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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3:1-12 본문
공회의 재판을 마친 유대인들은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갔다(1절). 그들은 예수를 반역자로 고발했다(2절). 빌라도는 예수에게 유대인의 왕인지 묻고 예수는 긍정하였다(3절). 그 말을 들은 빌라도는 무죄 판결을 내리려 했다(4절). 그러자 무리는 더욱 강하게 그를 고발했고(5절), 빌라도는 예수를 헤롯에게 보낸다(6-7절). 헤롯은 기적을 볼까 싶어 기뻐했지만(8절) 예수는 유대 지도자들의 고발 속에서도(10절)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9절). 헤롯은 그를 조롱하고 빌라도에게 다시 보낸다(11-12절).
오늘 본문은 진리 앞에 선 권력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빌라도는 책임을 회피하고자 한다. 그는 예수가 무죄하다는 것을 알았지만(3-4절) 바로 석방하지 않고 헤롯에게 보낸다(6-7절). 그는 이후에도 올바른 재판관의 모습보다는 무리의 요구를 따르는 타협적인 태도를 보인다(눅 23:24-25). 반면 헤롯은 예수를 재밋거리로 삼는다. 그는 기적을 볼 수 있다는 기대로 기뻐했고(8절), 그 기대가 무너지자(9절) 그저 예수를 희롱하며 즐거워했다(11절).
본문에는 또 하나의 권력자가 등장한다. 바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예수를 참소했다. 거짓 죄목을 꾸며냈고(2절), 무죄 방면이 선고될 것 같자 더 소리를 높여 그를 비난했다(5절). 예수께서 헤롯에게 끌려가신 후에도 쫓아가 계속해서 예수의 죄목을 읊어댔다(10절). 이들은 시기에 눈에 뒤집힌 자들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께서 이들 셋을 대하는 태도가 전부 다르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유대 지도자들의 질문에는 간접적으로 답하셨다(눅 22:69-70). 이는 그들이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눅 22:67-68). 반면 빌라도의 질문에는 바로 답하셨다(3절). 이는 빌라도가 그 대답의 진위 여부에는 크게 관심이 없음을 아셨기 때문일 것이다. 헤롯의 질문에는 아무 답도 하지 않으셨다(9절). 헤롯은 무슨 대답을 하건 그저 유흥으로 즐겼을 것이다.
서로 다른 태도들을 보이고 있지만, 이들 모두는 예수가 "유대인의 왕"(3절)이요 "그리스도"(2절)라는 진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결국 그들은 마음을 합하여(12절) 예수를 죽이게 된다. 사도들은 이를 두고 이렇게 고백했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행 4:27-28)
진리를 마주친 세상은 그 진리를 시기하거나(종교 지도자들), 진리에 무관심하거나(빌라도), 진리를 신기한 구경거리로 취급한다(헤롯). 그리고 결국 진리를 대적하는 일에 힘을 모은다. 사도행전 4장에서 사도들은 예수께서 박해 받으신 것이 결국 그들을 향한 박해로 이어졌다고 기도한다(행 4:29). 이 시대도 마찬가지이다. 진리를 접한 세상은 자신과 다름을 깨닫고 결국 적대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그럴 때 우리 주님처럼 지혜롭게 행동할 수 있기를, 그리고 이를 통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