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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6:1-11 본문
본문을 읽고 처음 든 느낌은 당혹감이었다. 이 본문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하여 내 삶에 적용해야 하는가? 물론 본문의 이야기 자체는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고, 해석 역시 보통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무서움'을 묘사하는 식으로 해석해서 어려울 게 없을 수도 있지만, 왠지 그런 해석은 영 석연치 않달까. 그렇다고 본문이 이야기하는 걸 왜곡해서 받아들일 수도 없으니... 우선 석의부터 해보자.
본문에서 다윗은 백성들과 함께(1절) 바알레유다에 있는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했다(2절). 이 궤는 사무엘 때 블레셋에게 빼앗겼다가 돌려받아 "아비나답의 집"에 20년간 보관되어 있었다(3절, cf. 삼상 7:1-2). 아비나답의 아들인 웃사와 아효가 이 궤를 새 수레에 싣고 나왔고(3-4절), 다윗과 백성들은 기뻐하며 그 앞에서 찬양했다(5절). 그러다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서 소들이 뛰어서 웃사가 궤를 붙드는데(6절),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그를 치셨다(7-8절). 다윗은 이로 인해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9절) 그 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가게 했다(10-11절).
하나님이 웃사를 죽이신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혹여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여 본문을 열심히 뜯어보았지만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다"는 죄악(6절) 외에는 찾을 수 없었다. 에이, 혹시 궤를 옮겨오게 한 동기가 불순한 건 아니었을까? 글쎄, 본문에서는 동기를 유추하기 어렵지만, 평행 본문인 대상 13장에 따르면 다윗이 궤를 옮겨오게 한 이유는 "궤 앞에서 묻기 위함"이었다(대상 13:3).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한다는 것인데, 이게 불순하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역대상 기자 역시 다윗과 백성의 태도를 문제 삼고 있지 않고(cf. 대상 13:8).
즉, 석의를 꼼꼼하게 해본 결과 웃사가 죽은 이유는 (명백하게 기록된 대로) 그가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기 때문인 것이다. 이는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바이다(민 4:15). 날샘은 여기에 더하여 궤를 레위인이 메지 않고 소가 끄는 수레에 실은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난 성경이 이 점을 잘못한 것이라고 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궤를 수레에 실은 순간 하나님이 그들을 다 치셨어야 맞지 않을까? 또 본문에서 이미 "메어 오다"라는 표현이 반복되고 있는 걸로 보아(2절, 10절), 다윗과 백성들은 올바르게 율법을 준행하고자 했는데 사건 시점에 어떤 이유로 인해 불가피하게 수레에 실을 수 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해, 소와 수레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단지 '왜 웃사가 궤를 만져야 했는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기 위함 그 이상은 아니지 않을까?
자, 석의를 마쳤다. 그럼 이제 해석을 해봐야 하는데... 이 본문이 주는 가르침은 무엇일까? 하나님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하나님이 주신 규례를 잘 지켜야 한다? 주님 초림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율법 준수에 대한 본문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기도하며 고민하던 중에, 문득 "궤"의 의미가 무엇일지 묵상하게 되었다. 궤는 무엇인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2절).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신 곳이다. 거룩한 것이다. 본문에서 이야기하듯 함부로 대하면 죽는 것이다.
그 순간 문득 떠오른 것이 분열왕국 이후에는 성경에서 궤에 대한 이야기가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어째서 그럴까? 궤의 역할을 이제 "성전"이 대신하였기 때문이다. 왕상 8장에 보면 성전 낙성식이 기록되어 있는데, 궤가 성전에 안치되자(왕상 8:6-9)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찬다(왕상 8:10-11). 이 구름처럼 나타나는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본디 궤가 보관되어 있던 성막에서 보였던 것이다(신 31:15). 성전은 어떠한 곳인가? 하나님이 이름을 두신 거룩한 곳이다(왕상 8:20-21, cf. 마 23:16-22). 즉 궤의 존재 목적을 이제 성전이 승계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Note: 신약 시대에는 궤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지만 성전은 계속해서 거룩한 곳으로 여겨졌다.)
이 성전의 역할을 이젠 무엇이 감당하는가? 무엇보다 하나님의 형상(골 1:15)이신 예수께서 성전으로 사셨고(요 2:21),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이제 성전이 되었다고 말한다(고전 3:16-17). 여기에 우리가 깨달아야 할 메시지가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두신 궤를 거룩하게, 즉 구별하여 대하지 않은 자에게 엄한 심판을 내리셨다. 이제는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우리 속에 두신다. 바울의 준엄한 경고처럼,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실 것이다(고전 3:17).
나는 오늘 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교회를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 거룩한 성전으로 대했는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구별'시켜 대했는가? 준엄하신 법도 앞에 두려운 마음으로 나아갔는가? 교회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미련한 행동으로 인해 가리워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엡 3: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