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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5:27-3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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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5:27-32

로보스 2016. 4. 4. 23:57

이번에는 간음에 관한 율법을 "완전하게" 하신다(27절). 간음 금지 역시 십계명에 등장하는 중요한 계명(출 20:14, 신 5:18)으로, 율법의 많은 부분이 성적 문란을 금지하고 징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는 이미 간음죄를 범한 자라고 선포하신다(28절). 행동으로 죄를 드러내지 않더라도 마음 속에 이미 그 욕망을 품은 사람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더욱 무섭게도, 예수께서는 눈이 나를 실족하게 한다면 빼버리는 것이 낫고(29절), 손이 나를 실족하게 한다면 찍어 내버리는 것이 낫다고 선언하신다(30절). 이는 죄를 지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장애인으로 사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서 "지옥"(γέεννα)은 미래에 찾아올 심판의 한 가지 형태로 보인다(마 10:28). 앞선 본문에서 살펴본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참된 재판장께서 언젠가 나의 모든 행실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상이 깔려 있다.


재미있는 것은, 마태복음 안에서 이 본문과 동일한 표현이 다른 맥락에서 등장한다는 것이다. 마 18:8-9는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죄에 대해 이야기하는 맥락에서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 본문에서는 조금 더 명확하게 "지옥"과 "영생"을 대비시켜 쓰고 있다. 즉, 내가 지금 간음을 범하든 다른 이를 시험에 들게 하든 죄를 지으면, 당장의 형벌은 없을지 몰라도 미래에 그에 대한 정확한 심판이 있을 것이고 그 심판에 따라 상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죄를 범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


예수께서는 간음 문제를 다루시면서 이혼에 대한 이야기도 하신다. 율법은 이혼 증서를 줘서 이혼할 수 있게 하였지만(31절; 신 24:1-4), 이혼은 간음을 조장하는 행위이다(32절). 흥미롭게도, 이 가르침 역시 마태복음 19장에서 조금 다른 형태로 다시 등장한다. 오늘 본문은 버림 받은 여자와 그에게 장가 든 사람이 간음하는 것임을 지적하는데, 마 19장은 이혼한 남자가 다른 데 장가 드는 것이 간음이라고 이야기한다(마 19:9). 종합해 보면 이혼은 쌍방이 모두 재혼을 통해 간음하게 되는 행위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간음의 범위를 확장하셨다. 마음으로 품는 음욕조차 간음이라고 명명하셨고(28절), 율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이혼(31절)을 또한 간음의 범주에 넣으셨다(32절). 그리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함을 가르치셨다(29-30절). 히브리서 기자의 안타까운 외침이 떠오른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한다(히 12:4)! 죄와 싸우는 것은 내 신체를 잘라내고 피를 흘려야 할 수도 있는 무서운 싸움이다. 이렇게 싸워야 하는 이유는 결국 의로우신 재판장의 심판이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나는 죄와 어떻게 싸우고 있는가. 특별히 오늘 본문이 이야기하는 간음죄는, 아마 남자라면 벗어나기 힘든 죄일 것이다. 나 역시 여자들을 볼 때 음욕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고백한다. 그렇다면 나는 눈을 빼고 손을 찍는 아픔으로 회개하며 나아갔는가.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율법주의자들보다 나은 의를 명령하셨다. 나의 생각, 나의 말, 나의 행실은 율법주의자들보다 얼마나 더 나은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몸부림치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내가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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