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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압살롬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한다. 압살롬은 외모가 출중한 사람으로(25절), 특히 머리카락이 인상적이었다(26절). 그는 세 아들과 더불어, 자기 여동생과 같은 이름의 아름다운 딸을 두고 있었다(27절). 이 소개는 훗날 압살롬의 죽음(삼하 18:9-15)을 설명하기 위한 복선이다. 이어 압살롬과 다윗의 화해 장면이 나온다. 압살롬은 2년 동안 왕을 보지 못하여(28절) 요압을 통해 말을 전하려 하나 요압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29절). 이에 요압의 밭에 불을 지르고(30절) 성난 요압이 찾아오자(31절) 자신의 요구를 말한다(32절). 결국 압살롬과 다윗은 재회할 수 있었다(33절). 날샘의 묵상과는 달리, 나는 본문이 압살롬을 악인으로 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차라리 내 눈에 더 띄는 것..
다윗은 드고아 여인에게 배후에 요압이 있었는지 묻고(18-19a), 여인은 그랬다고 실토한다(19b-20절). 다윗은 요압에게 명하여 압살롬을 데려오게 하고(21절), 요압은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려온다(23절). 하지만 다윗은 압살롬을 만나 주지 않는다(24절). 본문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요압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이다. 사무엘하 14장에서 다윗은 그저 무기력한 변덕쟁이 왕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고, 요압은 그를 설득하여 행동을 취하게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다윗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어쩌면 사무엘서 기자는 이를 통해 요압이 다윗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었음을 기술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다윗이 그를 경계하고 있었음에도(왕상 2:5) 섣..
여인은 다윗에게로부터 원하던 답을 얻자마자(삼하 14:11) 자신이 진짜 말하려고 하던 메시지를 전한다(12절). 그는 자신의 아들에 대한 다윗의 판결을 압살롬에게 대입시키며(13-14절), 자신이 다윗에게 나온 이유가 다윗의 판결을 믿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15-17절). 어렵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성경이 드고아 여인의 발언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제는 성급하게 드고아 여인을 인간의 지혜를 좇아 율법을 어기게 하는 존재로 간주했지만, 오늘 본문을 꼼꼼히 뜯어보니 그렇게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불러온 것이 악한 일이었는가? 아니면 압살롬을 온전히 용서하지 않은 것이 악한 일이었는가? 전자가 맞다면 요압과 드고아 여인은 비난 받아야 할 테지만, 후자..
요압은 다윗의 마음을 읽고(1절) 지혜로운 여인을 하나 구해 다윗에게 보낸다(2-3절). 다윗에게 간 그(4절)는 자신을 과부로 소개하고(5절) 두 아들이 싸우다 한 아들이 죽었다고 말한다(6절). 이어 살인자 아들을 죽이려는 사람들을(7절) 말려달라고 청원하고(11절), 다윗은 그를 돕겠다고 세 번 답한다(8절, 10절, 11절). 본문은 "왜 다윗은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도로 불러왔는가?"(삼하 14:23)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다윗은 압살롬을 그리워했다(1절, cf. 삼하 13:39). 하지만 한편으로 압살롬을 선뜻 불러올 수는 없었다. 이는 암논을 잃은 슬픔(삼하 13:37)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왕으로서 살인자에 대한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었을 수..
다윗은 모든 왕자가 다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30절) 옷을 찢고 땅에 드러누웠다(31절). 요나답은 암논만 죽었을 것이라며 다윗을 위로한다(32-33절). 곧 왕자들이 돌아왔고(34-35절) 함께 통곡한다(36절). 압살롬은 그술로 도망가서 3년을 지냈고(37-38절), 다윗은 압살롬을 향한 마음이 간절해졌다(39절). 나는 어제에 이어 오늘 본문에서도 죄악의 귀결을 본다. 가깝게는 암논의 죄에서 기인하지만 멀리는 다윗의 죄로까지 소급되는 이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우리는 죄의 파괴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할 수 있다. 본문에는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는 말이 반복되고 있다. 다윗은 소문을 듣고 "옷을 찢고 땅에 드러"누웠고(31절), 왕자들과 재회한 후에는 "심히 통곡"했다(36절). "아들"이 누구를 가리키..
