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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배경은 바리새인의 잔치 자리(눅 14:1)다. 예수께서 잔치에 관한 말씀을 하시자(눅 14:7-14)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가 복되다고 말한다(15절). 아마 "의인들의 부활시"에 받는 갚음(눅 14:14)을 두고 부러운 말투로 한 말이 아닐까 싶다. 예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비유를 들어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설명하신다. 비유의 내용은 이렇다. 어떤 사람이 잔치를 열고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였다(16절). 잔치 시간이 다가오자 초대했던 사람들에게 종을 보내 오라는 말을 전한다(17절). 그런데 그들은 입을 모아 사양하였다(18-20절). 주인은 분노하여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불러 잔치에 참여시킨다(21절). 그리고도 자리가 남자(22절) 아무나 만나는 자들을 전부 잔치에 초..
예수께서 안식일에 어느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셨다(1절). 그 자리에 "수종병", 즉 부종에 걸린 사람이 있었고(2절)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야 하는지를 물으셨다(3절). 그들이 답을 못 하자 예수께서는 그를 고쳐 보내시고(4절) 그들이 안식일에라도 자녀나 가축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는 일을 한다는 점을 지적하셨다(5절). 역시 그들은 유구무언이었다(6절). 이 이야기는 13장의 치유 이야기(눅 13:10-17)와 많이 겹친다. 예수께서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안식일에 치유 행위를 많이 하신 것으로 보인다. 13장 본문에서는 자유롭게 하는 것을 두고 말씀하셨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구하는 것을 가지고 말씀하신다. 즉 자녀나 가축이 우물에 빠졌다면 안식일이라고 하더라도 끌..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시면서 여러 마을에서 가르치셨다(22절).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는 사람의 수를 여쭈었다(23절). 예수께서는 수가 적다고 하시며 "좁은 문"에 비유하신다(24절). 문이 닫히면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갈 수 없다(25절). 설사 주를 직접 보았다 하더라도(26절) 그가 알지 못하는 자라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27-28절). 심지어 이방인들도 합당한 자들이라면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29-30절). 구원 받는 자들(23절),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28절)을 다루는 이 본문의 서두가 "예루살렘"으로 시작하는 것(22절)은 의미심장하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역을 마무리 짓는 장소로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계셨다. 그리고 그 마지막 사역을 통해 하나..
다시 안식일이 되어 예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셨다(10절). 그 때 18년 동안 귀신 들려 병을 앓아 온 여인을 보시고(11절) 치유를 선언하시며(12절) 안수하시자 그 여인이 나았다(13절). 회당장이 이를 보고 안식일에는 병을 고치지 말아야 한다며 분개했고(14절) 예수께서는 가축들에게도 자유를 주는 날인데(15절) 사람을 자유케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반문하신다(16절). 반대자들은 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17절).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예수께서 의도적으로 안식일에 치유 사역을 하시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예수께서는 말씀만으로 고치실 수 있는 분이셨지만 일부러 여인에게 "안수"하셨다(13절). 이로써 논란을 일으켜 당신의 메시지를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하시고자 했던 것 같다. 그 메시지..
어떤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갈릴리 사람들이 제사 중에 살해 당한 사건을 이야기한다(1절). 맥락으로 볼 때 당시 유대에서는 이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벌로 이렇게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생각이 팽배했던 모양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특별히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2절) 누구나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3절). 마찬가지로 무너진 망대에 치어 죽은 자들도 더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니다(4절). 누구나 회개하지 않으면 망할 것이다(5절). 그리고 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할 것이라는 말씀을 부연하기 위해 비유를 주신다(6절). 어떤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3년 동안(7절) 열매를 구했지만 열매를 얻지 못했다(6절). 그는 포도원지기..
7월 11일에 누가복음을 보기 시작했으니 이제 석 달 되었다. 오늘부로 12장이 끝나니 정확히 절반이다. 앞으로 석 달 후에는 누가복음도 끝난다는 이야기다. 복음서를 깊이 들여다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작업이다. 예수의 말씀이 이어진다. 예수께서는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다고 말씀하신다(49절). 이 표현은 세례 요한이 예수를 가리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며, 알곡을 타작하시면서 나온 쭉정이는 불에 태우실 것(눅 3:16-17)이라고 하신 말씀과 유사하다. 따라서 심판을 선포하신다는 의미로 유추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예수께서는 그 불이 아직 붙지 않았다고 하시는데(49절),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 예수께서는 당신이 받을 "세례"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먼저 항상 준비된 자세로 있으라는 가르침을 주신다(35절). 이는 예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기 때문이다(40절). 이를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예수께서는 혼인 집에 간 주인의 비유를 드신다(36절). 주인이 불시에 돌아와서(38절) 종들이 깨어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그 종들에게 주인 대접을 해줄 것이다(37절). 주님께서는 마치 "도둑"처럼 예고 없이 돌아오실 것이다(39절). 베드로는 예수께 이 가르침이 제자들을 향한 것인지 무리를 향한 것인지 묻는다(41절). 예수께서는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를 찾으신다(42절). 그는 다른 종들에게 때에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지혜로운 자이다(42절). 주인이 불시에 이르러 그것을 보면 그에게 모든 소유를..
