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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형 선고를 받은 예수(눅 23:25)는 사형장으로 끌려간다. 그를 끌고 가던 자들은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지게 했다(26절). 많은 이들이 슬퍼하며 예수를 따랐고(27절),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해 임박한 환난을 이야기하시며 자신을 위해 울라고 말씀하신다(28-31절). 마침내 해골이라는 곳에서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33절), 양 옆에 사형 선고를 받은 두 행악자도 동일하게 못 박혔다(32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는 자신을 못 박은 자들을 위하여 청원하는 기도를 올리셨다(34절). 그들은 그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눠가졌고(34절), 백성은 서서 구경했으며(35절), 관리들은 예수를 비웃었다(35절). 군인들 역시 예수를 희롱하며 신 포도주를 주었다(36-38절). 옆에 달린..
빌라도는 예수를 고소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13절) 예수의 무죄를 선포한다(14-15절). 그는 예수의 형을 태형으로 감하려 하였으나(16절) 무리는 강하게 반대하였다(18절). 그들은 대신 민란의 두목 바라바(19절)를 요구했다. 두 번째(20절), 세 번째(22절) 빌라도가 말했지만 무리는 듣지 않았다(21, 23절). 결국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대로(24절)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도록 넘겨주었다(25절). 오늘 본문에서 드러나는 것은 세 번에 걸쳐 선언된(14-15, 20, 22절) 예수의 무죄이다. 예수는 로마의 총독이 보기에도 확실히 죄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백성을 미혹"하지도 않았고(14절)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다(22절). 심지어 헤롯조차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삭개오의 구원 사건(눅 19:1-10) 이후에 바로 이어 새로운 비유를 주신다. 본문은 그 비유의 목적이 두 가지임을 밝히고 있다(11절). (1)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다. 즉, 이제 예수께서 사역을 마치시고 세상을 떠나실 날이 가까웠다는 말이다. (2) 한편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잘못된 이해이므로 바로 잡을 필요가 있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으려고 먼 나라로 향하면서(12절), 열 명의 종에게 한 므나씩 주면서 장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13절). 그리고 그가 돌아와서 종들을 불러 정산을 한다(15절). 첫째는 한 므나로 열 므나를(16절), 둘째는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18절) 만들었기에 주인이 그들을 칭찬하며 고을을 내주었다..
예수께서는 여리고에 들어오셨다(1절). 사람들이 예수를 보기 위하여 많이 몰려왔고(3절) 그 중에 세리장인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었다(2절). 그는 자신의 작은 키로 인해 예수가 보이지 않자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4절). 예수께서는 그를 보시고 그 집에 유하겠다고 그를 부르셨다(5절). 삭개오는 즐거워하며 영접하였다(6절). 사람들은 수군거렸지만(7절) 삭개오는 자신이 회개하였음을 보였고(8절) 예수께서는 그 또한 구원받았다고 선언하셨다(9-10절). 오늘 본문은 정말 전형적이다! 사람들은 "죄인"을 꺼리고 불편해 하지만, 예수께서는 바로 그 "죄인"을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0절) 하지만 오늘 나는 이 본문을 열심히 뜯어 보며 연구하기보다, 본..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을 말씀하신다(31절). 즉 예수께서 이방인들에게 넘겨질 것이고, 능욕을 당한 후에(32절) 죽으실 것이다(33절). 하지만 사흘 후에 살아나실 것이다(33절). 제자들은 이 말을 깨닫지 못했다(34절). 예수께서는 수난과 부활 예고를 딱 열두 제자에게만 하셨는데(31절), 그들마저도 깨닫지 못했다(34절). 아마 너무 말도 안 되는 말씀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어 예수께서 여리고 근처에 이르셨는데, 한 맹인 거지가(35절)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36-37절)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38절). 사람들은 그를 꾸짖었지만 그는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39절).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 오라고 하셨다(40절). 예..
예수께 어떤 관리가 와서 예수를 선한 선생님이라 부르며 영생을 얻는 길을 물었다(18절). 예수께서는 먼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분이 없다고 답하신다(19절). 이 구절은 예수의 신성을 의심스럽게 만드는 대표적인 구절이다. 어떤 설교자는 예수께서 예수께 잘 보이려는 그의 마음을 아시고 그 위선을 벗겨내려 하신 거라는 식으로 해석하던데, 본문에 없는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은 위험하다. 나는 본문을 굳이 해석하려 하지 않고, 예수께서 스스로 겸손하게 "선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거부하셨다는 것만 관찰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이제 예수께서는 그에게 계명을 가르치신다(20절). 말씀하신 계명은 십계명의 5-9계명에 해당한다. 그러자 그는 어릴 적부터 이것을 다 지켰다고 답한다(21절). 그러자 예수께서는 재산..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첫 번째 이야기는 교만한 자들을 향해 예수께서 베푸신 비유이다(9절).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 서서 기도하고 있었다(10절). 바리새인은 자신이 죄인이 아님에 감사하며(11절) 자신의 종교적 행위를 자랑했다(12절). 반면 세리는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자비를 구했다(13절). 예수께서는 이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14절).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임이 드러난다. 바리새인은 겉으로 보이는 행위로는 흠 잡을 데 없는 신실한 종교인(12절)이었지만, 그 행위는 그에게 의로움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14절). 반면 세리는 다른 이들에게 경멸의 대상이었지만(cf. 11절), 그가 겸비하여 하나님 앞에 ..
