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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어제에 이어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베푼 "은총"(7절)을 이야기한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만나 그에게 은총을 베풀 것을 약속하고(7-8절), 사울의 종이었던 시바(이 놈은 이름이 복선이다)를 불러 므비보셋을 돌보게 한다(9-11a절). 이는 다윗의 명대로 이루어진다(11b-13절). 약속 - 명령 - 실행으로 이루어지는 이 그림 속에서 핵심적인 것은 7절에 나오는 다윗의 약속이다. 다윗의 약속은 은총을 베푸는 이유와 그 은총의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내용부터 살펴보자면, (1)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다는 것과 (2)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전자의 경우는 그래도 좋게 봐서 율법의 희년 개념을 적용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레 25,..
본문은 다윗이 베푸는 선행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요나단과의 우정을 기억하며 사울의 가문에 남은 사람을 찾았다(1절). 그는 사울의 종이었던 시바를 불러(2절) 므비보셋을 찾았고(3-4절) 마침내 므비보셋을 만난다(5-6절). 므비보셋은 다리 저는 사람으로, 사울과 요나단이 전사했을 때 급히 피신하던 유모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다리를 절게 되었다(삼하 4:4). 본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단어가 무엇인가? 나는 "은총"이라는 단어라고 생각한다(1절, 3절). 이 단어는 히브리어 "헤세드(חָ֫סֶד)"의 번역어로, 구약을 관통하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이다. 이 은총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3절).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셔서 그 은총을 받은 사람은 자발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은총을 베풀게 된다. 다윗이 본문에서..
오늘 본문은 어제 본문과 나눠서 볼 성격이 아닌 것 같은데... 오늘 본문 역시 어제와 마찬가지로 다윗의 승승장구를 그리고 있다. 하맛 왕 도이는 다윗에게 선물을 가지고 와 화친을 청하였고(9-12절), 에돔은 다윗의 발 앞에 굴복한다(13-14절). 다윗의 왕국은 든든히 서고(15절), 그 내각은 짜임새 있게 조직되었다(16-18절). 9-14절은 어제 본문과 연속적인 내용이므로 나는 15절에 집중하여 묵상하기로 했다. 거듭된 승리로 외치를 성공적으로 이룩한 다윗은 내치에도 눈을 돌린다. 특히 그는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다. 구약 성경을 잘 읽어보면 이 두 단어는 많은 경우에 같이 붙어나온다. 유명한 아모스 5: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
본문은 다윗의 승승장구를 그리고 있다. 다윗은 블레셋과 싸워 이겼고(1절), 모압 역시 정벌했으며(2절), 소바와 아람 연합군을 무찔렀다(3-8절).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셨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6절) 여기 등장하는 나라들은 이스라엘을 계속해서 괴롭혔던 나라들이다. 특히 삼상 14:47을 보면 이들 모두가 등장하는 흥미로운 기록이 나온다. "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쳤는데 향하는 곳마다 이겼고" 즉, 블레셋, 모압, 소바는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대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블레셋의 경우 삿 10장, 삿 13-16장, 삼상 4-7장 등에서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원수로..
본문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약속을 지켜달라는 다윗의 청원을 담고 있다. 다윗은 반복적으로 "말씀하신 것"을 언급한다(25절, 28절, 29절). 그것은 무엇인가?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라고 약속하신 말씀이다(27절, cf. 삼하 7:11). 이를 바탕으로 본문의 내용을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 집을 세운다고 약속하셨기에 다윗은 그 약속을 지켜달라고 간구한다(27절). 하나님은 신실하며 참되시기에(28절) 약속을 지키실 것이고 그것은 곧 복이다(29절). 이 역사를 본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할 것이다(25-26절). 본문 석의는 이렇게 마쳤다. 자, 그럼 이제 해석을 해볼까. 다윗의 기도가 어떻게 나의 기도가 될 수 있는가? 반복해서 나오는 ..
