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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2:12-23 본문

큐티

삼하 2:12-23

로보스 2013. 3. 15. 10:55

오늘도 날샘의 묵상 방향에 반대하는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박희원 목사님 용서하소서...) 날샘은 아사헬의 죽음을 "고집불통의 결과"로 보고 있으나, 본문이 정말 그걸 이야기하고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우선 본문을 살펴보자면, 아사헬은 발이 빠른 사람으로 긍정적으로 묘사되고(18절),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여 아브넬을 쫓은 것으로 나타난다(19절). 아사헬이 물러가기를 거절한 것(23절)은 사실 적장을 쫓는 군인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이 '괜한 고집'인가? 내 생각에 이 아사헬의 죽음은 삼하 3:27에서 묘사되는 아브넬의 죽음에 대한 복선일 뿐이다. (얼마나 묵상할 포인트가 없었으면 날샘에서 이런 포인트를 잡았는지 모르겠다;;;)

본문의 주제는 무엇일까? 나는 무엇보다 다윗의 백성과 이스보셋의 백성은 "형제"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사무엘서가 분열왕국 이후에 쓰여졌다고 생각한다면, 즉 통일왕국에 대한 꿈이 본문 속에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면, 본문이 모든 지파들의 하나됨을 강조하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본문에서 아브넬은 아사헬을 죽이기 꺼려하면서 그 이유로 아브넬이 요압을 다시 보기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22절). 이는 이들 사이에서 왕래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구절이다. 또한 오늘 본문은 아니었지만 26-27절에도 "형제"라는 말이 나와, 다윗의 백성과 이스보셋의 백성은 본디 하나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은 어느 한 쪽을 노골적으로 편들지 않는다. 본문에서는 두 백성이 비등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묘사된다. 각 진영을 대표하는 청년 열둘의 일전은 무승부로 끝났고(14-16절), 두 진영의 싸움은 "심히 맹렬"했다(17절). 하나님께서 노골적으로 다윗의 편을 들었다는 구절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바로 직전에 있는 삼상 30장에서 여호와께서 다윗의 편에 서셨던 것(삼상 30:8, 23)과는 대조적이다. 이스보셋의 무리는, 비록 다윗을 대적하였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스보셋의 무리가 패했을까? 본문이 명시적으로 그 이유를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구절을 찾을 수 있었다. 이스보셋의 부대는 "마하나임에서 나와" 기브온에 이르렀다(12절). 다윗의 부대가 단순히 "나와" 기브온에 도착한 것과는 대조적이다(13절 -- "헤브론에서 나와"라고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하나임은 창 32:2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군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그렇다면 본문은 이스보셋의 무리가 하나님의 군대를 떠났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떠났을 때, 그 결과는 참혹했다(cf. 삼하 3:1). 나는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믿고 그 분이 창세 전에 나를 택정하셨다는 것을 믿는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뜻을 떠난다면, 그 분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참혹할 것이다. 비록 쉽지는 않겠지만, 주님이 걸어가신 그 순종의 길을 따라가자. 오늘 새벽기도 가운데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뜻에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한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롬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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