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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3:13-2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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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3:13-25

로보스 2019. 2. 13. 12:25

빌라도는 예수를 고소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13절) 예수의 무죄를 선포한다(14-15절). 그는 예수의 형을 태형으로 감하려 하였으나(16절) 무리는 강하게 반대하였다(18절). 그들은 대신 민란의 두목 바라바(19절)를 요구했다. 두 번째(20절), 세 번째(22절) 빌라도가 말했지만 무리는 듣지 않았다(21, 23절). 결국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대로(24절)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도록 넘겨주었다(25절).


오늘 본문에서 드러나는 것은 세 번에 걸쳐 선언된(14-15, 20, 22절) 예수의 무죄이다. 예수는 로마의 총독이 보기에도 확실히 죄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백성을 미혹"하지도 않았고(14절)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다(22절). 심지어 헤롯조차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15절). 그럼에도 그가 처형 당한 것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13절)이 강하게 주장(18, 21, 23절)하였기 때문이다. 본문은 종교 지도자들의 시기가 사람을 죽이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음을 잘 보여준다.


또 한 가지 본문에서 나타나는 것은 예수와 바라바의 목숨이 교환되었다는 점이다(18절).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로(19, 25절), 사형을 받아 마땅한 자였다. 흥미롭게도 다른 복음서에서는 유월절을 맞아 죄수 하나를 풀어주는 관행이 있었음을 언급하는 반면(마 27:15, 막 15:6, 요 18:39) 누가복음은 이에 대해 침묵한다. 이 침묵이 의도적인 것이라면, 오늘 본문은 무죄한 예수가 사형수의 목숨을 대신하여 자신의 목숨을 주었음을 드러내는 셈이다.


예수는 참으로 무죄한 분이셨지만, 죽어 마땅한 자를 대신하여 자신의 목숨을 주셨다. 예수가 죽고 바라바가 대신 산 것은 우리의 구원을 잘 보여주는 예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두 번이나 반복된) 바라바의 죄목(19, 25절)은 우리의 삶을 잘 요약하고 있는 것 같다. 율법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된다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민란"과 이웃을 파괴하는 "살인"은 정확히 그 두 계명을 깨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로써 스스로 "옥에 갇힌" 자가 되었다. 예수께서는 바로 그런 자를 대신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주셨다.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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