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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12:20-25 본문
다윗은 아이의 죽음을 듣고 몸을 추스려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온다(20절). 의아한 신하들이 묻자(21절), 긍휼을 구할 때는 금식하고 울었지만 이미 아이가 죽은 후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답한다(22-23절). 이후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다시 아들 솔로몬을 얻었고,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였다(24-25절).
다윗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실지 몰라서(22절) 하나님 앞에 금식하고 알면서 나아갔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고, 다윗은 이에 대해 실망하거나 원망하는 모습 대신, 정갈하게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는 모습(20절)을 보인다. 다윗의 기도가 놀라운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지만,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욥의 기도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시나, 우리는 알 수 있는 것도 제한되어 있고 할 수 있는 것도 제한되어 있다. 예전에 박희원 목사님께서 신 29:29를 본문으로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에 대한 설교를 하셔서 내게 큰 충격을 주셨던 적이 있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우리는 마치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성경은 "감추어진 일"과 "나타난 일"이 있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을 오늘 본문에 적용해 보자면, 다윗의 아이가 죽을지 살지에 관한 지식은 하나님께 속한 "감추어진 일"이었다. "나타난 일"은 하나님은 긍휼하셔서 때로 그 뜻을 돌이키시기도 한다는 것이었고, 다윗은 그것을 붙들고 기도하였다. 하지만 "감추어진 일"이 드러났을 때, 결국 다윗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바꾸지 못했음이 밝혀졌다. 그 때 다윗은 어떻게 행동하였는가? 그는 분노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을 사랑하셨고, 여디디야를 주심으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셨다(24-25절).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 가운데 "감추어진 일"은 무엇이고 "나타난 일"은 무엇인가? 나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면서 내게 속한 "나타난 일"을 직면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분의 나타난 뜻에 순종하며 살고 있는가?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고전 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