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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에 대해 강변한 사도 요한은, 이를 통해 독자들이 영생을 얻었음을 깨닫게 하려 한다고 말한다(13절). 그렇다면 이 영생이 주는 것은 무엇인가? 요한은 그 중 한 가지,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을 제시한다(14절). 그리고 바로 이어 "무엇이든지" 구하면 들으시고, 심지어 이미 그 구한 바를 얻은 것이라고 말한다(15절). 즉, "무엇이든지" 구하되 "그의 뜻대로" 구해야 한다. 나의 욕심을 위한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한 기도이다. 요한은 그 한 가지 예로 죄를 범한 형제를 위한 도고를 제시한다(16절). 이 부분에서 요한은 다소 신중한데, 모든 죄를 위해 다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16절). 천주교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한국 개신교..
사도 요한은 미혹 당하지 말라고 말하며 새로운 권면을 시작한다(7절). 무슨 미혹을 말하는지가 다소 불분명한데, 다음 구절들을 통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의를 행하는 자는 예수처럼 의롭고(7절) 죄를 짓는 자는 "처음부터 범죄"한 마귀에게 속한다(8절). 요한은 변형해서 반복하는 문학 기법을 즐겨 쓰는데, 다시 한 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인다(9절). 따라서 행실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난다(10절). 의를 행하지 않는 자,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마귀의 자녀요(10절),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11절). 그리고 가인의 예(창 4:1-15)를 들어 마귀에게 속한 자를 보여준다(12절). 가인의 행위는 악하고 아벨의 행위는 의로웠..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베푸셨는지 깨달으라고 권고한다(1절). 그 사랑 덕분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게 되었다(1절). 그리고 지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그 분과 같은 모습이 될 것이라는 소망이 있다(2절). 그리고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예수를 본받아 스스로 거룩하게 한다(3절). 여기서 사도 요한은 우리가 받은 구원에 걸맞는 삶을 살 것을 요구한다. 이 짧은 세 절 안에 구원의 '이미 그러나 아직' 개념이 잘 드러나 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1절). 이는 이미 일어난 구원 사건을 가리킨다. 그리고 예수께서 장차 재림하실 때에,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와 같은 온전한 모습이 ..
사도 요한은 "이것"을 너희에게 쓴다는 표현을 한 번 더 한다(1절). 여기서 "이것"은 아무래도 그 앞, 즉 1:5-10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듯 싶다. 해당 구절에서 요한은 빛과 어둠이라는 언어를 사용해 죄를 떠날 것을 권면했는데, 1절에서는 그것을 조금 더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지만 우리가 완전한 것이 아니기에 죄를 범할 수도 있다. 요한은 죄를 범하여도 우리에게는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며(1절) 그는 우리 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대신하여 화목 제물로 드려지셨다고 증언한다(2절). 이 내용 역시 지난 본문에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쳐야 하지만, 그럼에도 육신이 약하여 죄를 범하게 된다. 그 때 성도들은 그리스도..
요한은 "그"에게서 직접 들은 것을 전한다(5절). 여기서 "그"는 성육신하신 생명의 말씀을 가리킨다(요일 1:1-2). 그가 가르치신 것은 하나님은 빛이시고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는 것이었다(5절). 요한복음은 "빛"을 예수 그리스도께 연결시키는데(요 1:4, 9; 3:19; 8:12; 9:5; 12:35, 46), 동일한 이미지가 여기서는 하나님께 연결된다. 그렇다면 이 빛과 어둠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후 이어지는 다섯 절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빛-어둠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6-7절과, 그에 대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8-10절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들 각 절은 모두 조건-결과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비슷한 결과를 주는 내용들로, 6, 8, 10절끼리, 그리고 7, 9절끼리 묶을..
