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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큐티다. 연말연시에 이리저리 다녀오느라 바빴다. 다시 페이스를 올려 큐티를 재개하려 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실 때, 어떤 사람들이 성전의 아름다움을 예수께 아뢰었다(5절).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하셨다(6절). 사람들은 그 때와 징조를 다시 여쭈었고(7절), 예수께서는 미혹 받지 않도록 주의하고(8절) 두려워 하지 말라며(9절) 구체적인 예언을 주신다. 장차 나라들 간의 큰 전쟁이 있을 것이고(10절), 많은 자연재해와 하늘의 "징조"들이 일어날 것이다(11절). 그리고 그 전에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박해를 받을 것이나(12절), 그 박해가 증거가 될 것이다(13절). 어떤 말을 해야할지 미리 고민할 것 없이(14절), 그 때..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는 것에 관해 말씀하신다(41절).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인가? "다윗의 시"라는 표제를 달고 있는 시편 110편에서는 그리스도를 "주"(אָדוֹן)라고 부른다(42-43절; 시 110:1). 만약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다면, 어떻게 그의 자손이 될 수 있겠는가(44절)? 즉, 본문의 이야기는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으로 부르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태는 자신의 복음서 서두에서 그것을 못박아 놓고 시작한다(마 1:1). 또한 불과 몇 쪽 전 누가복음 18장에서도 맹인은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부른다(눅 18:38-39). 나는 우리가 두 가지 의미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부를 때..
성전에 계신 예수께 다음으로 시비를 건 것은 사두개인들이었다(27절). 그들은 부활이 없다고 믿었기에(27절) 정교한 패러독스를 만들어 냈다. 율법에 따르면 형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를 취하게 되어 있다(28절; 신 25:5). 그렇다면, 7형제가 있어 첫째가 결혼한 후 자식 없이 죽어 둘째가 그 아내를 취하고(29절), 마찬가지로 그도 아들 없이 죽어 셋째가 아내를 취하고, 이런 식으로 모두가 한 번씩 그 여자와 결혼하고 자식을 두지 못했다면(31-32절), 부활 때 누가 그의 남편이 되겠는가(33절)?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모두가 그 여자의 남편이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부일처의 원칙이 깨지는 것이고, 그 중 하나를 고르자니 그들 모두가 한 번씩 남편이었던 몸이다. 아마 사두개인들은 ..
예수께서는 비유를 하나 말씀하신다(9절).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었다(9절). 그 자신은 타국에 가 있다가 세를 거두기 위해 종들을 보냈는데, 농부들은 그 종들이 오는 족족 때려서 쫓아냈다(10-12절). 그러자 주인은 마침내 아들을 보냈는데(13절) 농부들은 욕심에 눈이 어두워 그를 죽이고 만다(14-15절). 이제 그 주인은 달려와 그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이에게 넘길 것이다(16절). 본문은 그 의미를 바로 풀어준다. 이 비유는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을 가리켜 하신 비유였다(19절). 즉 여기서 주인은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포도원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맡겼는데, 하나님께서 세를 거두러 여러 종들, 즉 예언자들을 보냈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셨다(45절). 그는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하는데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고 일갈하셨다(46절). 그리고 매일 성전에 나오사 가르치셨는데(47절), 종교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백성의 관심이 쏠려 있어서 방도를 찾지 못했다(48절). 오늘 본문은 예수와 종교 권력이 제대로 충돌하는 여러 사건들을 보여준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지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면서 그와 종교 권력간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예수께서 종교의 부패상을 통렬하게 드러내신 사건을 다루고 있다. 다른 복음서에 비해 다소 짧은 기사지만,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인 성전이 종교 지도자들의 부패로 올바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게 고발..
예수께서는 당신의 재림에 관한 말씀(눅 19:11-27)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해 가셨다(28절). 이제 예루살렘 근처의 감람원에 오셨을 때 제자들을 보내사(29절)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어 오게 하셨다(30절). 그리고 누가 묻거든 주가 쓰신다고 답하라고 명하셨다(31절). 말씀하신대로 제자들은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발견했고(32절) 그 임자들의 질문(33절)에 명 받은 대로 답하여(34절) 나귀를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35절). 예수께서는 그 위에 타셨고(35절), 그 가시는 길에 사람들이 겉옷을 깔며 환영했다(36절). 비록 누가복음이 구체적인 인용을 하고 있지 않지만, 본문은 스가랴서의 유명한 예언을 그 배경으로 한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
예수께서는 삭개오의 구원 사건(눅 19:1-10) 이후에 바로 이어 새로운 비유를 주신다. 본문은 그 비유의 목적이 두 가지임을 밝히고 있다(11절). (1)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다. 즉, 이제 예수께서 사역을 마치시고 세상을 떠나실 날이 가까웠다는 말이다. (2) 한편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잘못된 이해이므로 바로 잡을 필요가 있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으려고 먼 나라로 향하면서(12절), 열 명의 종에게 한 므나씩 주면서 장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13절). 그리고 그가 돌아와서 종들을 불러 정산을 한다(15절). 첫째는 한 므나로 열 므나를(16절), 둘째는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18절) 만들었기에 주인이 그들을 칭찬하며 고을을 내주었다..