압살롬이 드디어 자신의 복수극을 실행에 옮긴다. 그는 양털 깎는 행사(23절)에 다윗(24절)과 형제들을 초대하나(23절), 다윗은 고사한다(25절). 압살롬은 대신 암논을 보내 달라고 청하고(26절), 이에 못 이긴 다윗은 허락한다(27절). 압살롬은 종들을 시켜 암논을 살해하고, 다른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친다(28-29절). 오늘 본문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구절은 압살롬이 종들에게 명령한 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담대히 용기를 내라"(28절)라는 말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구절 아닌가? 비교해 보자.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수 1:9) 하나님이 당신의 "종" 여호수아(수 24:29)에게 명하신 말을..
암논은 억지로 다말과 동침한 후 다말의 반항(16절)에도 불구하고 그를 쫓아내 버린다(15-18a절). 다말은 크게 울부짖으며(18b-19절) 압살롬의 집에 가서 거하고(20절), 이야기를 전해들은 압살롬은 암논에 대한 앙심을 품는다(22절). 이야기를 전해들은 다윗 역시 크게 노한다(21절). 날샘은 다윗의 직무 유기를 크게 강조하고 있지만, 나는 그것이 본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인지 의심스럽다. 사무엘서가 압살롬의 반역을 나단 선지자의 예언(삼하 12:11-12)이 성취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삼하 16:21-22)을 감안해 볼 때, 다윗이 이 사건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취했는지가 과연 중요할까? 나는 어쩌면 다윗은 무언가 반응을 했지만 사무엘서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아 "심히 노하니라"..
다윗은 암논의 청을 받아들여 다말에게 암논을 방문하라 명한다(7절). 다말이 암논을 찾아가 과자를 만들고(8절) 먹으라 하나(9절), 암논은 다말에게 먹여달라 하고(10절) 그 틈을 타 다말을 범하려 한다(11절). 다말의 완강한 저항(12-13절)에도 불구하고 결국 암논은 뜻을 이룬다(14절). 본문에서는 암논의 치밀함이 잘 드러난다. 암논은 다말과 단 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고(9절), 다말을 자신의 침실로 불러들여(10절) 강간하기에 어려움이 없는 환경을 꾸민다. 그의 뻔뻔함은 다말을 "나의 누이"라고 부르는 데서 드러난다(11절). 그는 다말을 여동생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면서도 그에게 동침하자고 청한 것이었다. 이는 다말의 말대로 "어리석은 일"이었지만(12절), 그는 "듣지 아니하고" 결국 죄를 범..
본문은 전쟁 이후 벌어진 내전의 시초를 기술하고 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을 사랑하여(1절) 상사병이 났다(2절). 암논의 친구 요나답(3절)은 그에게 병이 난 이유를 묻고(4절), 계략을 짜서 그에게 알려준다(5절). 암논은 그 계략을 실행에 옮긴다(6절). 먼저 다윗의 자녀들이 서로 어떠한 관계인지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대상 3:1-9에 따르면 다윗의 장자는 본문에 나오는 암논이었다. 압살롬은 셋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고, 오늘 본문에 따르면 다말은 그의 여동생이었다. 암논이 다윗의 맏아들이라는 점은 특히 흥미로운데,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이 계모를 범하여(창 35:22) 저주를 받은 것(창 49:3-4)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계모를 범한 르우벤은 결국 장자권을 박탈당하였고, 이복누이..
