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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8:1-14 본문
제자들이 예수께 천국에서 큰 사람을 여쭙자(1절),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 하나를 가리키시며 그런 자가 천국에서 큰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2-4절). 또한 그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은 상으로(5절), 실족하게 하는 것은 벌로 이어진다고(6-14절) 말씀하신다.
본문의 전반부(1-4절)는 천국에서 큰 사람이 누구인지 다루고 있다. 예수께서는 분명하게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4절). 그런데 그런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신 것(3절)을 보아, "큰 사람"이라는 말은 실제로 크고 작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기보다 수사적 표현으로 보인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서 인정 받는 존재를 "큰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
그렇다면 본문은 한 가지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는 인정 받는다. 이는 마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를 떠오르게 한다. 천국의 비밀은, 이 세상에서 포기한 것들을 다시 더 풍성하게, 더 온전하게 얻는 데에 있다. 겸손은 자신의 가치를 부인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가치를 얻는 것이기도 하다. 베드로는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 5:6)
본문의 후반부(5-14절)는 약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친다. 예수께서는 그런 자 하나를 영접하면 당신을 영접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고(5절), 그런 자 하나를 시험에 들게 하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셨다(6절). 이 부분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병행 구절을 볼 때 마태가 좀 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마가복음 9:33-47에는 "소자"에 관한 이야기 외에도 여러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마태는 그들을 다 빼고 "소자"에 대한 이야기만 남겼다(5-9절). 그리고 누가복음 15장에서 열 드라크마, 두 아들 이야기와 함께 편집된 양 백 마리의 이야기가 여기서는 똑 떨어져서 혼자 등장한다(12-13절).
마태는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각 짧은 도막 다음에 구체적인 메시지를 위치시켰다(10, 14절). 이 작은 자 중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그 중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문자적으로 "작은 자"는 어린 아이를 가리키지만,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이는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을 대표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그것이 겸손이다.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 세상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무시 당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들 모두가 소중하고, "그들의 천사들"이 하나님을 직접 알현한다(10절). (성경은 수호 천사 개념을 인정하는 듯 하다. 계 3:5를 보라.)
본문은 천국의 원리를 밝힌다.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자는 천국에서 그 가치를 인정 받는다. 또한,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가지고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 두 가지 모두 세상의 원리와는 정반대이다. 그러기에 의지적으로 세상을, 육신의 본성을 거슬러야 이 원리대로 행동할 수 있다.
아직도 내 안에는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꿈틀거린다. 며칠 전에는 그 욕구가 분출되어 일부 주위 사람들에게 노출된 적이 있었다. 뒤늦게 깨닫고 수습하긴 했지만, 이미 볼 사람들은 다 본 후였다. 그래서 그 일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던 차에, 오늘 아침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놀라운 말씀을 주셨다. 어린 아이처럼,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내가 가진 것들이 내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요,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하자. 그리고 세상의 시선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으로 주위를 바라보자. 주여, 이 죄인을 사하시고 그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게 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