예수께서 안식일에 어느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셨다(1절). 그 자리에 "수종병", 즉 부종에 걸린 사람이 있었고(2절)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야 하는지를 물으셨다(3절). 그들이 답을 못 하자 예수께서는 그를 고쳐 보내시고(4절) 그들이 안식일에라도 자녀나 가축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는 일을 한다는 점을 지적하셨다(5절). 역시 그들은 유구무언이었다(6절). 이 이야기는 13장의 치유 이야기(눅 13:10-17)와 많이 겹친다. 예수께서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안식일에 치유 행위를 많이 하신 것으로 보인다. 13장 본문에서는 자유롭게 하는 것을 두고 말씀하셨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구하는 것을 가지고 말씀하신다. 즉 자녀나 가축이 우물에 빠졌다면 안식일이라고 하더라도 끌..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시면서 여러 마을에서 가르치셨다(22절).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는 사람의 수를 여쭈었다(23절). 예수께서는 수가 적다고 하시며 "좁은 문"에 비유하신다(24절). 문이 닫히면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갈 수 없다(25절). 설사 주를 직접 보았다 하더라도(26절) 그가 알지 못하는 자라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27-28절). 심지어 이방인들도 합당한 자들이라면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29-30절). 구원 받는 자들(23절),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28절)을 다루는 이 본문의 서두가 "예루살렘"으로 시작하는 것(22절)은 의미심장하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역을 마무리 짓는 장소로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계셨다. 그리고 그 마지막 사역을 통해 하나..
어떤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갈릴리 사람들이 제사 중에 살해 당한 사건을 이야기한다(1절). 맥락으로 볼 때 당시 유대에서는 이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벌로 이렇게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생각이 팽배했던 모양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특별히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2절) 누구나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3절). 마찬가지로 무너진 망대에 치어 죽은 자들도 더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니다(4절). 누구나 회개하지 않으면 망할 것이다(5절). 그리고 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할 것이라는 말씀을 부연하기 위해 비유를 주신다(6절). 어떤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3년 동안(7절) 열매를 구했지만 열매를 얻지 못했다(6절). 그는 포도원지기..
예수께서 갈릴리로 돌아오시니 기다리던 사람들이 환영했다(40절). 그 중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죽어가는 딸을 고쳐 달라고 예수를 집에 초대한다(41-42절). 예수께서 그 집으로 가시는 중에(42절)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43절) 예수께 와서 그의 옷가에 손을 대자 혈루증이 즉시 나았다(44절). 예수께서는 누가 당신께 손을 댔는지 물으셨고 베드로는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다(45절). 예수께서 재차 물으시자(46절) 여인이 두려워하며 고백했다(47절). 예수께서는 그를 위로하시며 평안히 보내셨다(48절). 그 때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딸의 사망을 알린다(49절). 예수께서는 두려워 하지 말고 믿으라고 말씀하시며(50절) 그 집에 이르셨다(51절).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예수께서는 나사렛으로 돌아가셨다(16절). 본문은 그가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서 성경을 읽으셨다고 증언한다(16절). 이는 그가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눅 4:15)한 이후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그가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성경을 읽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만약 후자라면 그는 공생애가 시작하기 전부터 어느 정도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훈련했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그의 메시지에 놀란 것을 보면(22절), 그가 본격적인 선지자 훈련을 받지는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여하간 그는 이사야의 글을 받으셨고(17절) 이사야 61장 1-2절의 말씀을 읽으신 후(18-19절) 자리에 앉으셨다(20절). 이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확히 당시 회당에서 안식일 모임이 어떻게 진..
예수께서는 요단 강에서 돌아오신 후 광야에서 40일을 보내셨다(1절). 그는 40일을 금식하셨기에 시장하셨고(2절) 마귀는 그것을 이용하여 유혹한다(3절). 예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그것을 물리치신다(4절). 이 말씀은 신 8:3 말씀으로,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입성을 목전에 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모세의 고별 설교에 등장하는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의 40일 금식이 이스라엘의 40년 방랑을 상징함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3절)인 이스라엘은 그 가운데 떡의 유혹에 휩쓸렸지만, 예수께서는 끝까지 의연하게 이겨내셨다. 다음으로 마귀는 예수에게 천하 만국을 보여주며(5절) 자신에게 절하면 모든 것을 주겠다고 유혹한다(6-7절). 예수께서는 하나님께만 경배하라는..
