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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아비멜렉파 방백인 스불(삿 9:28)은 가알의 말에 분노하여(30절) 아비멜렉에게 전갈을 보내(31절) 세겜을 기습하게 한다(32-33절). 아비멜렉이 성으로 다가오자(34-35절) 가알은 그에 맞서 싸우나(36-39절) 결국 패주한다(40-41절).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과도 전투를 벌여(42-44절) 세겜을 무너뜨린다(45절). 엘브릿 신전으로 피신한 세겜 사람들(46절)을 쫓아간 아비멜렉은 그 신전의 보루에 불을 질러 그들을 몰살시킨다(47-49절). 본문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언급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어느 편도 들지 않으시고 둘 사이의 전쟁을 주관하셨다(삿 9:23). 세겜 사람들도, 아비멜렉도 모두 흉악한 죄를 저지른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모두 멸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이..
아비멜렉이 집권한지 3년이 흐르자(22절),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신한다(23절). 이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요(23절),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의 죄를 벌하기 위함이었다(24절). 세겜 사람들은 강도짓을 일삼으며(25절) 가알이라는 새로운 지도자를 쫓는다(26절). 이들은 아비멜렉을 저주하며(27절) 전쟁을 선포한다(28-29절). 오늘 본문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은 모두 무죄한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였고, 양쪽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24절). 그 결과 그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다(23절). 불과 삼년 전에 "그는 우리 형제라"라고 말했던(삿 9:3) 세겜 사람들이 이제는 아비멜렉을 저주한다(27절). 죄를 지은 자는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
옷니엘이 죽고(삿 3:1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12절). 하나님은 모압 왕 에글론으로 그들을 치게 하셨고(12, 13절), 이스라엘은 18년 동안 에글론의 치하에 있었다(14절).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왼손잡이 에훗"을 세우셨다(15절). 에훗은 공물 바칠 때를 노렸다(15절). 그는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칼을 품고(16절) 에글론에게 나갔다(17절). 에훗은 에글론에게 은밀하게 말을 전하는 척 하며 사람들을 물리치고(18-19절), 둘만 남았을 때 칼을 빼어 에글론을 찔렀다(20-22절). 비둔한 에글론(17절)은 피와 기름을 흘리며 죽었다(22절). 이스라엘 백성은 미련한 행동을 다시 한 번 반복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께서 시험을 위해 남겨두신 이방 민족(1, 2절)은 블레셋, 가나안, 시돈, 히위 족속이었다(3절). 하나님은 이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다(4절). 이스라엘은 그들 가운데 살면서(5절) 그들과 차츰 동화되어갔다(6절).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을 잊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기 시작했다(7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셨고 그 결과 메소보다미아의 왕인 구산 리사다임이 이스라엘을 침공한다(8절).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갈렙의 조카인 옷니엘을 사사로 세워 구산 리사다임을 물리치게 하셨고(9, 10절), 40년간 평화가 찾아왔다(11절). 오늘 본문은 첫 번째 사사인 옷니엘의 이야기와 더불어 전체적인 이야기의 배경을 제시한다. 지난 본문에서 하나님의 시..
이번 본문은 요셉 가문의 가나안 정복기를 서술한다. 먼저 요셉 가문은 벧엘을 공격한다(22절). 정탐 중에 정보를 알려준 한 사람에게 요셉 가문은 자비를 베풀어 그와 그의 가족을 풀어주었다(24, 25절). 그들은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벧엘의 원래 지명인 루스를 본따(23절) 성읍을 건설한다(26절). 한편 므낫세는 벧스안, 다아낙, 돌, 이블르암, 므깃도의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고(27, 28절) 에브라임은 게셀의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다(29절). 본문은 두 가지 이야기를 교차시켜 보여주고 있다. 먼저 요셉 가문이 벧엘을 정복한 이야기에서는,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는 것이 명시적으로 표현되어 있다(22절). 즉, 승리는 이미 담보되어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
이제 사사기를 묵상한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도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가나안 정복 사업을 펼친다(1절). 유다와 시므온은 앞서서 가나안 땅을 정복한다(2, 3절). 그들은 베섹을 정복하고(4-7절),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으며(8절), "산지와 남방과 평지"를 쳐서 무너뜨린다(9절). 유다 자손은 헤브론을 공격하였고(10, 20절), 드빌을 쳤다(11-16절). 또한 스밧, 가사, 아스글론, 에그론을 점령하고(17-18절) "산지 주민"까지 쫓아낸다(19절). 하지만 유다 자손은 골짜기의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고(19절) 베냐민 자손은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다(21절). 오늘 본문은 전반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거둔 승리를 다루고 있다. 그 승리는 누구의 것인가? 바로 하나님의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마리아로(행 8:5-25), 아소도와 가이사랴로(행 8:40), 룻다와 사론으로(행 9:32-35), 욥바로(행 9:36-42) 퍼져 나갔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내시의 경우(행 8:26-39)를 제외한다면, 이들은 모두 유대인들을 향한 사역이었다. 따라서 이방인 백부장인 고넬료와 그 가족이 성령을 받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행 10:44-48)은 할례자 그리스도인들에게 걸림이 되는 소식이었을 것이다. 오늘 본문은 그에 따른 예루살렘 공의회를 다룬다. 고넬료의 회심 소식을 들은(1절) 예루살렘의 성도들 중 일부는 베드로가 도착하자 그를 비난하였다(2-3절). 베드로는 그들에게 차근차근 일어난 일을 설명한다(4절). 베드로는 먼저 자신이 본 환상을 설명하고(5-10절), 그 때 찾아온..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의 고별 설교를 담고 있다. 본문은 이스라엘에 평화가 찾아온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죽음을 앞두었다고 말하며 시작된다(1절). 사실 이 때 아직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다 정복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본문은 여호수아와 그 때의 이스라엘이 받은 사명을 다했기에 마치 가나안 정복이 완료된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 평화로운 때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불러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긴다(2절). 그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행하신 역사를 돌아보며(3, 9절)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 함께 하실 것이라고 고백한다(4, 5, 10절).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해야 할 책무가 있었다. 바로 율법을 지키며(6절) 이방 신을 멀리하는 것이었다(7절). 즉 ..
