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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6:21-28 본문
예수께서는 이제 제자들에게 당신의 고난와 부활을 예언하신다(21절). 베드로는 이에 반발하나(22절) 예수께서는 그를 꾸짖으신 후(23절), 제자도에 대해 가르치신다(24-28절).
오늘 본문의 첫 주어는 "예수 그리스도"이다(21절). 십자가의 죽으심은 단순히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 즉 기름 부음 받은 자로서의 사역임을 언급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이는 예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실 때 하신 말씀과도 연결된다. 예수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일"로서 중요한 것이었다(23절).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서 꼭 있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를 따르는 자라면 자신의 목숨을 아쉽게 생각하지 않는다(24절). 이는 눈에 보이는 삶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자는 결국 멸망할 것이요, 그 삶을 기꺼이 예수를 위해 드리는 자는 생명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25절). 이것이 사실 약삭빠른 것이다. 생명만큼 귀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26절). 예수께서는 마지막 날에 그 모든 것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27절).
마지막 절(28절)은 난해한데, 문맥상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은 직전 절의 최후 심판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즉, 예수의 당대 제자 중에 예수의 재림을 목격할 사람이 있으리라는 예언이 되는데, 그렇다면 그 예언은 틀린 예언이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도무지 이 절을 합리적으로 해석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다. (다른 해석들이 존재하는 것도 알고 있지만 다들 성에 차지 않는다.)
한 가지 재미있는 상상으로, 이 절을 요한복음 21장의 이야기와 연결을 시켜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요 21장을 보면 당시 초대 교회에 사도 요한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요 21:23). 어쩌면 마태는 그 이야기를 이곳에 나름 윤문하여 적어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렇게 되면 해당 절은 오해로 기록된 절이 된다.
본문의 주된 메시지는 예수의 고난과 그를 따르는 자들의 고난이다. 무엇보다 중한 가치인 "생명"(26절)을 위해서 기꺼이 내 삶을 예수를 위해 드릴 수 있는가(24-25절)? 내 삶의 현장에서 나를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를 수 있기를 원한다. 연약함을 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