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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두 가지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먼저 예수와 제자들이 배에 타고 있을 때(23절) 풍랑이 일어 배가 잠기게 되었다(24절).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를 깨우며 구원해 달라고 구했고(25절)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풍랑을 잔잔하게 하셨다(26절). 두 번째 이야기에서 예수는 귀신 들린 사람 두 명을 만나신다(28절). 귀신들은 예수께 소리를 질렀고(29절) 예수께서는 이들을 돼지 떼로 쫓아내셨다(30-32절). 사람들은 두려워했다(33-34절). 흥미롭게도 이 두 가지 사건 가운데 질문과 답변이 한 세트 들어있다. 제자들은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라고 물었다(27절). 바로 다음 본문에서 귀신 들린 자의 입을 통해 이에 대한 답이 나온다. "하나님의 아들이여!"(29절..
오늘 본문은 제자도에 관해 가르치고 있다. 예수께서는 많은 무리를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셨다(18절). 그 곳에서 어느 서기관이 예수를 따르겠다고 하자(19절) 당신은 머리 둘 곳이 없으시다고 답하셨고(20절), 어느 제자가 아버지 장례를 치르겠다고 하자(21절)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22절). 오늘 본문은 다소 난해하다. 앞선 본문과의 연관성도 그다지 커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본문에 집중해서 해석해 볼까 한다. 먼저 본문에 등장하는 세 부류의 인물을 살펴보자. "무리"(18절), "서기관"(19절), 그리고 "제자"(21절)다.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예수께서는 무리를 피하셨지만(18절) 제자는 당신을 따르기를 원하셨다는 것이다(22절). 이 둘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18..
다음으로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의 가족들도 고치셨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을 앓는 것을 보시고(14절) 손을 만져 낫게 하신 것이다(15절). 예수께서는 그 외에도 여러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셨다(16절). 마태는 병자 치유 기사를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마무리한다(17절). 마태는 의도적으로 세 편의 병자 치유 기사를 병치해놓은 것 같다. 이들은 각기 다양한 배경과 다양한 관계를 가진 자들이었다(유대인 나병환자, 이방인 백부장의 종, 제자의 장모). 그리고 이들 모두는 당시 사회에서 소수자였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병환자는 사회에서 격리되어 천대 받던 사람들이었고, 비록 군대의 고급 장교였지만 이방인은 본질적으로 선민에 포함되지 않았다. 끝으로 베드로의 장모는 여성으로서 많은 사회적 제약에 직..
예수의 치유 사역이 계속된다. 이번에는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일이다(5절). 백부장 하나가 하인의 중풍병을 예수께 아뢰자(6절) 예수께서 직접 가서 고쳐주겠다고 하셨다(7절). 백부장은 예수께서 오실 것 없이 말씀만으로 낫게 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8-9절). 예수께서는 그 믿음을 놀랍게 여기시고(10절) 이방인들이 천국에 참여할 것을 말씀하신다(11-12절). 그리고 그 하인의 병을 고쳐주셨다(13절). 본문에서 두 가지를 읽을 수 있다. 첫째는 예수께서 칭찬하신 백부장의 믿음(10절)이다. 그는 군인의 언어로 예수의 권세를 이해한다(9절). 장교가 병사에게 명령을 하면 바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예수가 명령을 하면 모든 것이 복종한다. 이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요,..
예수께서 산 위에서 설교를 마치시고 내려오시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랐다(1절). 그 중에 나병환자가 한 명 예수를 찾아와 고쳐주시기를 청하였고(2절), 예수께서는 그의 나병을 고쳐주셨다(3절). 예수께서는 그에게 율법에 따라 정결함을 입증하라고 명하신다(4절). 오늘 본문은 4장에서 이어지는 예수의 사역을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1절은 4장 마지막 절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ἠκολούθησαν αὐτῷ ὄχλοι πολλοὶ)"(마 4:25)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ἠκολούθησαν αὐτῷ ὄχλοι πολλοί)"(1절) 이는 연속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문학적 장치로 보인다. 그리..
오늘 본문은 산상수훈의 결론 부분이다. 예수께서는 반석 위에 지은 집(24-25절)과 모래 위에 지은 집(26-27절)을 비유로 들어 예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와 행하지 않는 자의 결국을 설명하신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그 가운데 권위가 있었기에(29절) 가르치심에 크게 놀랐다(28절). 오늘은 뒤에서부터 살펴보자. 예수의 말씀을 듣던 "무리들"은 예수의 말씀에 놀랐다(28절). 서기관들과 달리 "권위 있는 자"로서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29절). 여기서 말하는 "권위"(ἐξουσία)는 마태복음의 다른 곳에서는 "권능"으로 번역되기도 하였는데(9:6; 10:1), 맥락으로부터 볼 때 신적인 권위/권능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당시 서기관들에게는 신적인 권위가 없었지만 예수께는 신적..