에스라는 종족별로 족장을 세워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은 사람을 조사하게 했고(16절), 석 달이 걸려 이 일은 모두 마무리되었다(17절). 본문은 대부분 그 사람들의 명단으로 이루어져 있다(18-44절). 명단에서 인상적인 것은 "제사장의 무리"(18절), "레위 사람"(23절), "노래하는 자", "문지기"(24절)와 같이 성전을 섬기는 직무를 맡은 자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24절까지의 명단은 스 2:36-41의 명단과 동일한 순서(예수아 자손, 임멜 자손, 바스훌 자손, 하림 자손, 레위 사람, 노래하는 자, 문지기)로 이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모든 가문이 빼놓지 않고 죄를 범했으면 보여주는 장치가 아닐까 싶다. 25절부터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일반 백성들의 명단을 소개한다...
시드기야는 21세에 왕위에 올라(11절)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다(12절). 그는 예레미야의 말을 따르지 않고 느부갓네살을 배반하였으며(13절), 유다 백성들은 성전을 더럽히고(14절) 선지자들을 멸시하는 악을 행했다(15-16절). 결국 유다는 느부갓네살의 침공을 받는다(17절). 전쟁으로 유다 백성들이 죽어 나갔고(17절) 성전 기물들이 전리품으로 실려 갔으며(18절) 성전은 불타고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졌다(19절). 시드기야의 치세는 왕하 24:18-25:21, 렘 37:1-39:10, 렘 52장 등에 기록되어 있다. 열왕기하와 예레미야 52장의 내용은 무척 흡사하고, 역대기는 그 내용을 기반으로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렘 37장부터의 내용은 다소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데, 다른 본문들이 시드..
아람-암몬 연합군을 맞이한 요압은 군대를 둘로 나누어 자신과 아비새가 지휘하게 한다(10-13절). 요압이 아람을 치자 아람은 도망쳤고(14절), 암몬은 그것을 보고 전의를 상실해 아비새 앞에서 무너졌다(15절). 도망친 아람 사람들은 강 건너의 아람에게 지원을 요청했지만(16-17절), 그들 역시 다윗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18-19절). 요압은 암몬의 수도 랍바를 점령했고(1절), 다윗은 당당히 개선하여 돌아왔다(2-3절). 오늘 본문의 평행 본문은 삼하 10:9-12:31에 등장하는데, 흥미롭게도 삼하 11:2-12:25의 내용이 통째로 생략되어 있다.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유사한 내용인 것으로 보아 역대기 기자가 사무엘하를 옮겨 쓰는 중에 의도적으로 해당 부분을 누락시킨 것으로 보인..
베드로가 예수께 죄를 범한 형제를 몇 번까지 용서할지 여쭙자(21절) 예수께서는 무한히 용서하라고 말씀하시며 하나의 천국 비유를 드신다(22절). 어느 임금이 만 달란트 빚진 종을 벌하려 했으나(23-25절) 그 종이 불쌍하게 빌자 긍휼히 여겨 빚을 탕감해 주었다(26-27절).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만나 그가 빎에도 불구하고 옥에 가두자(28-30절) 그 소식을 듣고 임금은 그를 붙잡아 다시 감옥에 넣었다(31-34절).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도 동일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35절). 이 본문의 의미는 비교적 분명하다. 만 달란트 빚진 자는 우리를 가리키고, 백 데나리온 빚진 자는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가리킨다. 임금은 물론 하나님이다. 임금은 원래 빚을 법대로..
