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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3:31-39 본문
오늘 본문에서 특이하게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두 개 있다. 바로 "왕"과 "백성"이다. 모든 절에서 두 단어 중 하나는 반드시 등장한다. 이 단어들을 강조하여 본문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왕"은 "백성"에게 슬퍼할 것을 명하였고(31절) "왕"이 무덤 앞에서 울자 "백성"도 다 울었다(32절). "왕"이 애가를 지어 부르니(33절) "백성"이 슬퍼하여 울었다(34절). "백성"은 "왕"의 옥체를 염려하였고 "왕"은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금식을 맹세한다(35절). 이를 본 "백성"은 기뻐하며(36절) "왕"을 신뢰한다(37절).
무엇이 보이는가? 바람직한 왕과 백성의 관계가 보이지 않는가? 31-34절에서는 왕을 따르는 백성의 모습이, 35-37절에서는 왕을 사랑하며 신뢰하는 백성의 모습이 나타난다. (내 생각에 38-39절은 이 맥락에서 이어지는 본문이라기보다는 요압의 오만함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이자 훗날 다윗의 유언과 솔로몬의 복수로 이어지는 사건을 설명하기 위한 복선이다. 따라서 떼어서 생각하자.)
성경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할 수 있는 '이상적인' 왕의 예표로 그려진다. 그 이상적인 왕국에서 왕과 백성이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오늘 본문이 잘 그려내고 있다. 백성은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다" 기뻐했다(36절). 이는 왕이 하나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통치하는 자였기 때문이었다(삼하 5:10). 이것이 올바른 '하나님의 나라'가 가져야 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다윗은 완전한 왕도, 영존하는 왕도 아니었다. 그는 예표로서 올바른 왕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지만, 결국 죽어서 사라져 버렸다(cf. 행 2:29-30).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왕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가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고, 다시 오실 때에 그 나라가 완성될 것이다. 우리는 그를 따르는 백성으로서(벧전 2:9)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처럼 행해야 할 것이다.
나는 주 예수를 왕으로 모신 자답게 그에게 순종하고 있는가? "당신의 눈물이 있는 곳에 나의 눈물이 고이길 원해요"라는 찬양 가사처럼, 의인의 고난과 죽음을 두고 슬퍼하시는 그 분의 슬픔에 나는 동참하고 있는가? 그가 명하시는 모든 것을 기뻐함으로 따르고 있는가? 새벽 기도 말씀에서도 전적 순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하나님께서 반복하여 가르치시는 이 메시지를 소홀히 여기지 말고 오늘도 순종하는 사람이 되자.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요 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