요단 동편 지파들은 "여호와의 제단 모형"을 후손들의 "증거"로 삼겠다고 말하며(28, 34절) 결코 여호와를 거역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29절). 이스라엘 조사단은 그 이야기를 듣고 좋게 생각했고(30절), 범죄한 것이 아님을 확증하였다(31절).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조사단이 이 일을 보고하자(32절)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군대를 해산시켰다(33절). 사실 이 본문은 지난 본문과 강하게 결속되어 있는 본문으로 보인다. 지난 본문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올바르게 해석하기 힘든 본문이다. 이스라엘 조사단이 요단 동편 지파들의 설명을 듣고 좋게 생각한 것은 "여호와의 손"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31절). 가나안의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를 받고 기뻐한 것(33절) 역시 전쟁을 ..
전투 준비를 마친 이스라엘은 요단 동쪽 땅에 비느하스를 대표로 하는 사절단을 보낸다(13절). 이 사절단은 각 지파에서 "가문의 수령"을 뽑아 구성한 사절단이었다(14절). 이들은 길르앗 땅에 도착하여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메시지를 전한다(15-20절). 이들이 전한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라"(16, 19절)는 것이었는데, 이를 위하여 "브올의 죄악"(17절)과 아간의 범죄(20절)를 인용한다. 브올의 죄악은 아마 이방 여인들과 음행하면서 이방 신을 섬긴 사건(민 25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심지어 자신들의 땅을 나눠줄 수도 있다고 제안한다(19절). 이스라엘의 대표자들은 역사를 기억하고 있었다. 특별히 이들이 제시한 예들은 공동체 내의 일부가 범한 죄악이 공동..
분쟁이 있던 고린도 교회(고전 11:17-18)는 주의 만찬을 먹을 때에도 문제가 있었다(20절). 식사 자리에서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기다리는 대신, 각자 먹고 싶은 대로 음식을 가져다 먹었기 때문이었다(21절). 바울은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행위라고 말하며 엄히 질책한다(22절). 바울은 성찬의 의미를 다시 설명한다. 성찬은 주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것으로(23절), 그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의식(24-25절)이며 주의 죽으심을 기리는 의식(26절)이다. 따라서 그 떡과 잔을 합당하게 받지 않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다(27절). 성찬은 그만큼 거룩한 의식이다. 따라서 이 거룩한 의식에 임할 때 우리는 자신을 잘 살펴야 한다(28-29절..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판단"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이는 지난 본문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라는 권면(고전 5:12)과 연결된 내용으로 보인다. 성도는 세상(2절)과 천사(3절)를 판단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도 고린도 교인들 중 일부는 분쟁이 발생했을 때 세상 권세를 찾아갔다(1, 4절).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부끄러워 해야 한다고 말한다(5절). 성도들 가운데 지혜로운 사람이 없어서 세상 사람들을 찾아가는가(5-6절)? 바울은 이것 자체가 "뚜렷한 허물"이라고 말한다(7절). 차라리 조금 억울하더라도 참아내는 것이 더 나은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가해자 편을 드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가해자들에게도 엄중히 경고한다. 형제 자매에게 불의를 행하고 그들을 속이는 악한..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을 질책하던 바울은 "음행"의 문제를 지적한다. 이방인 중에서도 하지 않는, 계모와 관계를 갖는 악한 일(1절)에 대해 바울은 교회가 단호하게 그를 찍어내야 한다고 권고한다(2절). 바울이 비록 몸으로 함께 하지는 않지만, 고린도 교회의 모임에 영으로 함께 하여 그를 판단하고 "사탄에게 내주었"다(3-5절). 따라서 고린도 교인들이 그를 찍어내지 않고 자신들의 처사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6절). 누룩은 비록 그 양이 적을지라도 온 덩어리를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6절). 바울은 교회를 가리켜 "누룩 없는 자", 즉 죄 없는 자라고 칭하며 이 죄의 문제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셨음을 상기시킨다(7절). 바울은 유월절 식사에서 먹는 무교병을 비유로 들어 누룩 없이,..