예수의 가르침은 계속된다.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먼저 혼자 가서 권고하고(15절), 다음에는 한두 사람과 함께 가고(16절), 그래도 안 되면 교회에서 권고하고(17절) 포기하라. 우리에게는 매고 푸는 권세가 있고(18절), 두 사람이 모여 구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19-20절). 오늘 본문은 교회의 권세에 대해 복음서에서 거의 유일하게 다루는 부분이다. 흥미롭게도, 같은 자료를 쓴 것으로 보이는 누가복음에서는 마태복음 18:15-20에 해당하는 부분을 한 절(눅 17:3)로, 마 18:21-35에 해당하는 부분을 또 한 절(눅 17:4)로 처리했다. 누가복음에서는 두 절의 내용이 부드럽게 이어지지만, 마태복음에서는 완전히 다른 주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포인트는 무엇인..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으로 돌아가시자(1절),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왔다(2절). 예수께서는 죄 사함을 선포하셨고(2절), 이에 반발하는 서기관들과 논쟁을 벌이신다(3-6절). 그리고 중풍병자에게 일어나라고 명하시자(6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다(7절). 사람들은 이에 두려워했다(8절). 오늘 본문은 치유 사역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보다 어제 본문에서 살펴본 '예수는 누구신가?'라는 질문의 연장선상에 있는 내용으로 보인다. 예수께서는 오늘 단순히 병을 고치신 것이 아니라 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셨다(2절). 서기관들은 죄 사함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것이기에 불편함을 느꼈다(3절). 그러자 예수께서는 당신이 그 권능을 받으셨음을 말씀하셨다(6절). 예수께서는 여기서 서기관들의 생각..
그 유명한 주기도문 본문이다. 이 본문은 세 가지 외식, 즉 구제, 기도, 금식에 대해 말씀하시던 중 기도에 대한 이야기 뒤에 덧붙이신 내용으로 보인다. 기도할 때 외식을 피해야 하는 것(마 6:5-6) 못지 않게 주의해야 할 것이 중언부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7절). 말을 많이 하고 공을 많이 들이면 신이 응답할 것이라는 생각은 올바른 신앙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며(8절), 간단한 기도의 예시를 몸소 보여주신다(9-13절). 이 기도에서 가장 먼저 구하는 것은 나의 필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통치다(9-10절). 그 이후에 나의 필요를 구하는 대목이 나오는데(11절), 여기서도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구한다. ..
이번에는 간음에 관한 율법을 "완전하게" 하신다(27절). 간음 금지 역시 십계명에 등장하는 중요한 계명(출 20:14, 신 5:18)으로, 율법의 많은 부분이 성적 문란을 금지하고 징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는 이미 간음죄를 범한 자라고 선포하신다(28절). 행동으로 죄를 드러내지 않더라도 마음 속에 이미 그 욕망을 품은 사람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더욱 무섭게도, 예수께서는 눈이 나를 실족하게 한다면 빼버리는 것이 낫고(29절), 손이 나를 실족하게 한다면 찍어 내버리는 것이 낫다고 선언하신다(30절). 이는 죄를 지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장애인으로 사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서 "지옥"(γέεννα)은 미래에 찾아올 심판의 한 가지 형태로 보인..
지난 본문, 즉 율법을 완성하러 온 예수 그리스도(마 5:17-20)에 관한 본문에 이어, 이제 구체적인 각론이 다루어진다. 앞으로 총 다섯 개의 율법 계명이 하나하나 "...하라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의 패턴으로 인용되고,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는 예수의 사역이 어떠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다루어진다. 오늘 본문은 그 중 첫 번째로 살인에 관한 계명을 다룬다. 율법은 살인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21절). 살인 금지 계명은 십계명의 한 조항으로 들어가 있으며(출 20:13, 신 5:17), 율법의 많은 부분이 사람을 죽였을 경우에 어떻게 치리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예수께서는 그 계명을 더 확장하신다. "형제에게 노하는" 것,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것, "[형제를 대하여]..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요단 강에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세례를 받으려 하셨다(13절). 요한은 말렸지만(14절), 의를 이루자는 예수의 말씀에 허락하였다(15절). 그 때 물에서 올라오시는 예수 위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신다(16절). 그리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언이 들려왔다(17절). 