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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7:1-13 본문
예수께서 따로 세 명의 제자들과 높은 산에 올라가셨을 때(1절) 그들 앞에서 변형되셨다(2절). 모세와 엘리야도 나타나 예수와 대화를 나눴다(3절). 베드로는 예수께 초막 셋을 짓겠다고 말했다(4절). 그 때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려왔고(5절), 제자들은 심히 두려워했다(6절). 예수께서 그들을 위로하시며(7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하셨다(9절). 이후 제자들과 엘리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신다(10-13절).
오늘 본문은 "엿새 후"라는 매우 구체적인 시간을 제시한다(1절). 흥미롭게도 이 표현("μεθ' ἡμέρας ἓξ")은 마태복음에 딱 한 번 등장한다. 마태가 실증주의적 관점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닐진대, 그렇다면 이 숫자에 어떤 상징성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성경에서 엿새가 사용되는 예로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창 2장), 여호수아의 여리고 공략(수 6장) 등이 있는데, 나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사건을 살펴보고자 한다.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출 24:16) 하나님께서는 십계명 돌판을 주시기 전에 모세가 시내 산에 오르고도 "엿새 동안"의 시간을 기다리게 하셨다. 그리고 그 이후에서야 그를 영광 가운데로 부르셨다. 만약 지난 본문의 마지막 구절(마 16:28)을 변형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예수께서는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보여주시기 전에 엿새의 준비 기간을 두신 셈이다.
구약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그 구름이 짙게 나타났고, 그 안에서 음성이 들려왔다(5절). 이로써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이 증명되었다. 베드로는 이 경험을 감격에 차서 자신의 편지 속에 남겼다(벧후 1:16-18). 예수께서는 이것 또한 비밀에 부치라고 하셨는데(9절), 때가 이르기 전에 예수의 "왕권"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함이셨을 것이다.
제자들의 반응도 흥미롭다. 우선 딱 세 명의 제자들만 그 현장에 있었다(1절). 이는 초대 교회의 권위 있는 지도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 즉 이미 죽은 믿음의 선진들이 나타나 예수와 대화를 나눌 때(3절) "여기 있는 것이 좋"다고 느꼈다(4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 머물고 싶은 곳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5절) 큰 두려움에 빠졌는데(6절), 이는 구약에서도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 자들이 두려워했던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중보자이신 예수께서는 그들을 위로하시고 진정시키셨다(7절).
엘리야를 본 그들은 내려오면서 엘리야가 "먼저" 온다는 것의 의미를 여쭙는다(10절). 예수께서는 그 엘리야가 세례 요한이라고 말씀하시며(13절),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고난을 받으셔야 함을 언급하셨다(12절). 메시야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온다는 구약의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진다(11절). 하지만 그 예언의 성취를 보고도 깨닫지 못한 자들이 그를 핍박하였다(12절).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그 나라를 다스리실 분이다. 그 영광을 본 제자들은 그를 흠모하였고, 그 현장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나도 그 영광을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원한다. 훗날 영원히 그 영광 속에 살 날이 있음을 믿지만, 그럼에도 이 세상 가운데 그 나라의 맛을 누리는 경험이 있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이 부족한 자가 제자들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생을 바칠 수 있기를.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