기를 호세아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3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4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호 12:3-4)
창세기에선 언급되지 않은 "울며"가 있는 것도 흥미롭지만, 우선 여기서는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라고 기록된 데에 주목하자. 호세아는 야곱과 씨름한 사람이 천사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예는 '율법'과 관련하여 찾아볼 수 있다. 『출애굽기』에 따르면, 율법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모세가 받았다. (다음 구절은 사실 십계명 돌판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 근처의 맥락을 살펴보면 모세는 모든 율법을 직접 하나님으로 받았다고 볼 수 있다.)
1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출 24:12)
동일한 이야기에 대해 『사도행전』의 스데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53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행 7:53)
명백히 모세는 천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여호와가 천사라는 이야기 아닌가? 이 외에도 여러 구절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 일단 이 정도까지만 살펴보고, 여기서는 이 구절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생각해보자.

문제를 요약해보자. 어떤 영적인 존재가 나타났는데 성경의 한 부분에선 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다른 부분에선 천사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존재의 정체는 무엇인가? 게다가 좀 더 난감한 것은 성경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18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20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출 33:18-20)
18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 1:18)
12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요일 4:12)
그루뎀은 자세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기에 그 속마음을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위에 있는 요 1:18 등을 근거로 삼아 하나님으로 현현(顯現)하는 분은 성자 예수님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 1:18에서 가르치고 있는 바는 명백히 예수님의 초림 아닌가? 이 구절은 구약성경의 때에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나타나셨다는 이야기를 지지하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따라서 나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구약성경에 등장한 천사는 천사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사가 하나님을 참칭했다는 문제가 생기는데, 이에 대해서는 '위임' 가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명을 전하는 신하는 그 자신이 왕이 아닐지라도 왕의 권위와 능력을 위임받아 왕과 같이 행동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 어명을 받던 사람들의 태도를 생각해보라!) 이와 마찬가지로, 천사가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기 위해 그 분의 권위를 위임받았다면 그 자신이 사실은 천사임에도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내가 이 생각을 지지하는 또 다른 근거는, 호세아와 스데반이 과연 그 "천사"를 성자 예수님이라고 여겼냐는 것이다. 호세아는 예수님을 몰랐으니 그렇다고 쳐도, 스데반은 예수님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천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스데반, 혹은 『사도행전』의 기록자 누가가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이 예수님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기록하지 않았겠는가? "천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스데반이나 누가가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을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들이 그렇게 믿지 않았는데 우리가 그렇게 믿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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