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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8:15-2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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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8:15-20

로보스 2016. 10. 12. 09:32

예수의 가르침은 계속된다.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먼저 혼자 가서 권고하고(15절), 다음에는 한두 사람과 함께 가고(16절), 그래도 안 되면 교회에서 권고하고(17절) 포기하라. 우리에게는 매고 푸는 권세가 있고(18절), 두 사람이 모여 구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19-20절).


오늘 본문은 교회의 권세에 대해 복음서에서 거의 유일하게 다루는 부분이다. 흥미롭게도, 같은 자료를 쓴 것으로 보이는 누가복음에서는 마태복음 18:15-20에 해당하는 부분을 한 절(눅 17:3)로, 마 18:21-35에 해당하는 부분을 또 한 절(눅 17:4)로 처리했다. 누가복음에서는 두 절의 내용이 부드럽게 이어지지만, 마태복음에서는 완전히 다른 주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포인트는 무엇인가? 전반부에서는 범죄한 사람을 권고하는 내용이 다뤄진다. 처음에는 은밀하게 홀로 가서 이야기하되(15절), 그 말을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이야기하라(16절). 이는 두 명 이상의 증인을 요구하는 율법의 권고와 같은 맥락에 있다. 권고에 객관성을 더하는 것이다. 그조차 통하지 않으면, 즉 객관적인 증언조차 듣지 않으면, 이제 권세를 가지고 있는 교회의 치리를 받아야 한다(17절). 여기서 한 가지 엿볼 수 있는 것은, 죄를 범한 사람에 대해서조차 여러 번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이다.


교회의 치리에 관해 언급하는 17절에서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로부터 본문 후반부의 내용이 이어진다. 그렇게 여길 수 있는 이유는, 교회의 권세가 곧 하나님의 대리자가 갖는 권세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그들을 계도하면, 그것은 곧 하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한 것과 동일하다(18절). 예수께서는 교회, 즉 성도들의 공동체가 갖고 있는 능력을 설명하시면서 공동체로서 간구하는 것이 힘이 있음을 말씀하신다(19절).


20절 말씀은 보통 기도 모임의 능력을 말할 때 인용되는데, 이는 19절의 흐름 속에서 그렇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해석은 17-18절의 맥락에서 20절을 읽어 교회의 치리가 예수의 권세로 보증된다는 의미로 보기도 한다. 후자의 해석을 따른다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썼던 표현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고전 5:3-5a)


어느 쪽 해석을 취하든지, 본문이 전체적으로 교회 공동체의 권세를 말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교회는 하늘의 권세를 땅에서 수행하는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그런 면에서 치리와 권징이 올바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작금의 한국 교회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합심하여 무엇이든 구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겠다 약속하셨건만(19절), 이 말씀을 믿고 순전한 마음으로 모여 기도하는 교회가 얼마나 되는가? 주님이 공동체 안에 함께 하시겠다 말씀하셨건만(20절), 주님이 계신 것처럼 경외하며 모이는 교회가 얼마나 되는가? 당장 나부터 지키지 못함을 통회한다. 주여, 교회를 살려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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