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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3:10-21 본문
다시 안식일이 되어 예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셨다(10절). 그 때 18년 동안 귀신 들려 병을 앓아 온 여인을 보시고(11절) 치유를 선언하시며(12절) 안수하시자 그 여인이 나았다(13절). 회당장이 이를 보고 안식일에는 병을 고치지 말아야 한다며 분개했고(14절) 예수께서는 가축들에게도 자유를 주는 날인데(15절) 사람을 자유케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반문하신다(16절). 반대자들은 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17절).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예수께서 의도적으로 안식일에 치유 사역을 하시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예수께서는 말씀만으로 고치실 수 있는 분이셨지만 일부러 여인에게 "안수"하셨다(13절). 이로써 논란을 일으켜 당신의 메시지를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하시고자 했던 것 같다. 그 메시지는 안식일은 단순히 일을 쉬는 날(14절)이 아니라 바로 '자유의 날'이라는 것이다(15-16절).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쉬신 것(창 2:1-3)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는 율법에서 규정화되었는데, 흥미롭게도 본문의 회당장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안식일 규정(출 20:8-11)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여 말하고 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8-9) 그렇지만 그 규정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지킨 분은 그가 아니라 주님이셨다.
'일'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꼭 치러야 하는 대가지만, '안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하늘의 것이다. 즉 우리는 일의 의무에서 풀려나 안식을 취하면서 그 나라를 미리 맛보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는 것, 이것이 안식일 규정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사람에게 있어 안식일은 어떤 날이 되어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그 속박을 푸는 것이 안식일의 의미에 더 합당하다고 말씀하신다(16절).
이어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설명하신다(18, 20절).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 한 알 같아 큰 나무가 된다(19절). 또 하나님의 나라는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릴 수 있는 누룩과 같다(21절). 두 비유의 공통점은,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침내 큰 일이 이루어진다는 데에 있다. 겨자씨 한 알도, 누룩도, 그 자체만 놓고 봐서는 그 능력을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결국 겨자씨는 나무가 되고 누룩은 서 말의 가루를 전부 부풀린다.
이 말씀이 여기 편집되어 있는 것은, 누가가 병에 걸린 여인을 낫게 하신 기적을 하나님 나라 사업의 하나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셨다. 그는 그 날도 사탄에 매여 고통 받고 있는 한 영혼을 풀어 주셨다. 예수께서 하시는 일은 일견 겨자씨처럼, 누룩처럼 초라해 보이지만, 마침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게 될 것이다(19절).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 우리가 온전한 안식을 취하게 될 그 곳, 모든 속박에서 풀려나 참 자유를 누리게 될 그 곳, 그리고 내 사모하는 주님을 마주하게 될 그 곳. 예수께서는 그 나라를 위해 인간이 주목할 만한 휘황찬란한 일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병마에 고통 받고 있는 자를 찾아가 그의 결박을 풀어주셨다. 오늘은 이 마을, 내일은 저 마을, 돌아다니며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 맛보여 주셨다. 나도 그 사업에 동참하기를 원한다. 그 나라가 이 땅에 오는 그 날까지, 이 걸음을 멈추지 않으리라.
영원한 시간을 빚으시고
영원한 생명을 놓으신 주
한낱 숨결 같은 세월을 딛고
당신의 오심을 기다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