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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0:1-16 본문
예수께서는 70명의 사람들을 세우사 둘씩 짝지어 당신이 가시는 길에 앞서 파송하셨다(1절). 그러면서 추수할 것은 많지만 일꾼이 적기에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청하라고 말씀하신다(2절). 이는 이들에게 직접 하신 말씀이라기보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자들에게 (그리고 누가복음의 독자들에게) 하나님께 더 많은 전도자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들이 이리 가운데로 가는 어린 양들과 같다고 비유하시며(3절), 아무런 재산 없이 누구에게도 문안하지 말고(4절) 그저 영접하는 집에서 주는 것을 받으며 머무르라고 하신다(5-7절). 영접하는 동네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치되(8-9절), 영접하지 않는 동네에서는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라고 하신다(10-12절). 그러면서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던 동네들을 열거하신다(13-15절). 이들에게는 예수의 권위가 주어졌기에 이들을 거부하는 자들은 예수를 거부하는 것이요, 곧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다(16절).
본문은 열두 제자를 파송하시는 9:1-5의 짧은 구절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기본적인 메시지는 동일하다. 보내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는 것이었고(9절, 9:2), 여행을 위하여 여분의 재산을 챙기지 말라고 당부하신다(4절, 9:3). 오늘 본문은 여기에 덧붙여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는 명령을 하시는데(4절), 앞의 명령과 연결시켜 볼 때 세상의 재물 뿐 아니라 인간 관계에도 유혹 받지 말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두 말씀에서 모두 처음 들어간 집에서 머물다가 떠나라는 말씀이 나온다(7절, 눅 9:4). 다만 오늘 본문에는 처음 들어간 집에서 평안을 빌라는 말씀(5-6절)과 주는 대로 먹고 마시라는 말씀이 추가되어 있다(7절). 눅 9:4의 짧은 명령이 확장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고전 9: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가 어쩌면 이 말씀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영접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하시는데(10-11절, 눅 9:5),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서는 그 동네들을 소돔과 비교한다(12절). 그들을 보내신 분이 예수시기에, 그들을 거부하는 것은 예수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16절). 마찬가지로, 예수를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예수를 거부하는 것 또한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다(16절). 예수를 거부했던 고라신과 벳새다(13절), 가버나움(15절)은 그 교만함으로 인해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보다 못할 것이라는 저주를 받는다(13-15절).
본문은 전도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비록 현실은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지만(3절), 예수께서는 이들에게 권세가 있다고 강조하신다. 이들은 병자들을 고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할 수 있었으며(9절), 이들을 영접하지 않는 자들을 저주할 권세가 있었다(10-11, 16절). 다만 전도자들이 주의할 점은 세상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4, 7, 8절). 어쩌면 누가가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에, 받는 대접에 따라 집과 동네를 옮겨다니는 사이비 전도자들이 있었는지도 모른다(7, 8절). 본문은 그들에게 따끔하게 경고하고 있다.
본문의 교훈은 단순하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파송한 자들에게는 먹고 사는 것을 책임지실테니, 이 땅에서의 삶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에만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일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다.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복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임박한 심판을 선포해야 한다. 주님의 탄식 소리가 들린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나는 추수할 일꾼으로 살아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