태어난 아이의 이름은 8일째에 예언대로 "예수"라고 지어졌다(21절). 그리고 예수가 태어난 지 33일 되는 날(레 12:4), 마리아와 요셉은 정결 예식(레 12:6-8)을 치르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22-23절). 레위기 본문의 원칙은 일년 된 어린 양을 바치는 것이고 가난한 자들에 한해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로 대체할 수 있었는데(레 12:6-8), 마리아와 요셉은 비둘기를 바친 걸(24절)로 보아 가난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성전에 올라갔을 때 "의롭고 경건"한 시므온이라는 사람을 만났다(25절). 그는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않으리라는 성령의 계시를 받았고(26절), 성령의 감동을 따라 성전에 갔을 때 예수 가족을 만났다(27절). 본문에서 시므온의 행적을 가리킬 때 매번 "성령"이 등장함에 ..
오늘 본문은 사가랴의 긴 예언이 주를 이룬다. 본문은 그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했다고 증언한다(67절). 이 예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먼저 이스라엘에 구원자를 보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대목(68-75절)이 나오고 요한에 대한 예언(76-79절)이 뒤를 잇는다. 전자는 후자의 배경을 제시하기에 둘이 엄밀하게 나뉘는 것은 아니지만 편의상 나누어 살펴본다. 우선 하나님은 언약, 즉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를 기억하셨다(72-73절). 이 맹세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지키시겠다는 것이었다(창 17:7-8, 22:16-18).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원수의 손에서 건지시고(68, 71, 74절) 그들이 하나님만을 섬길 수 있게 하신다(75절). 그 구원은 바로 다윗의 집에 일어난 "구..
지난 본문까지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면 응당 형제자매를 사랑해야 한다는 권면을 썼다. 이제 요한은 이어 사랑은 심판 날의 "담대함"을 준다는 근거를 제시한다(17절). 앞서 요일 2:28과 3:21에서도 요한은 동일한 표현(παρρησίαν)을 썼는데, 특히 2:28의 경우에는 맥락도 비슷하다. 오늘 본문은 이제 이 말을 부연한다. 우리가 주님처럼 담대할 수 있는 것(17절)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18절). 즉 참된 사랑을 안 사람이라면 더이상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심판 날"에도 담대할 수 있다. 요한은 이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재차 던진다(19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사도 요한은 서로 사랑하자는 명령을 다시 준다(7절).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만(7절)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8절).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드러났는가? 본문은 하나님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그 사랑이 드러났다고 증언한다(9-10절).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여 그 아들을 희생시키셨다(10절)! 따라서 이 사랑을 받아 아는 자라면 그렇게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마땅하다(11절). 다시 사랑을 독려하기 위해 사도 요한은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이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된다고 권면한다(12절).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사도 요한은 성령을 받은 것이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베푸셨는지 깨달으라고 권고한다(1절). 그 사랑 덕분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게 되었다(1절). 그리고 지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그 분과 같은 모습이 될 것이라는 소망이 있다(2절). 그리고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예수를 본받아 스스로 거룩하게 한다(3절). 여기서 사도 요한은 우리가 받은 구원에 걸맞는 삶을 살 것을 요구한다. 이 짧은 세 절 안에 구원의 '이미 그러나 아직' 개념이 잘 드러나 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1절). 이는 이미 일어난 구원 사건을 가리킨다. 그리고 예수께서 장차 재림하실 때에,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와 같은 온전한 모습이 ..
사도 요한은 "자녀들", "아비들", "청년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각각 말을 전한다. 12절에 사용된 "자녀들"이라는 단어(τεκνία)는 이미 2장 1절에서 사용한 단어로, 그 후에도 2:28; 3:7, 18; 4:4; 5:21에서 사용된다. 이로부터 볼 때, 물리적으로 어린 사람들을 가리킨다기보다, 이 편지의 수신자들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싶다. 즉, 요한은 수신자들이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기에 이러한 내용을 전달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반면 13절에 나오는 "아비들"(πατέρες)과 "청년들"(νεανίσκοι)은 정확히 이 본문과 14절에서만 사용되는 단어들이다. 요한은 아비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청년들은 악한 자를 이..
오바댜는 지난 본문까지 에돔이 이스라엘의 곤경을 보고 즐거워 한 죄로 인해 철저하게 파괴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증거했다. 오늘 본문은 그에 대응하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노래한다. 에돔의 철저한 파괴(옵 1:16)에 이어, "시온 산"에서는 피할 자가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가 선포된다(17절). 그 거룩한 산에서 야곱 족속, 즉 이스라엘은 "자기 기업을 누릴 것"이다(17절). 하지만 이스라엘이 누릴 축복은 "자기 기업", 즉 전통적인 이스라엘 나라의 국경 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18절은 흥미로운 비유를 사용한다. 지푸라기 같은 에서 족속 위에, 야곱 족속이 "불"이 되어 그들을 살라 버릴 것이라는 비유이다(18절). 이스라엘은 에돔을 정복할 뿐 아니라 블레셋과 가나안의 많은 땅까지 전부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