본문은 하나님의 약속(삼하 7:4-16)에 대한 다윗의 감사 기도를 다루고 있다. 역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니, 개인으로서의 감사 제목(18-21절)과 백성의 대표자로서의 감사 제목(22-24절)이 그들이다. 그는 아무런 가치 없는 자신을 지금까지 이끌어 오시고(18절) 이후에도 복을 내리시기로 약속하신(19절) 하나님께 감격하며 감사한다(20-21절). 또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사 큰 일을 행하신 위대한 하나님을 찬양한다(22-24절). 다윗의 자기 고백을 읽으며 그의 미천했던 출신을 기억해본다. 그는 집안의 막내로 양을 지키는 자였고(삼상 16:11, 삼상 17:15) 형들에게 무시당하는 존재였다(삼상 17:28). 그런 그를 잘 아시는 하나님(20절)은 그를 택하셔서 "큰 일"을..
본문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부어주시는 복을 기술하고 있는데,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는 개인의 복(8-9절), 두번째는 백성의 복(10-11a절), 세번째는 가문의 복(11b-16절)이다. 하나님은 다윗이 한낱 목자에 불과했지만 그를 주권자로 삼고(8절) 그 이름을 위대하게 만드시리라 약속하신다(9절). 또한 이스라엘을 안정시켜(10절) 원수들로부터 보호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11a절). 끝으로 하나님은 다윗에게 "집"을 지어주어(11b절) 그 후손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실 것이라 약속하시며(12, 16절), 그가 바로 성전을 지을 자요(13절) 하나님께서 아들로 삼으실 자라(14-15절) 약속하신다. 나단은 이 이야기를 다윗에게 그대로 전한다(17절). 역사를 돌이켜 보건대, 첫번째 복은..
본문은 새로운 내용으로 "전환"되는 부분(1절)으로, 자신이 "궁"에 편히 살 때 하나님의 궤는 장막에 있는 것이 불편했던 다윗은 나단에게 성전 건축의 뜻을 내비친다(2절). 나단은 그 의견에 동의하였지만(3절), 하나님은 이에 부정적인 뜻을 보이신다(4-7절). (항상 옳은 소리만 하는 것 같은 선지자 나단도 실수할 때가 있었다!) 어째서 하나님은 성전 건축을 중단시키셨을까? 사무엘서는 이에 대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가? 이는 어려운 질문이다. 사무엘하 7장에서는 명백한 이유가 등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다윗 대신 다윗의 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삼하 7:13).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 자체를 싫어하신 건 아니라는 것을 알 ..
오늘 본문은 다윗이 법궤를 맞아들이는 제사를 지낸 후 백성을 축복하고(18절) 선물을 나누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19절). 이후 가족을 축복하기 위해 돌아온 다윗에게 아내 미갈이 다윗이 춤춘 것(삼하 6:16)을 두고 비난한다(20절).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춤춘 것이라고 말하며(21절) 더 낮아질 수도 있다고 담담히 대답하였고(22절), 그 이후 미갈은 태가 닫히는 저주를 받게 되었다(23절). 언뜻 나도 다윗처럼 춤을 출 거야! 낮아지자! 이런 결론을 내리면 딱 좋겠지만, 박희원 목사님의 구원사적 해석을 배운 이후로 다윗과 나를 동치시키는 것이 심히 불편해진 관계로 다른 큐티를 해보도록 하겠다. 다시 강조하자면, 구원사적 관점에서 볼 때 다윗은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킬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본문에..
오늘 본문 역시 지난 본문에 이어 "하나님의 궤"에 관한 말씀이다. 잠시 궤를 옮겨두었던 오벧에돔의 집에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다윗은 궤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 한다(12절). 궤가 출발할 때(13절)와 도착할 때(17절) 각각 제사를 드린 다윗은 즐거이 춤추며 궤를 운반한다(14-15절). 한편 다윗의 아내 미갈은 이를 우습게 본다(16절). 본문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다윗과 백성들이 크게 기뻐한 것이다(15절). 왜 그렇게 기뻐했을까?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 궤가 가지고 있었던 상징성을 잘 드러내주는 예가 있다. 앞서 엘리 제사장 때 이 궤를 블레셋에 빼앗기자 출산하던 비느하스의 아내가 "영광이 이스라엘..