말의 지혜에 현혹되기 쉬웠던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바울은 "어리석은 자가 되라"고 권면한다(18절). 이는 이 세상 지혜가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다(19-20절). 이는 1-2장에서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대조하였던 바울의 메시지와 일치한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강조하는데(21절), 이로부터 고린도 교인들이 각자 자신이 추종하는 전도자를 내세워 자랑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말의 지혜'는 아볼로를 떠올리게 한다. 행 18:24 참조.) 전도자가 누구건 간에 그들은 전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한다(22절). 만물도, 세계도, 생명도, 사망도, 지금 것도, 장래 것도 모두 성도들의 것이다(21-22절).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할 수..
이제 아홉 번째 재앙, '흑암 재앙'이 시작된다. 이번 재앙도 재앙 직전 경고의 말씀이 없이 바로 재앙이 시작된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어 흑암이 임하게 하라고 명하시고(21절), 그 일이 그대로 이루어진다. "더듬을 만한 흑암"이 애굽 전역에 임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이 거주하는 곳에만 빛이 있었다(22-23절). 바로는 모세를 불러 떠나도록 명한다(24절). 하지만 단서가 있었으니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갈 것을 약속해야 했다(24절). 모세는 우양을 제물로 바쳐야 하므로 다 데려가겠다고 말한다(25-26절). 바로는 이에 기분이 상해(27절) 당장 떠나가라고 명한다. 심지어 다시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을 것이라고 협박까지 덧붙인다(28절). 모세는 그 말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
사도 바울은 지난 본문에 이어 형제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지난 본문에서 바울은 다른 이의 행동을 비판해서는 안 되는 이유로 각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임을 들었다. 이제 바울은 논점을 보강한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에 속한 자라면 누구나 그 삶과 죽음을 자기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7절) 주를 위해 바친다(8절).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모든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9절). 따라서 한낱 종에 불과한 우리가 주인과 다른 종 사이의 관계를 따지고 드는 것은 어불성설이다(10절). 우리가 심판대 앞에 서는 날(10절), 각자가 하나님과 회계할 것이다(11-12절). 다른 이의 행실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이니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직무에만 책..
오늘 본문은 어제 본문의 부연 설명을 담당한다. 어제 본문의 주제문은 1-2절로, 칭의를 받은 자들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은혜에 들어가 영광 속에서 즐거움을 누릴 것을 선포한다. 동일한 표현들이 오늘 본문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우선 본문 7-8절은 5-6절에서 이야기하는 바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드러났다는 것을 보강한다. 남을 위하여 죽는 것은 쉽지 않다. 설사 의인이나 선인을 위하여 죽는 것이라 해도 그렇다(7절).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위하여 죽으셨고,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되었다(8절). 하나님의 사랑은 다른 무엇보다 십자가를 통해 가장 확실하게 증명된다. 예수의 죽으심 덕분에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그 결과 심판을 면하게 되었다(9절). 이제..
지난 본문에 이어 오늘 본문은 율법을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가르친다. 우선 바울은 17-20절에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부심을 낱낱이 드러낸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20절). 그들은 자신들이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맹인", "어둠에 있는 자"(19절), "어리석은 자", "어린아이"(20절)를 이끌 자격은 자신들에게밖에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바울은 이들에게 통렬한 꾸짖음을 내린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21절) 바울은 유대인들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은 죄인임을 깨닫게 한다. 그들의 말과는 달리, 유대인들은 도둑질하고(21절) 간음하고 우상의 능력을 믿는 ..
바울은 본문에서 "의로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의로움은 무엇인가? 그저 율법을 듣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것이다(13절). 이는 율법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 의로워졌다고 믿는 '선민' 유대인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율법을 아는 사람이 범죄하였다면 그 율법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고, 율법을 모르는 사람이 범죄하였더라도 그 나름 심판을 받을 것이다(12절). 바울은 이 명제가 조금 빈약하다고 느꼈는지 율법을 모르는 사람의 경우를 더 설명한다.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된다(15절). 그들은 율법이 "그 마음에 새"겨져 있으므로(15절)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수 있다(14절). 이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 알고 있다는 전제를 그 배경에 깔고 있다. 어..
5절은 지난 본문에서 이어지는 구절이다. 지난 본문에서 바울은 "남을 판단하는 사람"(롬 2:1) 역시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이야기했다. 회개를 한다 하여도 그것은 내 공로가 아닌데(롬 2:4), 회개조차 하지 않는다면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는가(5절)!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고집을 피우며 진노를 쌓고 있다(5절).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려고 함정을 파두신 것일까?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의로우신 분이다(6절). 바울은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는 각 사람"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설명한다.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영생"과 더불어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주어질 것이다(7, 10절).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진노와 분노"가 임할 것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