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분류 전체보기 (1206)
Lovos credit
본문에서 바울은 반복하여 "둘"이 "하나"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14, 15, 16, 18절). 이 "둘"은 무엇인가? 본문에 따르면 "먼 데 있는 너희"와 "가까운 데 있는 자들"이다(17절). 이를 좀 더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제 본문의 도움을 얻을 필요가 있다. 엡 2:11에 따르면 "할례를 받은 무리"와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가 등장한다. 즉, 이 "둘"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둘 사이를 막고 있던 "원수 된 것"(14, 16절), "중간에 막힌 담"(14절),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15절)은 그리스도의 "육체"(14절), 즉 "십자가"(16절)로 소멸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 분명히 나타나는 바울 신학의 요체를 다시 한 번 발견한다. 유대인..
에베소서를 큐티하면서 계속 느껴지는 것이, 에베소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글들이 짜임새 있게 연결되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토막토막으로 읽으면 놓치는 부분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큐티를 하려면 할 수 없지...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은혜"에 대한 설명(8-9)이 나오고, 다시금 창조와 예정을 다룬 후(10절), "그때"와 "이제"를 비교하는 문단이 등장한다(11-13절). "은혜"에 대한 설명은 사실 앞선 절에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엡 2:5) 통치권을 주신 것(엡 2:6)은 은혜를 드러내 보이기 위하심이다(엡 2:7). 이 은혜 덕분에 우리에게 구원이 임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의 선물"이다(8절). 바울은 이 표현을 ..
본문은 날샘의 해석처럼 우리의 과거 모습(1-3절)과 현재 모습(4-7절)을 비교하고 있다. 헬라어 원문을 참조해보니 1절은 NIV처럼 해석하여 과거 모습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가 살리셨다는 내용은 번역 과정에서 추가된 듯. (Barnes: The words "hath he quickened," or "made to live," are supplied, but not improperly, by our translators.)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고(1절)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며(2절)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던 자들이었다(3절). 이를 가리켜 바울은 한마디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3절)였다고 딱 잘라 말한다. ..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 기도는 크게 감사 기도와 중보 기도로 나뉘는데, 감사 기도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으로 인한 것이며(15-16절), 중보 기도는 하나님과 그의 비밀을 더욱 알게 해달라는 기도였다(17-19절). 오늘은 이 중보 기도와 이에 딸린 바울의 부연 설명을 묵상해보고자 한다. 바울의 중보 기도 제목을 본문으로부터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을 알도록 (17절) 2) 그의 부르심의 소망을 알도록 (18a절) 3)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도록 (18b절) 4)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알도록 (19절) 하나님을 더욱 더 아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궁극적인 목표이다(호 6:3, 요..
본문을 여러 번 읽은 후에야 그 의미가 조금 와닿는 것 같다. 본문을 크게 나누어 두 부분으로 본다면 전반부(7-10절)와 후반부(11-14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전반부에서 바울은 우리가 예수의 피로 속량 받은 것(7절)이 하나님의 비밀이 드러난 것이요(9a절) 경륜을 따라 예정된 것이었다고 말한다(9b절). 속량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통치를 이루기 위함이다(10절). 여기에서 바울은 부드럽게 논지를 잇는다. 하나님의 예정을 따라 통치가 이루어지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기업이 되었다(11절). 우리를 기업 삼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그의 영광을 찬송하도록(12절)이다. 바울은 동일한 말을 인간의 관점에서 반복한다. (예정된)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자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고(13절), ..
본문은 바울의 인사(1-2절)와 찬미(3-6절)로 이루어져 있다. 여느 바울서신과 마찬가지로 인사 부분에서는 송신자와 수신자가 밝혀지고 축복이 이어진다. 따라서 오늘은 찬미 부분을 자세히 묵상해보길 원한다. 바울은 "찬송하리로다!"라며 기쁘게 본문을 시작한다(3절). 이 어순은 헬라어 성경에서도 마찬가진데, 흥미로운 것은 여기 사용된 동사 "Εὐλογητὸς"가 바로 뒤에 나오는 "복을 주셨다"(εὐλογήσας)와 같은 단어라는 것이다. 억지로 직역하자면 "우리에게 복을 주신 분께 복이 있으라!"라는 느낌? 이어 나오는 글의 큰 구조를 보자. 바울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3절)을 주셨는데, 이 복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그의 은혜를 찬송하게 하시려는 것이다(6절). 이..