예수께서는 여리고에 들어오셨다(1절). 사람들이 예수를 보기 위하여 많이 몰려왔고(3절) 그 중에 세리장인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었다(2절). 그는 자신의 작은 키로 인해 예수가 보이지 않자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4절). 예수께서는 그를 보시고 그 집에 유하겠다고 그를 부르셨다(5절). 삭개오는 즐거워하며 영접하였다(6절). 사람들은 수군거렸지만(7절) 삭개오는 자신이 회개하였음을 보였고(8절) 예수께서는 그 또한 구원받았다고 선언하셨다(9-10절). 오늘 본문은 정말 전형적이다! 사람들은 "죄인"을 꺼리고 불편해 하지만, 예수께서는 바로 그 "죄인"을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0절) 하지만 오늘 나는 이 본문을 열심히 뜯어 보며 연구하기보다, 본..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을 말씀하신다(31절). 즉 예수께서 이방인들에게 넘겨질 것이고, 능욕을 당한 후에(32절) 죽으실 것이다(33절). 하지만 사흘 후에 살아나실 것이다(33절). 제자들은 이 말을 깨닫지 못했다(34절). 예수께서는 수난과 부활 예고를 딱 열두 제자에게만 하셨는데(31절), 그들마저도 깨닫지 못했다(34절). 아마 너무 말도 안 되는 말씀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어 예수께서 여리고 근처에 이르셨는데, 한 맹인 거지가(35절)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36-37절)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38절). 사람들은 그를 꾸짖었지만 그는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39절).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 오라고 하셨다(40절). 예..
예수께 어떤 관리가 와서 예수를 선한 선생님이라 부르며 영생을 얻는 길을 물었다(18절). 예수께서는 먼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분이 없다고 답하신다(19절). 이 구절은 예수의 신성을 의심스럽게 만드는 대표적인 구절이다. 어떤 설교자는 예수께서 예수께 잘 보이려는 그의 마음을 아시고 그 위선을 벗겨내려 하신 거라는 식으로 해석하던데, 본문에 없는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은 위험하다. 나는 본문을 굳이 해석하려 하지 않고, 예수께서 스스로 겸손하게 "선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거부하셨다는 것만 관찰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이제 예수께서는 그에게 계명을 가르치신다(20절). 말씀하신 계명은 십계명의 5-9계명에 해당한다. 그러자 그는 어릴 적부터 이것을 다 지켰다고 답한다(21절). 그러자 예수께서는 재산..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첫 번째 이야기는 교만한 자들을 향해 예수께서 베푸신 비유이다(9절).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 서서 기도하고 있었다(10절). 바리새인은 자신이 죄인이 아님에 감사하며(11절) 자신의 종교적 행위를 자랑했다(12절). 반면 세리는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자비를 구했다(13절). 예수께서는 이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14절).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임이 드러난다. 바리새인은 겉으로 보이는 행위로는 흠 잡을 데 없는 신실한 종교인(12절)이었지만, 그 행위는 그에게 의로움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14절). 반면 세리는 다른 이들에게 경멸의 대상이었지만(cf. 11절), 그가 겸비하여 하나님 앞에 ..
이전 본문(눅 17:22-37)에서 마지막 때에 관한 가르침을 베푸신 예수께서는 그들이 기도하면서 낙심하지 않도록 비유를 하나 베푸신다(1절). 여기서 이야기하는 "그들"은 눅 17장에 따르면 "제자들"이다(눅 17:22). 특별히 맥락을 볼 때, 환난의 때를 맞아 고난을 당하게 될 제자들을 대상으로 주시는 말씀인 것 같다. 누가가 이 말씀을 기록한 것 역시, 고난 중에 있는 초대 교회를 위로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예수의 비유는 다음과 같다. 어느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이 있었다(2절). 과부 하나가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 달라고 그를 자주 찾아 왔는데(3절), 그는 처음에는 듣지 않았지만(4절) 이내 그 과부가 귀찮아서 원한을 풀어 주기로 결심한다(5절). 예수..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여쭙자,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며(20절) 공간적으로 규정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대답하신다(21절). 그러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다(21절).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의 나라와는 다른 종류의 것임을 암시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리키는 대상이 물리적인 실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그 자체임을 나타낸다. 또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인자의 날"에 대해 가르치신다(22절). 그 날 많은 이들이 인자가 어디에 있다고 말하겠지만(23절) 인자는 전세계에 드러나는 형태로 오실 것이다(24절). 하지만 그 전에 버림 받으셔야 한다(25절). 이는 초림과 재림을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초림 때 고..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11절)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의 한 마을에 들어가셨다(12절). 그 곳에는 나병환자 열 명이 있었고(12절) 이들은 멀찍이 서서 예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구했다(13절). 예수께서는 가서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라고 하셨는데, 이들이 가던 중에 고침을 받는 기적이 일어난다(14절). 그 중 한 명이 감격하여 돌아와(15절)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한다(16절). 흥미로운 것은 이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열 명 중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는지 의아해하시며(17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사람이 이방인임을 지적하신다(18절). 그리고 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다(19절). 말씀의 배경은 사마리아와 갈릴리의 접경 지대였다...