2장 15절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암시했던 마태는 이제 명백하게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기록한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17절)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시 2장 15절을 참고하면, 거기서 마태는 호 11:1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을 예수와 동일시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이 결국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는데 ..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과정을 그리고 있다(18절). 예수의 모친 마리아는 약혼 상태에서 성령으로 잉태한다(18절). 약혼자 요셉은 이를 문제시하지 않고 파혼을 결심한다(19절). 그 때 천사가 나타나서 이 임신이 성령으로 인한 것임을 알려주고(20절) '예수'라는 이름을 계시한다(21절). 처녀가 잉태한 것은 구약 예언의 성취이다(22-23절). 요셉은 마리아를 데려왔지만(24절) 출산 때까지 동침하지 않았고, 태어난 아들에게 계시를 따라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25절). 마태는 명백하게 동정녀 탄생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예수께서 처녀에게 나신 것은 구약 예언의 성취였다(22-23절). 마태는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한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
전도서는 슬슬 대단원을 향해 흘러간다. 이제 전도자는 청년의 때와 노년의 때를 비교하여 가르침을 베푼다. 빛은 아름다운 것이지만(7절), 그 빛을 보지 못할 날들도 장차 다가올 것이다(8절). 따라서 젊은 날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그 때를 만끽하되,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고 죄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하라(9-10절). 젊은이들은 흔히 미래를 생각하지 못한다. 전도자는 그들에게 "캄캄한 날들"을 생각하라고 권면한다(8절). 만약 노년의 어둠을 생각한다면, "눈으로 해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된다(7절). 전도자는 이 맥락에서 청년들에게 교훈을 베푼다. 젊은 시절을 근심 없이 즐기라. 다만 심판주가 계심을 인식하고 죄를 짓지는 말라(9절). 10절은 이를 잘 요약한다. "근심이 네 마음..
오늘은 지혜에 대한 잠언이다. 전도자는 스스로 지혜를 쫓았으나 잡지 못했음을 고백한다(23-24절). 지혜와 명철을 연구하던 그(25, 27절)는 음녀를 피해야 한다는 지혜를 얻었다(26절). 또한 여자에게는 지혜가 없음을 깨달았고(28절), 하나님의 창조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죄성이 문제임을 깨달았다(29절). 오늘 본문 역시 명백한 주제로 묶여 있지 않다. 다만 모든 경구들이 지혜와 연결되어 있다. 먼저, 전도자는 사람이 온전히 지혜를 취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역설한다(23절). 그 누구도 지혜에 "통달"할 수 없다(24절). 이는 지혜라는 것이 결국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같은 지혜를 인간이 어찌 가질 수 있겠는가(cf. 욥 38-41장)? 그럼에도 전도자는 지혜를 연구한다(2..
지난 본문에서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언급한 바울은, 우리가 그들에 비해 나을 것이 없음을 논증한다. 우리 역시 죄인이었지만(3절)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을 얻었다(4-5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셨고(6절)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7절). 따라서 우리가 그들에게 우월감을 가질 것이 전혀 없다(딛 3:2). 오늘 본문은 다시 한 번 교만의 문제를 친다. 어쩌면 그레데 교인들은 자신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의롭다고 믿으며 그들을 비방하고 정죄했는지도 모르겠다. 바울은 그런 이들에게 우리도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음을 일깨워준다(3절). 하나님은 그런 우..
더 이상 그림자가 아니라 예수 그 분을 바라보라고 권면한 바울은 이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 세상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바울은 "위의 것"과 "땅의 것"을 구분짓는다(2절). 우리의 삶이 예전에는 땅의 것에 속했지만(7-8절), 이제는 그리스도에게 속했으므로(2-3, 9-10절) 그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죽음-삶의 도식으로 우리의 중생을 바라본다. 거듭남과 더불어 "땅에 있는 지체"는 죽었다(3, 5절).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고(1절), 재림 때 함께 영광을 누릴 것이다(4절). 그렇다면 이제 "옛사람과 그 행위"(9절)는 벗어 버리고(8절) 새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한다(10절). 바울은 5절과 8절에서 구체적인 죄를 열거한다. 5절은 마음의 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