다윗은 갓의 말을 듣고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올라간다(18-19절). 아라우나가 다윗을 만나 행차의 연유를 묻자(20-21a절) 다윗은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라고 답하고(21b절), 아라우나는 타작 마당과 소, 땔 나무를 드리겠다고 말한다(22-23절). 다윗은 제 값을 주고 이들을 구입한 후(24절) 그 곳에서 제사를 드려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한다(25절). 20-24절은 사실 없어도 되는 본문이다. "다윗이 ... 올라가니라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 이렇게 이어져도 이야기 진행 상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 불필요해 보이는 구절이 존재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늘은 그 이유를 찾아보려 한다. 아라우나와 다윗의 대화를 잘 읽어보면 다윗은 처..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나아가나(10절), 하나님께서는 이미 심판을 예비하고 계셨다(11-13절). 다윗은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하며 심판을 택하고(14절), 그 결과 백성 가운데 큰 심판이 임한다(15절). 예루살렘이 심판 받기 직전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멈추시고(16절) 다윗은 하나님께 긍휼을 구한다(17절). 나는 본문에서 다윗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그와 합일되는 하나님의 긍휼을 본다. 다윗은 회개 중에 하나님의 긍휼을 믿고 그의 손에 자신을 맡겼다(14절).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운 심판을 내리셨지만, 완전히 다윗 왕국을 멸하시는 대신 "족하다"고 하시며 어느 순간 심판을 멈추셨다(16절). 다윗이 굳세게 믿었던 하나님의 긍휼이 결국은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본문은 그리스도인..
본문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격동시키사 인구 조사를 시키셨다는 기록으로 시작한다(1절). 다윗은 요압에게 인구 조사를 명하고(2절) 요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3절) 이를 강행한다(4a절). 요압과 사령관들은 이스라엘과 유다 전역을 다니면서 인구를 조사하고(4b-7절) 예루살렘에 돌아와(8절) 이를 보고한다(9절). 성경은 다윗의 인구 조사가 죄라고 이야기한다(1절; cf. 삼하 24:10). 왜 그럴까? 우리는 그 이유의 단초를 요압의 대사(3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압은 눈에 보이는 백성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닌데 어째서 다윗이 그에 집착하는지 묻는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얼마든지 그러한 모습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다윗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중요한 요소를 정확히 알고 싶어했다. 이는 하나님을 온..
본문에서는 두번째 세 용사 중 두 사람, 아비새(18-19절)와 브나야(20-23절)를 소개한 후, 다윗의 용사 명단을 제시한다(24-39절). 나는 여기에 다윗의 용사 명단이 등장한 것이 흥미롭다. 이들 대부분은 여기에 한 번 등장할 뿐 성경의 다른 곳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도 아닌데, 성경은 이들의 이름을 정성스레 16절이나 할애하여 기록하고 있다. 왜 그럴까? 나는 성경이 "이름을 기록"하는 것에 대해 큰 중요성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그 제자들에게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것을 두고 기뻐하라고 하셨다(눅 10:20). 이는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기억하신다는 뜻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본문은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몸을 다해 충성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여 이를 두고..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우선 다윗의 뛰어난 세 용사인 요셉밧세벳(8절), 엘르아살(9-10절), 삼마(11-12절)에 대한 소개가 나오고, 여기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다윗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적진에 뛰어든 에피소드가 이어진다(13-17절).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세 용사와 "백성들" 사이의 대조가 눈에 띈다. 여기서 "백성들"의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그들은 싸움에서 도망쳤다가(9절) 엘르아살이 블레셋을 무찌르자 "돌아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다(10절). 또한 삼마의 전승 기록에서도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는 역할로 등장한다(11절).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인데(10, 12절), 왜 똑같은 하나님의 백성이 서로 다른 모습..
계속해서 노래가 이어지고 있다... 만, 조금 생각해 볼 부분이 있어 이번에는 본문 분석을 시도한다. 본문은 다윗의 유언시(1절)로, 다음과 같이 나눠볼 수 있다. 시인의 소개(1절) -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시인(2-3절) - 하나님의 말씀(3-4절) - 말씀이 이루어진 다윗의 집(5절) - 이와 대조를 이루는 사악한 자의 운명(6-7절).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2-3절)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왕(3절)에게 임할 축복(4절)을 노래하고 있다. 다윗은 자신의 집에 그러한 축복이 임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졌다며 즐거워하며(5절), 동시에 "사악한 자", 즉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당장에 불살라질 것이라 저주한다(6-7절). 아이러니..
어제에 이어 노래 감상. 내 기도 소리를 듣고 하나님 출동!역시 우리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쎄!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주만 바라볼지라 주만 바라볼지라
본문은 다윗의 시를 다루고 있다. 이 시는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신 그 날(1절)에 쓰여진 시로, 우리 역시 구원 받은 자로서 이와 같은 노래를 부를 이유가 있다. 한 가지 궁금해서 찾아본 것이 "반석"이 두 번 나온다는 것(2, 3절)인데, 히브리어 성경을 찾아보니 역시나 다른 단어로 쓰고 있더라. 사전에서 그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려고 했는데 실패... 히브리어 성경을 찾아보면서 얻은 소득 하나는, 히브리어로는 이 시가 각운이 반복되면서 리듬감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는 집어치우고, 노래잖아. 시잖아. 읽자. 느끼자. 천만인이 나를 둘러 쳐도 그 분이 내 편이시기에 그 분이 내 편이시기에 내 편이시기에
본문에서는 블레셋 거인족들을 죽인 다윗의 부하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22절). 아비새는 이스비브놉을(16-17절), 십브개는 삽을(18절), 엘하난은 라흐미를(19절), 그리고 요나단은 또 하나의 거인을 죽였다(20-21절). 거인족의 묘사를 살펴보면 그들이 위압적이고 강력한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무게가 삼백 세겔 되는 놋 창"(17절), "베틀 채 같"은 "창 자루"(19절), 스물 네 개의 가락(20절) 등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이 그 앞에서 느꼈을 공포를 암시해준다. 하지만 다윗의 부하들은 그 앞에서 위축되지 않고 당당히 싸워 그들을 모두 죽였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가? 본문에서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한 가지는 적이 "이스라엘 사람을 능욕"하였기 때문(21절)이었다. 이..