예수께서는 다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신다(1절). 첫 번째 가르침은 실족에 관한 것이다. 실족하는 것은 일어나게 되어 있는 일이지만, 실족하게 하는 사람은 벌을 받을 것이다(1절). 따라서 누군가를 실족시키느니 차라리 목에 맷돌을 매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2절). 이 말씀은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라는 말씀이라기보다는, 남을 넘어뜨리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하라는 말씀으로 보인다. 3절의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는 이 이야기의 교훈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은 용서에 관한 가르침이다. 누군가 죄를 범하면 경고하고, 그가 회개하면 용서하라(3절). 심지어 하루에 일곱 번 죄를 짓더라도 매번 돌아와 회개한다면 그걸 용서해야 한다(4절). 이 가르침의 앞의 가르침과 짝을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예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자(눅 16:13),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이 비웃었다(14절). 이들은 아마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오늘날도 비슷한 종교 장사꾼들이 있다. 예수께서 친히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건만, 재물을 추구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것이라는 식으로 사기를 치는 자들이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꾸짖으신다. 그들은 사람 앞에서 의로운 척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는 바 그들의 마음은 타락해 있었다(15절). 예수께서 이어 율법에 관한 말씀을 하시는데, 이는 아마 바리새인들이 율법에 집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례 요한 때까지는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성경이 유일한 권위였지만, "그 후부터는..
누가복음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 확실히 청자를 구분한다. 오늘 본문은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다(1절). 먼저 나오는 이야기는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이다. 그는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 것이 들통나(1절) 곧 해직 당할 위기에 처했다(2절). 그는 잔꾀를 부려(3-4절)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 모았다(5절). 그리고 그들의 차용 증서를 조작하여 빚을 줄여 주었다(6-7절). 주인은 이 일을 두고 칭찬하였다(8절). 예수께서는 이어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시고(9절), 작은 것에 충성된 자가 큰 것에도 충성된 법이니(10절)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는 자가 참된 것에 충성할 것이고(11절) 남의 것에 충성하는 자가 더 큰 것에 충성할 것(12절)이라는 가르침을 주신다. 하지만 중요한..
예수께서 베푸신 세 번째 비유는 유명한 '탕자의 비유'이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11절). 둘째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달라고 청했고, 아버지는 그 말대로 들어주었다(12절). 그는 그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허랑방탕하게 살다가(13절) 재산을 다 날려 버렸다(14절). 그는 그 나라에서 일할 곳을 구했는데, 다름이 아니라 돼지를 치는 일이었다(15절). 그는 배가 고픈 나머지 돼지 먹이라도 먹으려 했지만 주는 사람이 없었다(16절). 비참한 상황 가운데, 이 둘째 아들은 아버지 집이 풍족했던 것을 깨닫는다(17절). 그는 집으로 돌아가 죄를 자복하고 품꾼으로라도 써달라고 청하겠다고 결심한다(18-19절). 그가 집으로 돌아오자 그 아버지가 그를 멀리서부터 그를 발견하고 뛰어가 그를 ..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께 나아오자(1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렸다(2절). 예수께서 죄인들과 함께 하시는 것이 마땅찮았던 모양이다. 예수께서는 그들, 즉 예수께서 죄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믿었던 자들에게 세 가지 비유로 답을 주신다(3절). 마지막 비유는 다소 길기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앞의 두 가지 비유를 살펴본다. 첫 번째 비유에서는 백 마리의 양을 가진 사람이 그 중 하나를 잃었을 때의 상황이 등장한다(4절). 그는 99마리는 들에 두더라도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방방곡곡 다닐 것이다. 그리고 찾아내면 기뻐하며(5절) 이웃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열 것이다(6절). 예수께서는 바로 이 비유를 해석해 주신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 즉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의인 99명..
이제 장면이 전환된다.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가는 길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도를 가르치신다(25절). 굳이 수많은 무리가 함께 했음을 언급한 것은, 흔히 하는 해석대로 제자와 무리를 분리해서 보는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참된 제자가 많지 않기에, 참된 제자가 되는 길이 어떠한 것인지를 가르치신 것이다. 먼저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욕망들을 버려야 했다. 예수께서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는 물론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제자가 될 수 있다고 하시면서(26절), 이를 두고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삶으로 다시 표현하신다(27절). 그리고 33절에서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제자가 될 수 있다고까지 하신다. 이는 결국 세상적인 욕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