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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8:9-17 본문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첫 번째 이야기는 교만한 자들을 향해 예수께서 베푸신 비유이다(9절).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 서서 기도하고 있었다(10절). 바리새인은 자신이 죄인이 아님에 감사하며(11절) 자신의 종교적 행위를 자랑했다(12절). 반면 세리는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자비를 구했다(13절). 예수께서는 이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14절).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임이 드러난다. 바리새인은 겉으로 보이는 행위로는 흠 잡을 데 없는 신실한 종교인(12절)이었지만, 그 행위는 그에게 의로움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14절). 반면 세리는 다른 이들에게 경멸의 대상이었지만(cf. 11절), 그가 겸비하여 하나님 앞에 긍휼을 구할 때 하나님은 그를 의롭게 여기셨다(13절). 사실 바리새인 역시 하나님의 기준 앞에서는 죄인 아니겠는가? 결국 그 둘의 운명을 갈라놓은 것은 교만과 겸손이었다.
다음으로 어린 아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이 자기 아기를 데리고 예수께 나오자 제자들을 그들을 꾸짖었다(15절). 아기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시대상을 반영한 태도로 보인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 아이들을 가까이 오게 하시고(16절)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런 아이들의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들어갈 수 없다고 선언하셨다(16-17절).
어린 아이처럼 믿는 것이 무엇일까? 15절에 나오는 "아기"(βρέφος)는 신생아 수준의 아기를 의미한다. 갓난아기들은 태어나서 이 세상을 처음 겪는다. 그들은 세상을 오감으로 느끼면서 고민 없이 그것을 '실체'로 믿는다. 이를 고려해 볼 때,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인다는 것(17절)은 의심 없이, 고민 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실체로 믿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늘 본문의 두 가지 이야기는 각각 하나님의 백성이 취해야 하는 태도를 가르쳐 준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겸손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죄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긍휼을 구하며 하나님 앞에 내놓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롭다고 칭하실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믿음을 가르친다. 이 믿음은 아이와 같은 순진한 믿음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것을 실제로 믿고 살아내는 사람에게 주어질 것이다. 묻는다. 내 삶에는 겸손이, 그리고 믿음이 묻어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