예수께서는 이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22절). 오늘 본문은 앞서 재물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신 설교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이 동일한 설교가 마태복음 6장에도 나오지만, 다소 맥락이 다르다. 누가는 동일한 설교에 다른 맥락을 부여하여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22절). 이는 생명이 그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23절). 예수께서는 까마귀(25절)와 백합화(27-28절)의 비유를 들어 고민하지 않는 피조물들도 하나님께서 다 먹이고 입히신다고 말씀하신다. 고민한다고 키가 늘어나는가(25절)? 그조차 못하면서 무엇을 염려하는가(26절)?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은 바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구하지 말라는 교훈을 ..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예수께 유산을 나누는 문제를 여쭈었다(13절). 예수께서는 당신이 재판장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며(14절)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셨다(15절).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지난 본문과는 달리 본문은 "그들", 즉 무리에게 이르신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의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달려있지 않다고 하시는데, 이는 즉 소유보다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가르침으로 볼 수 있다. 이 가르침을 조금 더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예수께서는 비유를 하나 드신다. 풍성한 수확을 거둔 부자가(16절) 곡식을 쌓을 곳이 없자(17절) 곳간을 헐고 더 큰 곳간을 짓겠다고 계획한다(18절). 그러면서 영혼에게 재물이 많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고 한다(19절).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그 ..
예수의 말씀을 듣고자 무리 수만 명이 모였다(1절). 그런데 예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1절). "무리"와 "제자들"을 확실히 구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12장 뒷부분에서 베드로 역시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과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을 구분한다(눅 12:41).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가리켜 "내 친구 너희"(4절)라고 부르시며 특별한 애정을 보이신다. 그리고 그들에게만 특별한 가르침을 주신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가르침의 시작은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주의하라는 것이다(1절). 이는 지난 본문과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 감추인 것은 드러나고 숨긴 것은 알려진다(2-3절)는 말씀을 하시는데, 나는 이것이 외식에 관한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즉, 본심을 감추고 겉으로..
예수께서는 어느 바리새인의 식사 초대를 받아 가셨다(37절). 그런데 식사 전에 예수께서 손을 씻지 않으므로 바리새인이 이상하게 여겼다(38절). 이는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장로들의 전통을 따르는 문제였다(마 15:2, 막 7:3-4). 아마 이 바리새인은 랍비라 불리는 예수가 장로들이 정한 규칙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에 의아함을 느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신다. 바리새인들은 겉의 깨끗함은 따지지만 속의 깨끗함은 신경쓰지 않는다(39절). 하나님께서는 속까지 들여다보시는 분이다(40절). 그렇다면 속을 깨끗이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는 것이라 말씀하신다(41절). 즉 "탐욕"과 "악독"을 버리고(39절) 내게 있는 것을 다른 이들..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한 여자가 예수의 어머니를 부러워 하는 말을 던졌다(27절). 예수께서는 담담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더 큰 복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28절). 이 짤막한 말씀은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세상에서는 핏줄이 중요하다. 내가 누구의 자식이고, 누구의 부모인지 그것을 내세우며 자랑한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런 '주어진 것'이 아닌, 스스로의 행실로 평가 받을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켰는가? 당신 부모나 당신 자식이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를 해보라. 예수께서는 이어 무리에게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지만 보여줄 것은 요나의 표적 밖에 없다고 하신다(29절). 이 말씀은 사람들이 표적을 구했다는 눅 11:16을 배경으로 ..
예수께서는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사 말 못하는 사람이 말을 할 수 있게 하셨다(14절). 이 사건을 두고 놀랍게 여긴 사람들이 많았지만(14절), 일부는 예수가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주장했다(15절). 또한 다른 이들은 예수가 하늘로부터 능력을 받았음을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했다(16절). 두 부류 모두 예수의 능력이 하늘에서 왔음을 부정하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예수께서는 이에 대해 간단하게 답하신다. 만약 귀신이 귀신을 쫓아낸다면 스스로 분쟁하는 꼴이니(17절( 바알세불의 왕국은 무너지고야 말 것이다(18절). 또한 예수 외에도 "너희 아들들", 즉 당시 종교인들 중에 귀신을 쫓아내는 자들이 있었는데, 만약 예수의 능력이 바알세불에게서 나왔다면 그들은 누구로부터 능력을 받은 것이겠..
