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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9:7-13 본문
본문은 어제에 이어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베푼 "은총"(7절)을 이야기한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만나 그에게 은총을 베풀 것을 약속하고(7-8절), 사울의 종이었던 시바(이 놈은 이름이 복선이다)를 불러 므비보셋을 돌보게 한다(9-11a절). 이는 다윗의 명대로 이루어진다(11b-13절).
약속 - 명령 - 실행으로 이루어지는 이 그림 속에서 핵심적인 것은 7절에 나오는 다윗의 약속이다. 다윗의 약속은 은총을 베푸는 이유와 그 은총의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내용부터 살펴보자면, (1)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다는 것과 (2)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전자의 경우는 그래도 좋게 봐서 율법의 희년 개념을 적용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레 25, 27장에 나오는 희년 규정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기업(수 14:5)은 잠시 가난으로 인해 팔았더라도 희년이 되면 되돌리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사울의 기업을 그 자손에게 돌린 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율법을 충실히 따른 결과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율법의 개념 아래에서 보더라도 후자의 은총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가 다윗의 상에서 떡을 함께 먹는 것이 당시에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었는지, 사무엘서 기자는 본문에서 네 번이나 그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7절, 10절, 11절, 13절). 므비보셋은 원수의 손자였고, 그를 "왕자 중 하나처럼" 대접할 필요는 없었다(11절). 그렇다면 다윗은 도대체 왜 이런 호의를 베푼 것인가?
그 답이 바로 7절 앞부분에 나와 있다.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이 말씀을 읽으면서 나는 묘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선포하셨다.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신 9:5) 하나님께서 목이 곧은 백성(신 9:6)이었던 이스라엘을 끝까지 지키신 것은 그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 때문이었다. 다윗이 "죽은 개 같은" 므비보셋(8절)에게 자비를 베푼 것 역시 그 아버지 요나단과 했던 약속(삼상 20:12-17) 때문이었다.
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실함이자 하나님의 인애이다. 약속한 것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끝까지 지키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신실함이요, 그것을 빼닮은 다윗의 신실함이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킴에 있어서 분에 넘치게 자비를 베푸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인애요, 그것을 빼닮은 다윗의 인애였다. 다윗은 하나님의 신실함과 인애하심을 몸소 체험했기에 다른 이들에게 동일하게 베풀 수 있었다. 내 삶에는 그러한 신실함과 인애가 흐르고 있는가? 약속을 인하여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신실함, 그리고 몸을 찢어 주시기까지 다 내어주신 주님의 인애, 이 고난 주간에 체험하길 원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갈 3: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