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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os credit
흥미롭게도, 성경에서는 언약궤를 가리켜 "하나님의 발등상"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발등상"은 『에스겔』을 볼 때 왕좌 앞에 놓는 발등상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고, 결국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언약궤를 "은혜의 보좌"라고 부르는 것(히 4:16)과 일맥상통하는 듯. 2이에 다윗 왕이 일어서서 이르되 나의 형제들, 나의 백성들아 내 말을 들으라 나는 여호와의 언약궤 곧 우리 하나님의 발판을 봉안할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어서 건축할 재료를 준비하였으나 (대상 28:2) 5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시 99:5) 7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로다 (시 132:7) 1슬프다 주께서 어..
지난 주에 목사님께서 요한복음 1장을 강해하시면서 제자들이 자신의 친구들을 '전도'한 말은 그저 "와서 보라.(Come, and you will see.)"였다는 말씀을 하셨다. 복잡한 논증을 늘어놓거나 자신의 체험담을 열정적으로 떠드는 대신,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해보라고 권했다는 것이다. 순간 깨달았다. 우리는 '전도'를 자꾸 '설득'으로 생각한다. "기독교는 XXX해서 옳아. 그러니까 믿어." "내가 믿어보니까 XXX가 좋더라. 그러니까 믿어." 그런데 성경에 나타나는 전도는 그런 게 아니었지 않은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봐. 그럼 알게 될 거야." 이것이 우리의 올바른 전도 방식 아닐까.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 4:20)
에스겔 34장은 "양떼와 목자" 이야기이다. 읽는 순간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선한 목자 비유가 떠올랐다. 대조하면서 읽어보니 상당한 유사성이 느껴졌다. 구약성경을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은 에스겔 34장을 염두에 두고 요한복음 10장의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닐까? 첫번째 유사성.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삯꾼"을 말씀하신다. 12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요 10:12-13) 한편 에스겔 34장에서는 "엉터리 목자"들이 등장한다. (겔 34:2-8) 여기서는 명시적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가리키는데, 이로 볼 때 예수님이 말씀하..
웨인 그루뎀의 상권 20장 '사단과 마귀들'에 보면 사단의 정체에 대해 타락한 천사라는 (보편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 견해는 어떠한 성경적 근거에 기반을 두고 있을까? 그루뎀은 다음과 같은 구절이 사단의 타락을 묘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12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사 14:12-14)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이사야 14장을 읽어보면 문맥상 이 구절이 사단의 타락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사야 14장은 최소한 문..
부흥과개혁사에서 나온 비교신학 시리즈 그 첫번째 책. '기적의 은사'에 대해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신학자 네 명이 쓴 글들을 모아 만든 책이다. 자그마치 웨인 그루뎀이 편집자 ㄷㄷㄷ 이 책에 글을 실은 신학자들은 '은사 중지론' 진영에서 두 명, '은사 지속론' 진영에서 두 명 나왔는데, 같은 진영이라 해도 또 다른 신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를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은사 중지론은 다시 절대적인 은사 중지론과 신중 수용론으로 나뉘고, 은사 지속론은 제3의 물결 신학과 은사주의 신학, 오순절 신학으로 나뉜다. 이 책에선 균형을 위해 은사주의 신학과 오순절 신학을 묶었기에 결과적으로 네 명의 신학자가 등장하게 된 것! (물론 이렇게 무 자르듯 나누는 것이 항상 가능하지는 않을 듯.) 어렸..
이글루스 블로그 Lovos dixit의 분점입니다. 이 공간은 신앙생활과 신학에 대한 사색을 올리는 공간으로 사용하려 합니다. 뭐 그런 걸로 굳이 분점까지 만드느냐 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냥 제가 불편해서 말이죠. 제 아이디인 로보스는 헬라어 logos(λόγος)와 영어 love의 합성어입니다. logos는 요한복음 1장 1절에 나오는 '말씀'이죠. 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καὶ ὁ Λόγος ἦν πρὸς τὸν Θεόν, 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한편, 이 블로그의 제목인 Lovos credit은 제 본점 블로그 제목의 패러디입니다. 라틴어로 "Lovos believes" 정도 되는 뜻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