누가복음은 예수께서 기도하셨다는 이야기를 자주 언급한다(눅 6:12; 9:18, 28 등). 오늘 본문도 예수께서 기도하셨다는 말씀으로 시작한다(1절). 예수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어느 제자가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청을 드린다(1절). 예수께서는 '주기도문'을 가르치신다(2-4절). 본문의 '주기도문'은 마태복음 버전(마 6:9-13)보다 다소 짧은데, 그럼에도 두 버전 공히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고(2절) 자신의 필요를 구하는(3-4절)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도에 관한 가르침으로서, 예수께서는 간청하는 벗의 비유를 주신다. 친구가 방문했지만 줄 것이 없었던 어느 사람(6절)이 밤중에 다른 친구를 찾아가 떡을 빌려 달라고 청한다(5절). 그러자 그 친구는 이미 잘 준비를 다 마쳤기 때문에 일어나서 줄 ..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께 질문을 드린다. 누가는 그 이유를 예수를 시험하기 위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25절). 그의 질문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느냐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율법에 기록된 바를 되물으셨고(26절), 율법교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되어 있다고 답한다(27절). 예수께서는 그렇게 행하면 살 수 있다고 답하신다(28절).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영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누가복음에는 이 "영생"이라는 단어가 단 두 번 등장하는데, 오늘 본문과 눅 18:18-30이 그것이다. 두 본문 모두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흔히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을 동일시하는데, 최소한 누가복음은 그렇게 보고 있지 않은 듯 하다. (특히 눅 18장에 따르면..
예수께서 파송하신 70명은 기뻐하며 돌아왔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음에 기뻐하였다(17절). 예수께서는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시며(18절) 귀신을 제어할 권능을 주셨다고 선포하신다(19절). 그러나 기뻐할 것은 축귀의 권능이 아니라 하늘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사실이다(20절). 이 본문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예수의 권능과 사탄의 권능이 부딪치는 상황이다. 예수께서는 그 제자들을 "하늘" 백성으로 부르셨고(20절), 세상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셨다(19절). 그 결과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고(눅 10:9) 귀신을 쫓아내니(17절) 하나님의 나라가 점차 확장되었고, 세력을 잃은 사탄은 추락해 버렸다(18절).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기쁨으로 기도하셨다. 하나..
예수께서는 70명의 사람들을 세우사 둘씩 짝지어 당신이 가시는 길에 앞서 파송하셨다(1절). 그러면서 추수할 것은 많지만 일꾼이 적기에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청하라고 말씀하신다(2절). 이는 이들에게 직접 하신 말씀이라기보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자들에게 (그리고 누가복음의 독자들에게) 하나님께 더 많은 전도자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들이 이리 가운데로 가는 어린 양들과 같다고 비유하시며(3절), 아무런 재산 없이 누구에게도 문안하지 말고(4절) 그저 영접하는 집에서 주는 것을 받으며 머무르라고 하신다(5-7절). 영접하는 동네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치되(8-9절), 영접하지 않는 동네에서는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요한이 예수께 나아와 그들과 함께 하지 않는 어떤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것을 보고 금지시켰다고 보고했다(49절). 예수께서는 그들을 반대하지 않는 자는 위하는 자라고 말씀하시며 금지하지 말라고 하셨다(50절). 이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51절) 예수 일행이 사마리아 마을로 들어가자(52절) 그들이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고(53절) 야고보와 요한은 분개하여 저들을 멸망시키자고 말하지만(54절) 예수께서는 그들을 꾸짖고(55절) 다른 마을로 향하셨다(56절). 이 두 가지 이야기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50절)와 "너희를 반대하는 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다. 첫 이야기에서는 제자 공동체를 반대하지 않지만 그들과 함께 하지도 않는 자가 등장한다(4..
제자들에게 영광을 보여주신 예수께서는 이튿날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신다(37절). 그러자 그를 기다리던 큰 무리 가운데 한 사람(38절)이 자신의 아들이 귀신에 들려 고통받고 있음을 호소한다(39절). 그는 예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고 했으나 제자들은 하지 못했고(40절), 예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시며(41절) 아이에게 들린 귀신을 쫓아주셨다(42절). 사람들은 하나님의 위엄에 놀랐다(43절). 이 시점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수난을 다시 한 번 예고하신다(44절). 제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더 여쭤보지도 못한다(45절). 그러면서 이들은 누가 큰지에 대한 논쟁을 벌인다(46절).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를 하나 데려다가 세우시고(47절)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에게 당신의 소문을 물으신다(18절). 이들은 눅 9:7-8을 받아 세례 요한이라는 소문, 엘리야라는 소문, 선지자라는 소문을 전달한다(19절). 엘리야라는 소문은 아마도 말라기의 예언(말 4:5)을 의식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는 제자들에게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물으셨다(20절). 베드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답을 내놓는다(20절). 이 답을 들으신 예수께서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시고(21절) 수난 예언을 하신다(22절). 이와 같은 구조가 마태복음(마 16:13-28)과 마가복음(막 8:27-9:1)에 동일하게 나온 것으로 보아 복음서 기자들은 모두 예수의 그리스도직이 수난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의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