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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1:37-54

로보스 2018. 10. 2. 10:24

예수께서는 어느 바리새인의 식사 초대를 받아 가셨다(37절). 그런데 식사 전에 예수께서 손을 씻지 않으므로 바리새인이 이상하게 여겼다(38절). 이는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장로들의 전통을 따르는 문제였다(마 15:2, 막 7:3-4). 아마 이 바리새인은 랍비라 불리는 예수가 장로들이 정한 규칙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에 의아함을 느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신다. 바리새인들은 겉의 깨끗함은 따지지만 속의 깨끗함은 신경쓰지 않는다(39절). 하나님께서는 속까지 들여다보시는 분이다(40절). 그렇다면 속을 깨끗이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는 것이라 말씀하신다(41절). 즉 "탐욕"과 "악독"을 버리고(39절) 내게 있는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 속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십일조에 집착하지만 공의와 사랑을 버렸다(42절). 바리새인들은 교만하여 사람들의 인정만 쫓아다닌다(43절).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 본심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행동한다(44절). 결국, 바리새인들의 잘못은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공의"와 "사랑"은 저버린채 율법의 껍데기에만 집착하는 것(율법주의)과, 하나님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한 것(외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까지 듣던 율법교사 하나가 볼멘소리로 율법사도 욕하는 것이냐고 따졌다(45절). 그러자 예수께서는 율법교사들도 비판하신다. 율법교사들은 자신이 지지 않는 짐을 사람들에게 지우며(47절) 지식의 열쇠를 독점하여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52절). 즉 율법교사들은 "지식의 열쇠"인 율법을 자신들이 독점하면서 사람들에게 무거운 규칙을 만들어 지워주었다. 하지만 막상 율법의 정신을 행하지는 못하게 하고, 본인들도 그것을 행하지 않았다.


이는 예수께서 율법교사들을 두고 하신 또 한 가지 말씀 속에 여실히 드러난다. 율법교사들은 선지자들을 기리는 무덤을 꾸민다(47절). 하지만 사실 이 선지자들은 율법교사들의 "조상들"에 의해 죽임 당했다(47-48절). 하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고(49절), 그 "피"는 "이 세대"가 감당할 것이다(50-51절). 율법의 전문가라 하는 자들은 사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몰라보고 죽인 자들이요, 마침내 "이 세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그 클라이맥스를 찍을 것이다.


예수의 말씀을 듣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거세게 달려들어 따져 묻고(53절) 빌미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다(54절). 이 마지막 두 구절은 예수와 종교 기득권층 사이의 갈등이 점차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바리새인과 율법교사의 본성을 폭로하신다. 이들은 당시 사회에서 존경 받는 자들이었고, 종교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 율법의 본질보다 그 껍데기에 집착하는 자들이었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보다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더 중요한 자들이었다. 율법을 올바로 알고 있다면 선지자들을 존중했겠지만, 이들은 귀를 막고 그들을 죽였으며, 급기야 하나님의 아들마저 십자가에 매달았다.


혹시 나는 이들의 길로 가고 있지 않은가 되돌아 본다. 신앙 생활이 그저 형식적인 종교 생활이 되고, 교회 모임이 그저 사람만 신경쓰는 친목 모임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내 안에 하나님의 계명을 향한 사랑이 살아 있는가? 그 본질을 붙잡고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가? 예수를 몰라보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은 그들처럼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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