오늘 본문은 "열매", 즉 행함에 관한 말씀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겉으로는 선하나 악한 열매를 맺는다(15-16절). 이를 설명하기 위해 예수께서는 열매가 나무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비유를 제시하신다(17-20절). 악한 열매를 맺는 나무는 불에 던져질 것이다(19절). 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을 가리켜 하시는 말씀이다(21-23절).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하는 방법은 "열매"를 보는 것이다(16, 20절).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면(17-18절), 열매의 종류가 결국 나무가 어떠하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못된 나무, 즉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는 "찍혀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하신다(19절). 메시지는 분명하다. 좋은 열매를 맺으..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교훈이 등장한다. 소위 '황금률'(12절)과 '좁은 문의 교훈'(13-14절)이다. 우선 '황금률'은 내가 대접받고 싶은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역지사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12절). 흥미로운 것은, 예수께서 이 메시지로서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을 요약하셨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산상수훈 초반에 "율법과 선지자"를 언급하신 것을 생각해보면(마 5:17), 어쩌면 거기부터 12절까지가 하나의 덩어리로 예수께서 구약을 재해석하신 내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좁은 문의 교훈이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좋아보이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좁은 문을 사모하라고 하신다(13-14절). 여기서 '좁은 길'과 '넓은 길'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
그 동안 잠시 슬럼프였다. 예수의 말씀과 나의 삶 사이의 괴리를 견딜 수 없어서 잠시 묵상을 쉬었다. 아직 그 괴리가 없어진 것은 아닌데, 그럼에도 꾸역꾸역 다시 말씀 앞에 나온다. 대신 짤막하게 묵상한다. 오늘 본문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구하면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며(7-8절), 인간 부모의 예를 들어 설명하신다(9-11절). 여기에 깔려있는 전제는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부모-자녀의 관계와 같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 전체를 통틀어 반복해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라는 표현을 쓰신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그와 같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나..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비판에 관한 가르침(1-5절)과 무지한 자를 대하는 법(6절)이다. 이 두 가지는 흥미롭게도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타인'을 대하는 두 가지 관점을 소개한다. "형제"와 "개"/"돼지"가 그것이다. "형제"는 비판하지 말고, "개"/"돼지"에게는 접근하지 말라. 맥락에 잘 맞지 않는 것 같은 6절이 여기 삽입된 이유는 이 두 관점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먼저 비판에 관한 부분은 이해하기 쉽다. 내가 비판을 한다면 동일한 잣대가 나에게도 적용된다(1-2절). 그런데 이 '동일한 잣대'는 동일한 규범이라는 의미라기보다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로 보인다. 3-5절을 보면 나와 형제의 잘못이 "들보"와 "티"처럼 다르다고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
오늘 본문부터는 구조가 조금 불명확하다. 그래서 조금 길게 끊어서 묵상해보려 한다. 우선 본문의 주제문은 19-20절로 보인다.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는 말씀이다. 이는 내가 마음을 두는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 보라는 뜻이기도 하다(21절). 예수께서는 땅에 마음을 둘 필요가 없음을 한참 설명하시고(25-32절), 하늘에 마음을 두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간단하게 요약하신다(33절). 본문을 관통하는 한 가지 사상은 하늘과 땅의 강렬한 대비이다. 땅의 보물은 상하거나 도둑 맞을 염려가 있지만(19절) 하늘의 보물은 누구도 훔쳐갈 수 없다(20절). 땅의 삶은 재물을 섬기는 것이요, 하늘의 삶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 둘은 양립 불가능하다(24절). 재물을 섬긴다는 것은 결국 의식주를..
세 번째 "의"가 등장했다. 이번에는 금식이다. 외식하는 자들은 금식할 때 얼굴을 흉하게 하여 자신이 금식 중임을 알렸다(16절). 예수께서는 단호하게 이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금식할 때 올바른 자세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용모 단정하게 금식하는 티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명하신다(17절). 이는 금식을 하나님께만 알리기 위함이다(18절). 성경에 등장하는 금식은 많은 경우 기도와 결부되어 있다(느 1:4, 단 9:3, 눅 2:37; 5:33, 행 13:3; 14:23). 그리고 금식은 즐거움을 끊는 행위로 간주되었다(사 58:3-6). 즉, 육신의 욕망을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괴로워하며 부르짖는 것이 금식의 본디 목적인 것이다. 바벨론 포로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포..
그 유명한 주기도문 본문이다. 이 본문은 세 가지 외식, 즉 구제, 기도, 금식에 대해 말씀하시던 중 기도에 대한 이야기 뒤에 덧붙이신 내용으로 보인다. 기도할 때 외식을 피해야 하는 것(마 6:5-6) 못지 않게 주의해야 할 것이 중언부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7절). 말을 많이 하고 공을 많이 들이면 신이 응답할 것이라는 생각은 올바른 신앙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며(8절), 간단한 기도의 예시를 몸소 보여주신다(9-13절). 이 기도에서 가장 먼저 구하는 것은 나의 필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통치다(9-10절). 그 이후에 나의 필요를 구하는 대목이 나오는데(11절), 여기서도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구한다. ..