본문을 읽고 처음 든 느낌은 당혹감이었다. 이 본문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하여 내 삶에 적용해야 하는가? 물론 본문의 이야기 자체는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고, 해석 역시 보통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무서움'을 묘사하는 식으로 해석해서 어려울 게 없을 수도 있지만, 왠지 그런 해석은 영 석연치 않달까. 그렇다고 본문이 이야기하는 걸 왜곡해서 받아들일 수도 없으니... 우선 석의부터 해보자. 본문에서 다윗은 백성들과 함께(1절) 바알레유다에 있는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했다(2절). 이 궤는 사무엘 때 블레셋에게 빼앗겼다가 돌려받아 "아비나답의 집"에 20년간 보관되어 있었다(3절, cf. 삼상 7:1-2). 아비나답의 아들인 웃사와 아효가 이 궤를 새 수레에 싣고 나왔고(3-4절), 다윗과 백성들은 기뻐..
본문은 다윗이 "형통"하고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백향목과 벌목 기술로 유명한(왕상 5:5-6, 대상 22:4) 두로의 왕 히람은 다윗을 위해 궁을 지어준다(11절). 다윗은 많은 처첩으로부터 자녀를 많이 얻었다(13-16절). 그리고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과의 두 차례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17-25절). 이 전투 장면에 주목해보자. 여기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다윗이 여호와께 반복해서 여쭈어 보고 있다는 것(19절, 23절)과 여호와께서 함께 싸워서 블레셋을 무찌르셨다는 것(20절, 24절)이다. 블레셋 병력이 많아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했다는 것(18절, 22절)을 볼 때 이는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블레셋의 신들은 전혀 무력했고, 패주하는 블레셋 군대는 우상..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10절) 왕의 즉위식과 그 치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다윗에게 자신들의 왕이 되기를 청하고(1-2절), 다윗은 그들과 언약을 맺어 왕이 된다(3절). 그는 정복하기 어려운 것 같았던(6, 8절)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7절) 수도로 삼는다(9절). 날샘은 다윗 왕을 바람직한 리더의 한 예로만 보고 있지만, 성경 전체를 꿰뚫는 구원사적 관점에서 볼 때 다윗 왕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따라서 본문에서 읽어내야 하는 것은 올바른 왕과 백성의 관계가 아닐까. 특히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3절에 기록된 즉위식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왕은 "여호와 앞에서 [백성]과 언약을 맺"었다. 이 언약은 무엇인가? 다윗은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고, 이스라엘은 다윗을 왕..
오늘 본문은 이스보셋의 마지막을 그리고 있다. 그는 아브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력해졌다(1절). 이 때 바아나와 레갑(2-3절)이라는 군지휘관들이 이스보셋을 암살하고(5-7절) 그의 머리를 베어 다윗에게 바친다(8절). 다윗은 이들을 칭찬하기는커녕 이들을 엄히 꾸짖고(9-11절) 사형에 처한다(12절). (4절에 나오는 뜬금 없는 므비보셋 이야기는 삼하 9장의 이야기를 위한 복선이다.) 날샘과 마찬가지로 나는 이들을 꾸짖는 다윗의 말에 주목한다. 그는 므비보셋을 "의인"으로, 레갑과 바아나를 "악인"으로 부르며 그들이 "피 흘린 죄"를 엄히 다룬다(11절). 그렇다면 어째서 레갑과 바아나는 악인일까? 정말 날샘이 이야기하듯 "암살"은 "비겁한" 행동이기 때문에 악한 것일까? 아니면 조조가 군주를 죽..
오늘 본문에서 특이하게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두 개 있다. 바로 "왕"과 "백성"이다. 모든 절에서 두 단어 중 하나는 반드시 등장한다. 이 단어들을 강조하여 본문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왕"은 "백성"에게 슬퍼할 것을 명하였고(31절) "왕"이 무덤 앞에서 울자 "백성"도 다 울었다(32절). "왕"이 애가를 지어 부르니(33절) "백성"이 슬퍼하여 울었다(34절). "백성"은 "왕"의 옥체를 염려하였고 "왕"은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금식을 맹세한다(35절). 이를 본 "백성"은 기뻐하며(36절) "왕"을 신뢰한다(37절). 무엇이 보이는가? 바람직한 왕과 백성의 관계가 보이지 않는가? 31-34절에서는 왕을 따르는 백성의 모습이, 35-37절에서는 왕을 사랑하며 신뢰하는 백성의 모습이 나타..
