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os credit

딛 3:3-7 본문

큐티

딛 3:3-7

로보스 2016. 1. 22. 00:05

지난 본문에서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언급한 바울은, 우리가 그들에 비해 나을 것이 없음을 논증한다. 우리 역시 죄인이었지만(3절)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을 얻었다(4-5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셨고(6절)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7절). 따라서 우리가 그들에게 우월감을 가질 것이 전혀 없다(딛 3:2).


오늘 본문은 다시 한 번 교만의 문제를 친다. 어쩌면 그레데 교인들은 자신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의롭다고 믿으며 그들을 비방하고 정죄했는지도 모르겠다. 바울은 그런 이들에게 우리도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음을 일깨워준다(3절).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한 구원을 허락하셨고(5절),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셨다(7절). 그렇다. 우리의 의가 아닌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이유 없는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자비", "사람 사랑하심"(4절), "긍휼하심"(5절), "은혜"(7절)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 내가 받은 구원이 나로 인한 것이 아닐진대, 내가 다른 이들을 어찌 정죄하고 비판하겠는가?


오늘 새벽기도 설교 본문은 요나서였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구원 받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욘 4:1-3). 그는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된 자"가 동일한 은혜 안에 거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목사님께서는 여기서 포도원 품꾼의 비유(마 20:1-16)를 들어 하나님의 자비에 차별이 없음을 설명하셨다. 하나님의 자비는 내가 일한 양에 비례하지 않는다. 이것이 은혜요, 긍휼이다.


우리는 종종 다른 이들에 대해 (심지어 교회 안에 있는 믿음이 어린 자들을 향해서까지!) 나의 지식과 "의로운 행실"을 근거로 판단하고 정죄한다. 아니, "우리"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살고 있다. 하나님이 나의 죄를 사하셨건만, 나는 형제자매의 사소한 실수조차 넘기지 못하고 도끼눈을 뜬다. 이 얼마나 교만한가? 나의 교만을 회개하고 사랑의 마음을 품을 수 있길 구한다. 주여, 내게 겸손과 온유를 더하소서.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롬 14:4)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고전 8:1b-3)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