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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2:14-18 본문
본문에서 바울은 반복하여 "둘"이 "하나"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14, 15, 16, 18절). 이 "둘"은 무엇인가? 본문에 따르면 "먼 데 있는 너희"와 "가까운 데 있는 자들"이다(17절). 이를 좀 더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제 본문의 도움을 얻을 필요가 있다. 엡 2:11에 따르면 "할례를 받은 무리"와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가 등장한다. 즉, 이 "둘"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둘 사이를 막고 있던 "원수 된 것"(14, 16절), "중간에 막힌 담"(14절),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15절)은 그리스도의 "육체"(14절), 즉 "십자가"(16절)로 소멸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 분명히 나타나는 바울 신학의 요체를 다시 한 번 발견한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 되지 못하게 하고 있었던 것은 율법이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사 십자가에 달려 모든 속죄를 대신하심으로 모든 율법을 단번에 성취하셨고(히 9:28, 벧전 3:18), 이로써 "먼 데 있는" 이방인과 "가까운 데 있는" 유대인을 갈라놓고 있던 "담"이 허물어졌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라고 바울이 선포하는 바(14절)와 같이 화평이다. "둘"이 "하나"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예수께서 유대인-이방인의 벽을 허무시자 우선 그 둘이 하나가 되어 화평하게 되었고(15, 17절 -- 헬라어 본문에서는 "화평"과 "평안"이 같은 단어 εἰρήνη임), 이 둘이 한 몸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화목하게 되었다(16, 18절). 인간 사이의 벽, 인간-하나님 사이의 벽이 모두 허물어지는 놀라운 화평이 우리 가운데 임한 것이다.
그렇게 둘이 이룬 "한 몸"(16절)이 무엇인가? 이 단어(σῶμα)는 에베소서에서 자주 사용되는데(1:23; 4:4, 12, 16; 5:23, 28, 30), 그 용례를 찾아보면 주로 "그리스도의 몸"을 가리킨다. 즉 본문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 되어 교회를 이루었다는 진리를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교회가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다(18절).
나는 이방인으로서 율법과 상관 없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이루신 교회에 속하게 되었고, 이제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나는 교회 안의 화평을 충만히 느끼고 있는가? 나는 교회의 일원으로서 하나님과 화목하고 있는가? 오늘 저녁에 있을 기도회 가운데 "한 성령"이 임하셔서 우리가 아버지께 함께 나아가게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