본문은 이스라엘과 암몬 자손 사이의 전쟁이 어떻게 끝났는지 설명하고 있다. 요압은 랍바 왕성을 점령한 후(26절) 다윗에게 전갈을 보내 전쟁을 끝내길 요청한다(27-28절). 다윗은 랍바를 쳐서 점령한 후(29절) 물건들을 노략하고 백성들을 노예로 삼았다(30-31절). 이번 본문을 이해하는 단초는 어느 흐름을 타느냐일 것이다. 이 본문은 다윗의 범죄 기사에서 이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삼하 10장에서 이어지는 것인가? 날샘은 위치상 범죄 기사에 이어지기 때문에 이 본문이 대조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나는 "만약 처음부터 다윗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에 집중했더라면"과 같은 가정법 문장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본문에서는 그러한 가정법을 암시조차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
다윗은 아이의 죽음을 듣고 몸을 추스려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온다(20절). 의아한 신하들이 묻자(21절), 긍휼을 구할 때는 금식하고 울었지만 이미 아이가 죽은 후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답한다(22-23절). 이후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다시 아들 솔로몬을 얻었고,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였다(24-25절). 다윗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실지 몰라서(22절) 하나님 앞에 금식하고 알면서 나아갔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고, 다윗은 이에 대해 실망하거나 원망하는 모습 대신, 정갈하게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는 모습(20절)을 보인다. 다윗의 기도가 놀라운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지만,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
본문은 나단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다윗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다. 다윗은 먼저 회개하였고(13a절), 나단은 그 죄가 사하여졌지만 아이는 죽을 것이라고 전한다(13b-14절).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자(15절) 다윗은 간절히 그 아이를 위하여 기도한다(16-17절). 하지만 그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죽었고(18절), 다윗도 그 사실을 알게 된다(19절). 먼저 내 시선을 끌었던 것은 다윗의 회개 모습이었다. 본문에서는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한 문장으로 회개를 마치고 하나님이 그 회개를 받으신 것처럼 나오지만, 시 51편에 보면 사실 그 안에 좀 더 깊고 구체적인 회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회개가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도 죄를 사하셨던 것이다. 또한 다윗이 아이를 위하여..
본문에서 나단은 다윗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베푸신 은혜를 상기시키시고(7-8절), 그 은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을 책망하신다(9-10절). 이 불순종의 결과는 심판이었다(10-12절). 하나님이 보시기에 불순종의 죄악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것(9절)이었고, 이는 곧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었다(10절). 왜 그러한가?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며 그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그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지 않는 행동이고,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우습게 아는 것이다. 본문에 기록된 다윗의 죄악과 하나님의 심판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
본문은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다루고 있다. 다윗의 악한 행실을 보신 하나님(삼하 11:27)은 나단을 그에게 보내어(1절) 우화를 하나 들려주신다(1-4절). 다윗은 그 우화를 듣고 노하여 율법에 따른 처벌을 주장한다(5-6절). 본문에서 흥미로운 것은 다윗의 반응이다. 그는 분노하였다. 그의 첫 반응은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였고, 두 번째 반응은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였다. 이 두 반응 사이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첫 번째 반응이 분노로 인한 감정적인 반응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반면 다윗의 두 번째 반응은 보다 이성적인데, 율법의 규정을 참고하자면 양을 도적질한 자는 그 네 배로 갚아주어야 했고(출 22:1). 다윗의 두 번째 반응은 정확히 이 율법 규정을 따르고 있다. 어느..
본문은 다윗이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음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는지 기술하고 있다. 요압의 명을 받은 전령은 다윗에게 가 변명과 함께 우리아의 전사를 보고했고(22-24절), 다윗은 관대하게 그 보고를 받는다(25절). 우리아의 장례(26절)를 마치고 다윗은 밧세바를 데려와 아내로 삼는다(27절). 본문을 읽다보면 다윗의 '완전 범죄'가 얼마나 정교했는지 체감할 수 있다. 전령과 다윗이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 있었던 다윗의 신료들은 그 대화에서 이상한 점을 감지할 수 있었을까? 전령의 보고를 보면(23-24절) 요압이 시킨 것에 비해 많은 정보가 추가되었음을 볼 수 있는데, 이 정보들은 우리아의 전사에 큰 개연성을 부여한다. 다윗 역시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라는 일반적인 원칙을 내세워 요압..
