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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3:26-4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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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3:26-43

로보스 2019. 2. 14. 13:25

십자가형 선고를 받은 예수(눅 23:25)는 사형장으로 끌려간다. 그를 끌고 가던 자들은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지게 했다(26절). 많은 이들이 슬퍼하며 예수를 따랐고(27절),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해 임박한 환난을 이야기하시며 자신을 위해 울라고 말씀하신다(28-31절). 마침내 해골이라는 곳에서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33절), 양 옆에 사형 선고를 받은 두 행악자도 동일하게 못 박혔다(32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는 자신을 못 박은 자들을 위하여 청원하는 기도를 올리셨다(34절). 그들은 그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눠가졌고(34절), 백성은 서서 구경했으며(35절), 관리들은 예수를 비웃었다(35절). 군인들 역시 예수를 희롱하며 신 포도주를 주었다(36-38절). 옆에 달린 행악자 중 한 명은 예수를 비방하였지만(39절), 나머지 한 사람은 그를 꾸짖고(40-41절) 예수께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간청했다(42절). 예수께서는 그가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43절).


본문을 순서대로 차근차근 살펴보자. 먼저 예수 대신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진 장면이다(26절). 우선 이 기사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도 동일하게 등장하는 것을 볼 때(마 27:32, 막 15:21), 그는 초대교회 공동체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헌데 동일한 장면을 기록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억지로(ἀγγαρεύω)"라는 단어가 삽입되어 있는 반면 오늘 본문에는 그 단어가 빠져 있다. 그리고 표현이 의미심장하다.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어쩌면 이는 실제 사건에 대한 묘사인 동시에, 그 이후 그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자가 되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 아닐까?


이어 본문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라왔음을 언급한다(27절). 그 중 예수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들이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그들을 "예루살렘의 딸들"이라 부르시며 당신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 울라고 말씀하신다(28절). 이는 태어나지 않은 것을 부러워 할 정도(29절), 차라리 죽는 것을 바랄 정도(30절)의 환난이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70년의 예루살렘 함락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에 관한 말씀을 하시는데(31절), "이같이"라는 표현을 볼 때 푸른 나무는 예수 당신을 지칭하시는 것 같다. 즉 하나님의 아들에게 이런 환난이 임했다면, 죄인인 인간에게는 얼마나 큰 환난이 임하겠느냐는 수사 의문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수께서 "해골"(즉 골고다)이라는 곳에서 두 행악자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32, 33절), 하나님께 청원 기도를 올린다(34절).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리고 본문은 이어 당시 해골에 있었던 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담담하게 그려낸다. 먼저 "그들"은 예수의 옷을 나눠 제비 뽑았다(34절). 요한복음에 따르면 그들은 군인들이었는데(요 19:23-24), 본문은 의도적으로 주어를 쓰지 않는 것 같다. 18절에 처음으로 "무리"가 나온 이후, 본문은 계속해서 "그들"로 주어를 받으며 여기까지 이어온다(눅 23:21, 23, 24, 25, 26, 34). 예수를 박해하는 자들이 예수의 옷까지 나눠 가졌다!


한편 여기까지 따라온 백성들은(27절) 서서 예수의 사형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다(35절).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성전에 모였던 자들이었다(눅 21:38)! 하지만 이제 그들은 예수를 그저 사형수의 하나로 보고 있을 뿐이다. 관리들은 그리스도가 자신을 구원할 수 없냐며 비웃었고(35절), 군인들은 유대인의 왕이라면 스스로를 구원하라고 희롱했다(36-37절). 이들이 사용하는 호칭이 좋은 대조를 이룬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자칭 그리스도로, 로마인들은 예수를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 두 호칭은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할 자"라는 같은 의미를 갖는다. 본문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포기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아이러니로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두 행악자이다. 한 명은 관리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를 그리스도라 부르며 스스로를 구원해 보라고 조롱한다(39절). 반면 다른 한 명은 그를 꾸짖었다(40절). 그들은 죄를 지었기에 이런 벌을 당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예수는 아무 죄가 없는 분이다(41절). 그리고 그는 예수께 "당신에 나라에 임하실 때에"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청하는데(42절), 이로써 이 장면에서 예수가 어떤 분이신지를 올바로 알고 있었던 사람은 오직 이 행악자 뿐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는 예수를 그리스도로도 유대인의 왕으로도 부르지 않지만, 예수가 그리스도요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낙원에서 함께 할 것을 약속하셨다(43절). 즉, 그와 같은 죄인마저(41절) 예수는 당신의 나라에 초대하신 것이다.


본문은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38절)께서 사형 당하시는 순간에조차 어떻게 그 백성을 사랑하셨는가를 너무도 잘 보여준다. 그는 자신을 위해 우는 자들에게 그들이 곧 겪게 될 환난을 경고하셨고(28-31절),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마저 용서해 달라고 청원하셨으며(34절), 그 나라에 속하기를 원하는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셨다(43절). 많은 이들은 그를 그리스도라, 유대인의 왕이라 부르며 조롱했지만, 그는 실로 그리스도요 유대인의 왕이셨다. 십자가에서 보이신 그 사랑을 기억하며, 구레네 사람 시몬처럼 겸손히 십자가를 지고 그 뒤를 따르기 원한다.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사랑

강 같이 온 땅에 흘러

각 나라와 족속 백성 방언에서

구원 받고 주 경배 드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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