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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0:41-21:4 본문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는 것에 관해 말씀하신다(41절).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인가? "다윗의 시"라는 표제를 달고 있는 시편 110편에서는 그리스도를 "주"(אָדוֹן)라고 부른다(42-43절; 시 110:1). 만약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다면, 어떻게 그의 자손이 될 수 있겠는가(44절)? 즉, 본문의 이야기는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으로 부르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태는 자신의 복음서 서두에서 그것을 못박아 놓고 시작한다(마 1:1). 또한 불과 몇 쪽 전 누가복음 18장에서도 맹인은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부른다(눅 18:38-39). 나는 우리가 두 가지 의미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부를 때, 그가 다윗보다 온전하다는 의미를 담을 수도 있고 그가 다윗보다 낮다는 의미를 담을 수도 있다. 마태나 맹인은 전자의 의미를 취하여 다윗이 온전하게 이루지 못한 그 통치를 이루실 분으로 부른 것이지만, 본문에서 예수께서 염두에 두고 계신 자들은 후자의 의미를 취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45절)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하신다(46절). 이들은 외식하고 교만한 자들이요, 실상은 과부의 가산을 탐하는 자들이다(46-47절). 예수께서는 이들이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라 말씀하신다(47절). 그리고 바로 이어 과부의 연보 이야기가 이어진다. 부자들이 많은 돈을 연보할 때(1절) 어느 과부는 두 렙돈을 냈다(2절). 예수께서는 이 과부가 다른 누구보다도 많은 헌금을 했다고 칭찬하시며(3절) 생활비를 전부 냈다고 말씀하신다(4절).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는 보통 연보를 장려하는 데에 많이 사용되지만, 본문의 구조를 볼 때 이 이야기는 "과부의 가산"(47절)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헌물"로 꾸민 성전(눅 21:5)이 무너지는 이야기와도 연결되어 있다. 서기관들에 관한 가르침과 이 이야기를 이어서 본다면, 결국 이 과부는 모든 가산을 서기관들에게 빼앗겼기에 드릴 것이 두 렙돈 밖에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과부의 재산을 빼앗아 배를 불린 서기관들은 심판을 받겠지만(47절), 그 모든 생활비를 바친 과부는 큰 칭찬을 받는다(3-4절). 이들의 운명이 대조를 이룬다.
"다윗의 자손" 이야기는 우리가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 고백할 때 무슨 믿음을 가지고 고백하는지를 묻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수많은 호칭을 알고 있다. 예수는 주님이시다. 예수는 구원자이시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런데 그 각각의 고백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서기관들과 과부의 이야기는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할 때 무슨 믿음을 가지고 행하는지를 묻는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면서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면서 동시에 다른 이들을 등쳐 먹을 수 있다(47절). 그저 허울 뿐인 종교 생활은 마지막 때에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 올바른 신앙 고백이 있다면, 그 고백은 삶으로 행함으로 드러나야 한다.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요, 우리의 영원한 왕이시라고 고백한다면, 그 분의 통치에 순복하고 그 분의 계명대로 살아가야 한다. 본문의 서기관들처럼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외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분의 시선만을 의식하며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나에게는 참된 고백이 있는가? 그리고 그 고백에 기반하여 내 삶을 운영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