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os credit
눅 11:27-36 본문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한 여자가 예수의 어머니를 부러워 하는 말을 던졌다(27절). 예수께서는 담담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더 큰 복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28절). 이 짤막한 말씀은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세상에서는 핏줄이 중요하다. 내가 누구의 자식이고, 누구의 부모인지 그것을 내세우며 자랑한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런 '주어진 것'이 아닌, 스스로의 행실로 평가 받을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켰는가? 당신 부모나 당신 자식이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를 해보라.
예수께서는 이어 무리에게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지만 보여줄 것은 요나의 표적 밖에 없다고 하신다(29절). 이 말씀은 사람들이 표적을 구했다는 눅 11:16을 배경으로 한다. 요나는 사흘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기에, 이 말씀은 예수께서 삼일간 묻혀 계실 것을 암시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30절). 그리고 솔로몬의 말을 사모했던 남방 여왕(31절),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32절)이 솔로몬과 요나보다 더 큰 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직접 듣고도 회개하지 않은 이 세대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등불의 비유를 주신다. 등불은 촛대 위에 켜두어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한다(33절). 마찬가지로 사람의 등불은 눈으로, 눈이 성하면 몸이 밝고 눈이 나쁘면 몸도 어둡다(34절). 예수께서는 몸의 빛이 어두운지 살펴보라고 명하시며(35절), 만약 빛이 밝다면 온전히 밝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36절). 다소 난해한 구절이다. 34절을 지렛대 삼아 35절과 36절을 해석하자면, "네 속에 있는 빛"이 밝다는 말은 결국 눈이 성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스스로 돌이켜 보라는 말씀(35절)으로 볼 때, 이는 단순히 신체에 장애가 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의미일까? 본문에서 명확하게 그 뜻을 풀고 있지는 않지만,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막 8:18)라는 말씀에서처럼(cf. 마 13:15, 막 4:12, 요 12:40), 진리를 앞에 두고도 밝히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살펴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은 예수를 앞에 두고도 표적을 구하는 자들이었다(29절; 눅 11:16). 예수는 솔로몬보다, 요나보다 더 큰 이였지만(31-32절) 그들은 알지 못했다.
본문은 오늘 나에게 묻는다. 너는 예수를 누구로 고백하는가? 그리고 그 아는 바대로 행하며 사는가? "등불의 빛"이 내게 거한다면, 나는 그 빛의 혈통을 부러워하는 대신 그 빛이 가르친 대로 살아갈 것이다. 남방 여왕의 사모함,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와 같은 행함이 내게도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만이 길이오니
우린 그 길 따라갑니다
그 날에 우릴 이루실
주는 완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