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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본문까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롬 1:18)의 죄악상을 낱낱이 고발한 바울은, 갑자기 그 포문을 '우리'에게로 돌린다. 아마 로마 교인들은 로마서 1장을 읽으면서 주위의 이교도들을 판단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1절)라니, 이 무슨 날벼락인가? 바울은 남을 판단하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 올무가 된다고 논한다. 우리는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의인지 알지만, 죄악 가운데 있는 자들과 "같은 일을 행"하고 있다(1, 3절). 우리라고 심판을 피하겠는가(3절)? 그들과 같은 일을 행한다면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이루어질 것이다(2절). 혹시 우리가 회개한다면, 그것 역시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인도하여 회..
지난 본문에 이어 다니엘은 계속해서 회개의 기도를 올린다. 비록 날샘은 그 응답(20-22절)까지 본문에 포함시켰지만, 오늘 나는 기도문 자체에만 집중하기를 원한다. 응답에 관한 구절들은 내일 본문과 함께 보겠다. 오늘 기도에서 다니엘은 하나님의 용서를 구한다. 눈에 띄는 것은 용서가 이스라엘의 의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지난 본문에서 살펴본 대로,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죄악은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면 이스라엘을 용서하실 수 있다(18절).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위하여"이다(17, 19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거하시기 때문에, 그 백성의 "수치"는 ..
본문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를 상징하는 "작은 뿔"(9절)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는 "하늘 군대"를 공격하고 일부를 정복했고(10절) 하나님을 대적하여 제사를 없애고 성소를 헐었으며(11절)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다(12절).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통탄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순간, 이것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 참혹한 상황은 "이천삼백 주야" 동안만 지속될 것이고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될 것이다(14절). 15-17절은 내일 큐티에서 다루는 것이 나아 보인다. 비록 본문이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일지라도, 이를 확장하여 생각해 보면 세상 권세 전반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세상 권세는 스스로 커지면 교만해져서 하나..
오늘 본문은 다니엘이 새로 받은 환상을 묘사한다(1절). 이 환상은 세상 나라들의 흥왕을 예언한 것이다(단 8:19-22). "두 뿔 가진 숫양"(3절)은 메대-바사 제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특히 아직 이 제국이 융성하기 전인 바벨론 제국 벨사살 왕 3년(1절)에 이 환상을 보았다는 기록은 예언의 초자연성을 강조한다. 반면 "숫염소"(5절)는 마케도니아 제국을 가리키며, 특히 "현저한 뿔"(5절)은 알렉산더 대왕을 가리킨다. 알렉산더가 "강성할 때"에 "꺾이고" 대신 나라가 넷으로 쪼개지는 것까지 오늘 본문에서 묘사되고 있다(8절). 우리가 본문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정확한 역사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환상으로 주어졌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이 환상이 역사적 ..
다니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느부갓네살이 돌이키지 않고 계속 교만하자 결국 하나님의 징계가 그에게 임했다. 미쳐서 야생으로 쫓겨난 것이다(33절). 하지만 "기한이 차매" 그가 다시 정신을 되찾게 되었다(34절). 이것은 이 일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임을 방증한다. 그는 궁으로 돌아와 통치자로서 직무를 계속 수행할 수 있었다(36절). 느부갓네살은 이 모든 일을 되돌아 보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특히 본문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모습은 전능하신 통치자로서의 모습이다.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에 대해 사용하는 호칭을 보면 "지극히 높으신 이", "영생하시는 이"(34절), "하늘의 왕"(37절) 등으로, 다른 모든 신들보다 우월한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은 "영원한 권세"를 가지고 "대대에 이르"..
본문은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하는 내용과 그 해석이 느부갓네살에게 이루어진 내용을 담고 있다. 느부갓네살의 꿈은 그가 미쳐서 7년 동안 야생에서 지낼 것(25절)이고, 그 이후에는 정신을 차려서 다시 돌아올 것(26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러한 비극이 그에게 임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25-26절).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하나님의 공의를 행함으로써 그 처벌을 피하라고 권면한다(27절). 하지만 느부갓네살은 그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은 모양이다. 결국 하나님의 처벌이 그에게 임한 것이다(28절). 느부갓네살은 1년 후에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29절) 교만한 말을 내뱉는다(30절). 그 순간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 그에게 처벌이 임했음을 선포했다(31-32절..
오늘 본문에는 다분히 종말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언급하면서 본문을 시작하고(1절),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질 "그날"을 마지막으로 언급하며 본문이 끝난다(8절). 이 종말론적 분위기를 염두에 두고 본문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오늘의 주제 구절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이다(2절). 바울은 말씀 전파 과정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예견한다. "때"를 못 얻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2절). 가르칠 때는 "오래 참음"이 필요할 것이다(2절). 전도자는 "고난을 받"을 것이다(5절). 어째서 그런가?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욕심을 따라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기 때문이다(3-4절). 말세가 되어 사람들이 더 이상 진리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에만 골..
본문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를 치리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바울은 장로들에 대한 교훈(17-19절), 범죄자들에 대한 교훈(20절), 디모데 자신에 대한 교훈(21-23절)을 주고 이 교훈들의 대전제로 깔려 있는 가르침을 준다(24-25절). 교회 치리의 대전제는 무엇인가? 선행이나 악행이나 모든 것은 결국 드러난다는 것이다(24-25절). 그리고 그것이 드러났을 때 교회는 이에 합당한 권징을 내려야 한다. 이것을 기준으로 볼 때, 장로들에 대한 교훈은 선행을 베푼 자들에 대한 예로, 범죄자들에 대한 교훈은 악행을 저지른 자들에 대한 예로 바라볼 수 있다. 장로에 대한 가르침에서 바울은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욱 존경하고(17절)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라고 명한다(18절). 시기 받..
에 보면 다음과 같은 미묘한 표현이 등장한다. 34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 10:34-36)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근거로 삼아 불신자 가정 속의 신자가 분란을 일으키는 것을 합리화한다. 예컨대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부인이 무신론자 남편과 맨날 싸운다면, 그것은 예수께서 명하신 것이니 당연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저 구절이 정말 그런 의미로 사용된 것일까? 를 읽던 도중, 다음 구절을 읽고 눈이 번뜩 뜨였다. 4그들의 파수꾼들의 날 곧 그들 가운데에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
를 읽던 중에 친숙한 표현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7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슥 14:7) 어디가 친숙하다는 거지? 다른 번역으로 보면 조금 더 명백하게 드러난다. 7낮이 따로 없고 밤도 없는 대낮만이 이어 간다. 그 때가 언제 올지는 주께서만 아신다. 저녁때가 되어도, 여전히 대낮처럼 밝을 것이다. (슥 14:7, 표준새번역) 7이와 같은 날은 없을 것이다. 언제 그 날이 올지는 여호와만이 아신다. 그 때가 되면 낮도, 밤도 없을 것이다. 밤에도 낮처럼 빛이 비출 것이다. (슥 14:7, 쉬운성경) 무엇이 떠오르는가?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남긴 말이 떠오른다. 36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