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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8:18-30 본문
예수께 어떤 관리가 와서 예수를 선한 선생님이라 부르며 영생을 얻는 길을 물었다(18절). 예수께서는 먼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분이 없다고 답하신다(19절). 이 구절은 예수의 신성을 의심스럽게 만드는 대표적인 구절이다. 어떤 설교자는 예수께서 예수께 잘 보이려는 그의 마음을 아시고 그 위선을 벗겨내려 하신 거라는 식으로 해석하던데, 본문에 없는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은 위험하다. 나는 본문을 굳이 해석하려 하지 않고, 예수께서 스스로 겸손하게 "선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거부하셨다는 것만 관찰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이제 예수께서는 그에게 계명을 가르치신다(20절). 말씀하신 계명은 십계명의 5-9계명에 해당한다. 그러자 그는 어릴 적부터 이것을 다 지켰다고 답한다(21절). 그러자 예수께서는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예수를 따르라고 하신다(22절). 그러자 그는 근심하기 시작한다(23절). 재산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를 보시며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신다(24-25절).
이 이야기를 두고 또 제멋대로 해석을 덧붙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겉으로만 율법을 지킨 위선자였다고. 하지만 평행 본문인 마가복음에서 예수께서 그를 사랑하셨다는 말씀을 굳이 덧붙이는 걸 보면(막 10:21), 이 일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위선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문이 이야기하는 것은 도리어 그렇게 영생을 구하며(18절) 율법을 성실히 지킨(21절) 사람조차 재물 앞에는 흔들린다는 것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간다는 말씀도 굳이 이상하게 해석하는 자들이 있는데[1][2], 그냥 본문 그대로 어려운 일이라고 받아들이면 안 되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놀랐다.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26절)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신다(27절). 이 말씀은 부자 역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적인 말씀으로 보인다. 즉 사람의 힘으로 재물을 포기하고 하나님 나라를 희구한다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가능해진다. 그래서 성경에는 부자로서 예수를 따랐던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사람이 등장한다(마 27:57).
이제 베드로는 자신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고 강조한다(28절).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것을 포기한 사람은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29-30절). 여기서 걸림이 되었던 것은 "현세에 여러 배를 받"는다는 말씀이었다. 눈에 보이는 보상이 있다는 말씀인가? 곰곰히 묵상해 보니,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특히 가족들을 강조하신다(29절). 이를 볼 때 어쩌면 이 말씀은 교회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본문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 즉 구원을 얻는 것(26절)은 쉬운 일이 아니다(24-25절). 아무리 율법을 지키고 영생을 찾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재물 앞에서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18-22절). 하지만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우리의 악한 본성을 거슬러 하나님의 나라를 찾게 된다(27절). 그렇게 예수를 따른 자들에게는 교회 공동체라고 하는 큰 보상이 있을 것이고, 마침내 내세에는 영생이 주어질 것이다(28-30절).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조차 나의 힘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고백한다. 그리고 믿는 자들이 나의 새 가족이 된다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된다. 이번에 옛 동역자들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는데, 정말 오랜만에 만난 가족처럼 서로 격려하고 중보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이 강퍅한 자를 믿게 하셨고, 믿는 자들의 공동체에 들어가게 하셨다. 그 은혜에 다시 한 번 감사하며 이 귀한 길을 끝까지 따라가기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