본문은 요압이 없는 사이에 다윗이 아브넬의 투항을 받아들여 그를 평안히 보낸 것(22절)을 알고 요압이 분노하여(23-25절) 아브넬을 쫓아가(26절) 결국 그를 속여 죽인 이야기(27절)를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요압이 동생 아사헬의 원수를 갚은 것이라고 설명한다(27, 30절; cf. 삼하 2:18-23). 흥미로운 것은 이에 대한 다윗의 반응이다. 우선 다윗은 아브넬의 항변(23-25절)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아브넬이 저지른 사건에 대해 알지 못했다(26절). 알게 된 이후, 다윗은 아브넬의 피에 대해 무죄하다고 선언하며(28절) 요압을 저주한다(29절). 이는 "악행"이었기 때문이다(삼하 3:39). 이 사건은 다윗에게 깊이 각인되어, 그가 죽기 직전 솔로몬에게 내린 유언에서도 ..
구원사적 관점에서 볼 때 다윗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불완전한) 예표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브넬의 발언 속에서 이 점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구원"하여 "모든 대적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다윗을 택하셨다(18절). 본문에서 이스라엘 장로들은 그 다윗을 자신들의 임금으로 세우기를 구했던 것으로 묘사되고(17절), 또한 이스라엘 백성 역시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것을 선하게 여겼던 것으로 나타난다(19절). 처음에 이스보셋을 따랐던 자들(삼하 2:8-9)이 왜 마음을 바꾸었는지에 대해서는 본문이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어쩌면 애초에 이스보셋을 따랐던 것이 아브넬의 강압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본문이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부분에 지나..
본문은 이후의 내용을 요약하는 서론으로 시작된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간다"는 문장이 그것이다(1절). 다윗의 부강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많은 자식을 주셨음에서도 드러난다(2-5절). 헤브론에서 왕으로 있던 7년 반 동안(삼하 2:11) 그는 여섯 명의 아들을 보았다. 딸까지 있었다면 더 많은 자식을 본 셈이다. 다윗이 강대해지는 동안 사울의 집에서는 아브넬이 권세를 잡았다(6절). 7절부터 11절에서는 이 아브넬과 이스보셋 간의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고 있다. 이스보셋은 아브넬에게 계모와 통간한 것을 지적한다(7절). 하지만 (날샘의 바람과는 달리) 이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브넬이 이를 "매우 분하게 여긴" 것(8절)으로 볼 때 어쩌면 누명이었는..
다윗 군대가 이스보셋 군대를 물리친 후(17절), 이스보셋 군대는 패주하다가 전열을 가다듬어 작은 산에 멈춰섰다(25절). 이 자리에서 이스보셋 군대의 사령관인 아브넬은 다윗 군대의 사령관인 요압에게 더 이상 추격하지 말라고 청한다(26절). 이는 형제 간에 "참혹한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이 다음 구절(27절)이 흥미로운데, 날샘(및 개역개정)에서는 이 구절에서 이야기하는 "네가 말한 것"을 삼하 2:14와 연관지어 전투를 시작하게 만든 아브넬의 제안으로 해석한다. 그러면서 서로 잘못해서 의미 없는 싸움이 지속되었다는 매우 건전한 ^^ 결론을 유도해낸다. 하지만 나는 NIV와 같이 "네가 말한 것"은 바로 앞 구절에 나오는 아브넬의 휴전 제안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이 절에서 사용된 ..
오늘도 날샘의 묵상 방향에 반대하는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박희원 목사님 용서하소서...) 날샘은 아사헬의 죽음을 "고집불통의 결과"로 보고 있으나, 본문이 정말 그걸 이야기하고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우선 본문을 살펴보자면, 아사헬은 발이 빠른 사람으로 긍정적으로 묘사되고(18절),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여 아브넬을 쫓은 것으로 나타난다(19절). 아사헬이 물러가기를 거절한 것(23절)은 사실 적장을 쫓는 군인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이 '괜한 고집'인가? 내 생각에 이 아사헬의 죽음은 삼하 3:27에서 묘사되는 아브넬의 죽음에 대한 복선일 뿐이다. (얼마나 묵상할 포인트가 없었으면 날샘에서 이런 포인트를 잡았는지 모르겠다;;;) 본문의 주제는 무엇일까? 나는 무엇보다 다윗의 백성과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