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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또 다른 천국 비유를 주신다(1절). 어떤 임금이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는데(2절) 종들을 보내 손님들을 불렀지만 그들은 오지 않고 도리어 종들을 공격했다(3-6절). 임금은 분노하여 그들을 멸망시키고(7절) 대신 다른 이들을 아무나 잔치로 불렀다(8-10절). 하지만 잔치에 예복을 입지 않고 온 사람은 용납하지 않았다(11-14절). 우선 천국이 왕자의 혼인 잔치로 비유되고 있음에 주목하자. 천국은 좋은 곳이다. 임금이신 하나님께서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춘 곳이다(4절). 따라서 누구나 사모할 만 한데, 오늘 비유에서는 처음 초대받은 자들이 그 잔치를 거부한다. 사실 앞의 비유인 포도원 농부 비유와 평행한 부분을 많이 찾을 수 있다.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인 ..
예수께서는 또 하나의 비유를 드신다(33절).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그것을 농부들에게 맡긴 채 외국으로 떠났다(33절). 추수기에 열매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냈는데 농부들은 도리어 그 종들을 공격했다(34-36절). 주인은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냈지만(37절) 그들은 아들을 죽였다(38-39절). 주인은 농부들을 진멸할 것이다(40-41절).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다른 이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히 말씀하셨고(42-44절), 종교 지도자들은 분노했다(45-46절). 포도원 주인의 비유는 해석하기 어렵지 않다.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 포도원은 "하나님의 나라"(43절), 농부들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 종들은 예언자들, 아들은 예수를 가리킨다. 즉, 비유의 핵심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하..
제자들이 예수께 천국에서 큰 사람을 여쭙자(1절),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 하나를 가리키시며 그런 자가 천국에서 큰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2-4절). 또한 그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은 상으로(5절), 실족하게 하는 것은 벌로 이어진다고(6-14절) 말씀하신다. 본문의 전반부(1-4절)는 천국에서 큰 사람이 누구인지 다루고 있다. 예수께서는 분명하게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4절). 그런데 그런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신 것(3절)을 보아, "큰 사람"이라는 말은 실제로 크고 작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기보다 수사적 표현으로 보인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서 인정 받는 존재를 "큰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 그렇다면 본문은 한 가지 아이러니를..
예수께서는 이제 제자들에게 당신의 고난와 부활을 예언하신다(21절). 베드로는 이에 반발하나(22절) 예수께서는 그를 꾸짖으신 후(23절), 제자도에 대해 가르치신다(24-28절). 오늘 본문의 첫 주어는 "예수 그리스도"이다(21절). 십자가의 죽으심은 단순히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 즉 기름 부음 받은 자로서의 사역임을 언급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이는 예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실 때 하신 말씀과도 연결된다. 예수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일"로서 중요한 것이었다(23절).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서 꼭 있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를 따르는 자라면 자신의 목숨을 아쉽게 생각하지 않는다(24절). 이는 눈에 보이는 삶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자는 결국 멸망할 것이요, 그 삶을 기꺼이 예수를..
예수께서는 천국에 관한 다섯 가지 비유를 드신다. 겨자씨의 비유(31-32절), 누룩의 비유(33절),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44절), 진주를 구하는 장사의 비유(45-46절), 그물의 비유(47-50절)가 그들이다. 예수께서는 무리를 비유로만 가르치셨는데(34-35절), 제자들은 마침내 그 비유를 깨닫게 되었다(51절).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칭찬하셨다(52절). 오늘 본문에서 마태는 예수께서 비유로 무리를 가르치신 이유(34절)를 한 가지 더 제시한다. 이는 예언의 성취(35절)로, 특별히 마태는 70인역의 시편을 인용하고 있다.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시 78:2) 시편 말씀의 컨텍스트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을 설명하는 것이..
오늘은 비유와 그 해석을 묶어 보았다. 예수께서는 천국을 설명하기 위해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을 비유로 드신다(24절). 원수가 가라지를 뿌려(25절) 둘이 섞여서 자라는데(26절) 주인은 그것을 뽑지 않고(27-29절) 추수 때 둘을 분리하겠다고 말한다(30절).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요청에 이 비유를 해석해주시는데(36절), 세상 가운데 천국의 자녀와 악한 자의 자녀가 섞여서 자라지만(37-39절) 세상 끝에 둘이 구분되어 전자는 영광에, 후자는 멸망에 들어갈 것이라는 뜻이었다(40-43절). 오늘 본문 역시 무리와 제자를 구분한다.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 비유를 주셨고(24절), "무리를 떠"나 "제자들"에게만 비유의 의미를 설명해 주셨다(36절). 흥미로운 것은, 그 설명의 끝에 "귀 있는..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가이드라인을 주신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상으로 전도해야 하고(5-6절),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말과 기적으로 보여주어야 했다(7-8절). 불필요한 재산은 금지되었고(9-10절), 대신 대접해주는 집에서 묵을 수 있었다(11-12절).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집이나 성은 화를 자초할 것이다(13-15절). 지난 본문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이 자세한 가이드라인은 1차적으로 열두 제자를 향한 것이었지만, 더 나아가 성경 독자들을 향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제자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와 같아야 한다! 하지만 한 가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이, 이 본문은 아마도 유대인 독자들을 주독자로 상정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가이드라인을 이방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적..