오늘 본문은 다윗의 마지막 계략과 그 성공에 대해 다루고 있다. 다윗은 적의 손을 빌려 우리아를 죽이기로 작정한다(14-15절). 요압은 이와 같은 계획을 듣고 그대로 실행에 옮겨 우리아를 죽게 하고(16-17절), 이를 다윗에게 보고한다(18-21절). 요압이 썼던 전술은 전쟁에서 사용해서는 안 되는 전술이었다. 만약 전쟁에 익숙한 사람(cf. 삼하 17:8)이었던 다윗이 듣는다면 이를 단박에 알아채고 요압을 징계할지도 몰랐다(19-21절). 요압은 그럴 경우 우리아의 죽음을 보고하게 한다(21절). 그러면 다윗은 잠잠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결국 전투의 목적이 전쟁의 승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죽이는 데에 있었음을 드러낸다. 우리아는 다윗의 용사 중 한 명이었다(삼하 23:39, 대상..
오늘 본문은 지난 본문 5절의 임신 소식에서 이어지는 다윗의 계략을 다루고 있다. 다윗은 먼저 우리아를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여(6절) 상을 베풀어 집으로 보낸다(7-8절). 집에서 아내와 동침하면 완전 범죄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아는 집으로 가지 않았고(9절), 다윗은 그를 다시 설득하려다 실패한다(10-12절). 다음으로 다윗은 우리아를 취하게 하여 집으로 보내려 하나, 이 역시 실패한다(13절). 본문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온 것은 다윗의 교활한 계략과 대조를 이루는 우리아의 의로운 행동이었다. 우리아는 "언악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는 상황에서 편하게 지낼 수 없다며 왕의 제안을 거절했다(11절). 특히 부인과 동침하는 것조차 그는 꺼려했는데, 이는 당시의 정결 개념과 연..
오늘의 본문을 읽으면서 어젯밤에 읽었던 4월호 커버스토리가 계속 겹쳐 보였다. "알고 보면 세속적인 목회자들의 욕망"이라는 제목을 달고 그리스도인과 욕망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사들이었는데, 참... 작금의 상황과 겹쳐서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암몬 자손과 전쟁하던 시기에 벌어졌던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의 시작 부분을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암몬 자손을 공격한 끝에 수도로 몰아넣는 데 성공했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남아있었다(1절). 다윗은 한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2절) 흥미가 동해 그가 누구인지 알아본 후(3절) 불러들여 동침한다(4절). 결국 이 여인은 임신하게 되었다(5절). 오늘도 날샘과 박희원 목사님에게 반역하는(!) 큐티를 해볼까 한다. 1절에 묘사된 "다윗은 ..
본문은 어제 본문에 이어 이스라엘과 암몬 사이의 전쟁을 묘사하고 있다. 암몬 자손은 승리를 위해 아람 사람들을 고용하였고(삼하 10:6), 이스라엘은 이에 대항해 백성을 둘로 나눠 아람과 암몬을 각각 상대한다(9-12절). 요압이 이끈 군대가 아람 사람을 쫓아내자(13절), 암몬 자손 역시 아비새 앞에서 패주하였다(14절). 설욕을 위해 아람 사람들이 다시 진열을 정비하여 헬람에 모이자(15-16절), 다윗이 지휘하는 군대가 그를 물리치고(17-18절) 화친을 받아낸다(19절). 지루한 전쟁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이 속에 흥미로운 포인트들이 몇 가지 보인다. 먼저 이스라엘의 주적은 암몬 자손이었고 이들의 용병이 아람 사람이었음을 기억하자. 그런데 요압은 이스라엘의 정예들을 뽑아 아람 사람을 상대하게 하고..
본문은 이스라엘이 암몬 자손을 정복하게 되는 단초를 묘사하고 있다. 다윗은 암몬 자손의 왕이 바뀌자(1절) 선왕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을 기억하여 조문 사절을 보낸다(2절). 하지만 암몬 자손의 관리들은 그들을 모함하고(3절) 암몬 왕 하눈은 다윗의 신하들을 모욕한 후(4-5절) 전쟁을 준비한다(6절). 다윗 역시 군대를 보내(7절) 두 군대가 대치하게 된다(8절). 우선 본문은 사무엘하 10-12장에 이르는 큰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고 본다. 삼하 10장에서 시작된 전쟁은 이듬해로 이어졌고(삼하 11:1), 결국 암몬 자손은 이스라엘에게 멸망하게 된다(삼하 12:26-31). 이는 넓게 보아 다윗의 정복 사업의 일환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경우와는 달리(삼하 8장) 본문에서는 그 정복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