기브온 사람의 요구에 다윗은 므비보셋 대신(7절) 사울의 아들 둘과 손자 다섯을 넘겨주었고, 기브온 사람들은 그들을 목매달아 죽였다(8-9절). 사울의 첩이었던 리스바는 그 시체를 오랜 기간 훼손되지 않도록 지켰고(10절), 그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11절) 이들의 시신을 거두어 사울 및 요나단의 유골과 합장하였다(12-14a절).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셨다(14b절). 본문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성품은, 죄는 그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기브온 사람을 핍박한 사울의 죄(삼하 21:2)가 제대로 치러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기근이 임하게 하셨다(삼하 21:1). 이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은 그 죄를 대신하여 누군가가 죽는 것이었고(삼하 21:5-6), 아버지 혹은..
날샘은 본문을 좀 이상하게 나눠 놓았는데, 사실 삼하 20:23-26은 지난 번 본문에 붙었어야 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왕의 신하들을 죽 열거하는 것은 나라가 안정화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cf. 삼하 8:15-18, 대상 18:15-17, 왕상 4:2-6). 즉 이 본문은 세바의 난이 평정되고 나라가 안정되었다는 메시지를 내포한다. 여기에서 사무엘하의 큰 흐름이 일단락된다. 이어 삼하 21장에서는 에필로그처럼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삼 년 동안 임한 기근을 두고 다윗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사울의 죄악 때문이라고 알려주신다(1절). 사울은 자신의 열심으로 기브온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었다(2절). 다윗이 그들을 불러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자(3-4절) 사울의 자손 일곱을 내어달라고 요구하고 다..
세바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14절) 아벨 성으로 들어갔고 요압 군은 성을 에워싼다(15절). 아벨 성의 한 지혜로운 여인은 요압을 청하여(16-17절) 성을 공격하는 연유를 묻는다(18-19절). 요압이 세바만 내어주면 떠나가겠다고 약속하자(21절) 여인은 사람들을 모아 세바를 죽이고 그 목을 내어준다(22절). 성경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바를 따랐다고 기록한다(삼하 20:2, 14). 그런 상황에서 아벨 성 사람들이 세바를 죽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압살롬의 난 못지 않게 커질 수 있었던 큰 반란이 순식간에 사그라든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은 그 이유를 여인의 "지혜"에서 찾는다(22절). 이 여인은 "지혜로운 여인"으로 기억된다(16절). 지혜란 무엇인가? 본문에서 보여준 여인의..
다윗은 아마사에게 3일 안에 군대를 모으라고 명하나(4절) 아마사는 일정을 맞추지 못한다(5절). 이에 다윗은 아비새에게 다시 군대를 모아 세바를 쫓으라고 명한다(6-7절). 이들이 아마사를 만나자(8절) 요압은 그를 살해한다(9-10절). 요압의 청년 중 하나가 아마사의 시체를 치우고 난 후에(11-12절) 다시 요압 군은 세바를 추격한다(13절).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아마사에 대해 잠시 정리해 본다. 아마사는 다윗의 조카로, 요압과는 사촌 간이었다(대상 2:15-17). 따라서 다윗의 아들 압살롬과도 사촌지간이었고, 그 때문이었는지 압살롬 군의 사령관을 맡았다(삼하 17:25). 압살롬의 난이 진압된 후, 다윗은 유다 사람들의 신임을 얻기 위해 그에게 요압의 뒤를 이어 군사령관을 맡기겠다고 약속하였..
마침내 다윗은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환대를 받으며 요단 강을 건너온다(40절). 그 과정에서 유다 사람들이 선수를 친 것이 섭섭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에게 불만을 표하자(41절), 유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42절) 둘 사이의 분란을 조장한다(43절).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이 분란을 이용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윗에게서 떠나게 한다(1-2절). 한편 압살롬에게 욕을 본 후궁들은 별도로 갇혀서 생과부로 지내게 되었다(3절). 날샘의 묵상과는 달리 유다 사람들이 "동역하는 사람들"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유다 사람들은 다윗의 피난길에 함께 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환궁 과정에서 다윗이 그들을 선호하여 먼저 연락했던 것(삼하 19:11-12)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