이번에는 간음에 관한 율법을 "완전하게" 하신다(27절). 간음 금지 역시 십계명에 등장하는 중요한 계명(출 20:14, 신 5:18)으로, 율법의 많은 부분이 성적 문란을 금지하고 징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는 이미 간음죄를 범한 자라고 선포하신다(28절). 행동으로 죄를 드러내지 않더라도 마음 속에 이미 그 욕망을 품은 사람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더욱 무섭게도, 예수께서는 눈이 나를 실족하게 한다면 빼버리는 것이 낫고(29절), 손이 나를 실족하게 한다면 찍어 내버리는 것이 낫다고 선언하신다(30절). 이는 죄를 지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장애인으로 사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서 "지옥"(γέεννα)은 미래에 찾아올 심판의 한 가지 형태로 보인..
지난 본문, 즉 율법을 완성하러 온 예수 그리스도(마 5:17-20)에 관한 본문에 이어, 이제 구체적인 각론이 다루어진다. 앞으로 총 다섯 개의 율법 계명이 하나하나 "...하라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의 패턴으로 인용되고,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는 예수의 사역이 어떠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다루어진다. 오늘 본문은 그 중 첫 번째로 살인에 관한 계명을 다룬다. 율법은 살인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21절). 살인 금지 계명은 십계명의 한 조항으로 들어가 있으며(출 20:13, 신 5:17), 율법의 많은 부분이 사람을 죽였을 경우에 어떻게 치리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예수께서는 그 계명을 더 확장하신다. "형제에게 노하는" 것,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것, "[형제를 대하여]..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과정을 그리고 있다(18절). 예수의 모친 마리아는 약혼 상태에서 성령으로 잉태한다(18절). 약혼자 요셉은 이를 문제시하지 않고 파혼을 결심한다(19절). 그 때 천사가 나타나서 이 임신이 성령으로 인한 것임을 알려주고(20절) '예수'라는 이름을 계시한다(21절). 처녀가 잉태한 것은 구약 예언의 성취이다(22-23절). 요셉은 마리아를 데려왔지만(24절) 출산 때까지 동침하지 않았고, 태어난 아들에게 계시를 따라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25절). 마태는 명백하게 동정녀 탄생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예수께서 처녀에게 나신 것은 구약 예언의 성취였다(22-23절). 마태는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한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
전도서의 마지막이다. 전도자는 다시 한 번 헛됨을 외친다(8절). 전도자는 사람들에게 지혜를 가르쳤고(9절) 지혜의 말을 기록으로 남겼다(10절). 이 지혜의 말은 듣는 이의 마음에 깊이 박힌다(11절). 하지만 공부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12절). 전도자는 자신의 교훈을 마무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고 권면한다(13절). 이는 하나님이 최후의 심판자이시기 때문이다(14절). 오늘 본문은 전도서의 시작 부분과 잘 대응된다. 전도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외치면서 자신의 교훈을 시작했다(전 1:2). 마무리 역시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로 끝난다(8절). 또한 시작 부분에서 전도자가 소개되었던 것처럼(전 1:1) 마무리 부분에서도 전도자가 소개..
전도서는 슬슬 대단원을 향해 흘러간다. 이제 전도자는 청년의 때와 노년의 때를 비교하여 가르침을 베푼다. 빛은 아름다운 것이지만(7절), 그 빛을 보지 못할 날들도 장차 다가올 것이다(8절). 따라서 젊은 날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그 때를 만끽하되,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고 죄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하라(9-10절). 젊은이들은 흔히 미래를 생각하지 못한다. 전도자는 그들에게 "캄캄한 날들"을 생각하라고 권면한다(8절). 만약 노년의 어둠을 생각한다면, "눈으로 해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된다(7절). 전도자는 이 맥락에서 청년들에게 교훈을 베푼다. 젊은 시절을 근심 없이 즐기라. 다만 심판주가 계심을 인식하고 죄를 짓지는 말라(9절). 10절은 이를 잘 요약한다. "근심이 네 마음..
전도자는 인과응보가 세상에서 성립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악인들이 잘 되는 것 같지만(9-12a절),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장수하고 잘 될 것이다(12b-13절). 세상에서는 악인 때문에 벌을 받는 의인이 있고, 의인 때문에 상을 받는 악인이 있다(14절). 따라서 세상을 살 때는 그저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좋다(15절). 하나님의 뜻은 설령 지혜자라 하더라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16-17절). 본문은 전도자가 관찰한 불합리한 사항과 그에 대한 신앙적 대답이 교차하여 등장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부분(9-13절)에서, 전도자는 사람을 해롭게 한 악인(9절)의 행위가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지는 것에 대해 절망감을 표한다(10절). 결국 그 징벌..