두 번째 "의"는 기도에 관한 것이다. 마태복음 6장에서 기도에 대해 다루는 부분은 5-15절의 넓은 부분이나, 7-15절은 지금 살펴보고 있는 큰 주제인 '외식'에서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기에 오늘은 5-6절만 묵상한다. 기도 생활에서 외식하는 자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기도한다(5절). 예수께서는 이들도 이미 그들의 상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5절). 그렇다면 올바른 기도 생활은 무엇인가?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다(6절). 그 때에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 기도를 갚으실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공예배에서 기도하지 말라거나, 다른 이들 앞에서 절대로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외식함으로 기도하는 것을 경계하..
이제 설교는 방향을 틀어 "의"를 행하는 문제를 다룬다. 구조상, 6장 1절이 주제문이고 2절부터 18절까지 세 가지 각론이 등장한다. 각 단락은 "...할 때에 ...와 같이 하지 말라"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며(2, 5, 16절), 각각 구제, 기도, 금식을 다룬다. 오늘은 주제문과 첫 번째 각론인 구제에 대해 살펴보고 묵상한다. 우선 1절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의를 행하지 말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상을 받고 싶다면, 사람들의 칭찬을 피해야 한다. 이는 각론의 첫 문장에서 잘 드러나는데, 예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외식하는 자들이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고 선언하신다(2, 5, 16절). 그리고 은밀하게 의를 행할 때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지막으로 원수에 관한 계명이다. 예수께서는 율법의 가르침을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로 요약하셨다(43절). 전반부는 율법에 등장하는 말이다.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17-18) 하지만 후반부는 율법에 문자적으로 등장하는 규정이 아니다. 율법은 도리어 개인적 원수에 대한 사랑을 가르친다.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출 23:4) 따라서 이는 율법 그 자체를 가리킨다고 하기보다, 당시 사람들의 율법관을 반영한다고 보는 것이 더 ..
보복에 관한 계명도 새롭게 된다. 율법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명령한다(38절). 이 계명을 모세오경에서 찾아보면 총 세 번 등장한다. 그러나 각각의 맥락은 조금씩 다르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곳은 출애굽기다.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 21:23-25) 이는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시켰을 때의 배상에 이어 나오는 규정으로, 그 여인이 그 이상의 해를 입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규정하고 있다. 다음은 레위기다.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짐승을 쳐죽인 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 사람이 만일 그의 이웃에게 상해를..
오늘 본문은 맹세에 관한 율법을 다룬다. 율법은 거짓 맹세를 금하고 맹세한 것을 지키라고 하지만(33절; 레 19:12), 예수께서는 아예 맹세를 하지 말라고 명하신다(34절). 그 이유는 무엇을 걸고 맹세하든 그 대상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34-36절). 여기서 맹세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한 번 살펴 보자.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히 6:16) 즉, 맹세는 자신의 말이나 약속이 신뢰를 얻지 못할 때 더 큰 권위에 의존하여 신뢰를 얻는 행위이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금하셨다. 대신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은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에는 간음에 관한 율법을 "완전하게" 하신다(27절). 간음 금지 역시 십계명에 등장하는 중요한 계명(출 20:14, 신 5:18)으로, 율법의 많은 부분이 성적 문란을 금지하고 징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는 이미 간음죄를 범한 자라고 선포하신다(28절). 행동으로 죄를 드러내지 않더라도 마음 속에 이미 그 욕망을 품은 사람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더욱 무섭게도, 예수께서는 눈이 나를 실족하게 한다면 빼버리는 것이 낫고(29절), 손이 나를 실족하게 한다면 찍어 내버리는 것이 낫다고 선언하신다(30절). 이는 죄를 지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장애인으로 사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서 "지옥"(γέεννα)은 미래에 찾아올 심판의 한 가지 형태로 보인..
지난 본문, 즉 율법을 완성하러 온 예수 그리스도(마 5:17-20)에 관한 본문에 이어, 이제 구체적인 각론이 다루어진다. 앞으로 총 다섯 개의 율법 계명이 하나하나 "...하라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의 패턴으로 인용되고,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는 예수의 사역이 어떠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다루어진다. 오늘 본문은 그 중 첫 번째로 살인에 관한 계명을 다룬다. 율법은 살인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21절). 살인 금지 계명은 십계명의 한 조항으로 들어가 있으며(출 20:13, 신 5:17), 율법의 많은 부분이 사람을 죽였을 경우에 어떻게 치리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예수께서는 그 계명을 더 확장하신다. "형제에게 노하는" 것,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것, "[형제를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