오늘 본문은 크게 두 가지 주제로 나뉜다. 불의한 세상에 대한 잠언(8-9절)과 물욕에 대한 가르침(10-17절)이다. 불의한 세상에 대해, 전도자는 불의한 자들을 판단하는 분이 계시다며(8절) 최종적인 심판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모든 인간이 먹을 것 앞에서 평등하다(9절)는 주제를 징검다리 삼아 물욕 이야기로 넘어간다. 물욕을 가진 자는 자족하지 못한다(10-13절). 죽을 때 가져가지도 못하는 재물로 인해 평생 고생만 하게 될 것이다(14-17절). 전반부는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지난 본문에서부터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인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세상의 불의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다. "빈민을 학대"하고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자들은 결국 그들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기 때..
전도자는 인간의 판결이 불완전할 수 밖에 없음을 직시하며(16절), 언젠가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소망을 둔다(17절). 인간과 짐승은 하나님 앞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로(18절), 동일하게 죽음을 맛본다(19-20절). 어떤 이들은 두 존재의 운명이 다르다고 하나 이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21절). 따라서 사람은 현재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낫다(22절).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과 사후 세계에 대해 다룬다. 사람의 판결에는 악이 끼어들 수 밖에 없다(16절). 이는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공의를 베풀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심판만이 의롭다(17절). 따라서 사람의 판결에 실망하더라도 의로운 재판관이 언젠가 심판하실 것을 기대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전도자는 사후 세계에 대해 불가..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베푸신대로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이 기쁜 일이라고 고백한다(24-25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결국은 사랑하는 자에게 상을 주시고 죄인을 벌하실 것이라고 선포한다(26절). 하지만 모든 것은 때가 있기에(1-8절) 이것 또한 헛되이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26절). 본문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 기쁨을 주셨다(24-25절). 이는 지금까지 그가 탄식하고 있던 헛된 수고에 의미를 부여한다. 25절은 개역개정과 대부분의 영어 성경 번역이 다른데, 이는 히브리어 원문에서 비교의 대상이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NIV, NLT 등은 이를 "하나님 없이 누가 먹고 즐길 수 있겠는가?"와 같이 번역해 놓았다...
야고보 사도는 부자들에 대한 경고로 본문을 시작한다. 그들은 품꾼을 착취하고(4절) 사치하며(5절)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기 때문에(6절) 심판을 받을 것이다(1-3절). 이는 실제로 교회 안에 그런 부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피해자들을 대변하여 가해자들을 저주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스도인 부자들에게 직접 하는 말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과격한 말투이기 때문이다. 그와 상반되게, 야고보는 "형제들"에게 고난을 참으라고 권면한다(7, 10-11절). 세상을 심판할 주님께서 곧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8절). 그 분 앞에서 심판을 면하기 위해 서로 원망하지 말고(9절) 헛된 맹세를 일삼지 말라(12절). 그렇다면 이 마지막 때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기도하는 삶을 살고(13-18절), 미혹되어 진리를 ..
기브아 성읍의 불량배들이 레위인이 묵고 있는 집을 둘러싸고 레위인을 요구한다(22절). 집주인인 노인은 이를 만류하였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고(23-24절), 결국 레위인은 자신의 첩을 대신 내보내 능욕당하게 한다(25절). 새벽에 풀려난 여인은 레위인이 묵고 있는 집 대문 앞에 쓰려져 죽었고(26절), 아침에 길을 나서려던 레위인에게 발견되었다(27-28절). 그는 여인의 시체를 조각내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보내며 심판을 촉구한다(29-30절). 아, 이는 정말 비극적인 본문이다. 본문의 내러티브는 천사를 범하려 한 소돔 백성의 이야기(창 19장)과 매우 유사한데, 레위인은 천사에, 노인은 롯에, 그리고 불량배들은 소돔 주민에 대응한다. 이러한 문학 장치를 통해 사사기 기자는 기브아 주민들의 죄가 심히 ..
블레셋과 암몬의 손에서 곤고를 당한 이스라엘(삿 10:7-9)은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한다(10절). 하나님은 그들이 다른 신을 따랐으니 그 신에게 구원을 청하라고 응답하신다(11-14절). 이스라엘은 겸손하게 구원을 간구하였고(15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때문에 근심하셨다(16절). 한편 암몬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은 길르앗에 진치고 새로운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17-18절). 본문은 이스라엘의 회개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회개는 무조건적인 회개였다.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 내옵소서"(15절) 이는 범죄한 것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심판까지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다...
승승장구하던 아비멜렉은 데베스를 침공한다(50절). 데베스 주민들은 망대로 피신하였고(51절) 과거에 불을 놓아 재미를 본(삿 9:48-49) 아비멜렉은 동일한 방법으로 망대를 불사르려 하였다(52절). 그 순간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던져 아비멜렉의 머리를 깼고(53절), 아비멜렉은 여자의 손에 죽고 싶지 않아 자기 조수에게 자신을 찌르라고 명한다(54절). 아비멜렉 군대는 흩어져 버렸다(55절). 성경은 이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었다고 해석한다(56-57절). 오늘 본문은 아비멜렉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지혜를 믿었고, 과거에 성공한 적 있는 방법을 다시 써먹으려고 하였다(52절). 하지만 그는 결국 여자의 손에 죽었다(53절). 자신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성경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