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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에 가셔서(36절)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을 데리고 따로 기도하러 가셨다(37절). 제자들에게 함께 기도할 것을 명하시고(38절)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신 후(39절), 돌아와 제자들이 자는 모습을 보셨다(40-41절). 그렇게 두 번 더 하신 후에 가자고 하셨다(42-46절). 그 때 유다가 무장한 무리를 이끌고 예수께 와서(47절) 입맞춤으로 그를 배신한다(48-49절). 예수가 체포될 때(50절) 제자 한 명이 저항하자(51절) 예수께서 저지하시고(52-54절) 순순히 끌려가신다(55-56절). 제자들은 다 도망하였다(56절). 오늘 본문은 두 가지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겟세마네의 기도 장면, 그리고 잡히시는 장면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에 가셨지만..
예수께서 설교를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틀 뒤에 십자가에 못박힐 것을 예언하셨다(1-2절). 한편, 종교 지도자들은 모여 예수를 죽일 흉계를 꾸미고 있었다(3-5절). 예수께서 베다니 시몬의 집에 계실 때(6절) 한 여자가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7절).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분개했지만(8-9절) 예수께서는 이것이 당신의 장례를 위한 것이라 말씀하시며 그를 칭찬하셨다(10-13절). 한편, 가룟 유다는 몰래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은 삼십에 팔았다(14-16절). 오늘 본문은 병치 구조를 통해 상황을 긴박하게 전개하고 있다. 예수와 제자들을 비추던 조명이 순식간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비추고, 다시 그 조명이 예수에게로 왔다가 그들에게로 간다. 첫 번째 장면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월절..
예수께서는 또 다른 천국 비유를 주신다(1절). 어떤 임금이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는데(2절) 종들을 보내 손님들을 불렀지만 그들은 오지 않고 도리어 종들을 공격했다(3-6절). 임금은 분노하여 그들을 멸망시키고(7절) 대신 다른 이들을 아무나 잔치로 불렀다(8-10절). 하지만 잔치에 예복을 입지 않고 온 사람은 용납하지 않았다(11-14절). 우선 천국이 왕자의 혼인 잔치로 비유되고 있음에 주목하자. 천국은 좋은 곳이다. 임금이신 하나님께서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춘 곳이다(4절). 따라서 누구나 사모할 만 한데, 오늘 비유에서는 처음 초대받은 자들이 그 잔치를 거부한다. 사실 앞의 비유인 포도원 농부 비유와 평행한 부분을 많이 찾을 수 있다.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인 ..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자 종교 지도자들이 와서 예수의 권위를 묻는다(23절).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의 권위를 되물으셨고(24-25절), 그들은 대답하지 못했다(25-27절).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두 아들의 비유를 베푸시고(28-30절) 이로써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폭로하신다(31-32절). 마태복음에 자주 드러나는 종교 지도자들과 예수 사이의 갈등이 다시 한 번 발생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이 단순히 바리새인들이 아니라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었다(23절). 이들은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께 나아와 '당신이 뭔데 성전에서 가르치느냐' 따지고 들었다(23절). 예수께서는 직접 대답하시는 대신 세례 요한이 참 선지자였는지 사이비 교주였는지를 물으셨다(25절). 그들은 요한을 참 선지자로 믿지 ..
예수께서 무리를 가르치실 때, 그의 가족이 찾아왔다(46절). 어떤 사람이 그 사실을 알리자(47절)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당신의 가족이라고 말씀하셨다(48-50절). 짤막한 오늘 본문은 언뜻 읽기에는 예수의 매정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본문이 나온 맥락을 살펴보자면, 마태는 계속해서 바리새인과 예수 사이의 갈등을 그리고 있고, 예수를 배척하는 자들과 예수를 받아들이는 자들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나는 오늘 본문은 그 맥락에서 살펴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지난 본문에서 예수를 배척하는 자들은 설사 잠시 악한 영에서 놓였다 할지라도 결국 더 악한 영에게 사로잡히게 된다는 무시무시한 경고가 다루어졌었다(마 12:43-45). 오늘 본문은 예수를 받아들이는 자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또 다른 병자를 고쳐주신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22절). 이 기적을 보고 사람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지만(23절), 바리새인들은 이를 귀신의 역사라고 해석했다(24절). 예수께서는 그 논리의 허점을 짚어내시며(25-29절),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반대하는 것은 악한 일임을 강하게 주장하신다(30-37절). 마태복음 12장에 흐르는 중요한 주제는 바리새인과 예수 사이의 갈등이다. 그리고 그 위에, "무리"와 바리새인이 예수의 기적에 대해 보이는 확연히 다른 태도가 드러난다. 오늘 본문에서도 역시 병자를 고쳐주신 예수의 기적(22절)을 두고 무리와 바리새인이 서로 다른 해석을 한다. 무리는 이를 메시아의 증거로 보았지만(23절), 바리새인은 예수가 귀신의 왕과 결탁했다고 주장했다(24절..
예수께서는 권능을 많이 보이신 도시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을 두고 책망하셨다(20절). 고라신과 벳새다(21절)를 두로와 시돈에(22절), 가버나움(23절)을 소돔에(24절) 비교하셨다. 또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감사하는 기도를 올리셨고(25-27절), 쉼이 필요한 자들에게 당신에게 나오라는 말씀을 하셨다(28-30절). 오늘 본문은 크게 책망, 기도, 초청의 세 덩어리로 나누어 본다. 그리고 그 핵심은 중간 덩어리, 즉 예수의 기도가 아닐까 싶다. 예수께서는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과 "어린 아이들"을 대조한다(25절). 어린 아이들만 알게 된 "이것"이 무언지가 조금 불분명하지만, 27절을 참고하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것..
예수께서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은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36절). 제자들에게 "추수할 일꾼들"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예수께서는(37-38절), 열두 제자(2-4절)를 따로 세워 축귀와 신유의 권능을 주셨다(1절). 본문을 이렇게 끊음으로써 마태의 의도가 좀 더 잘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우선 36-38절은 일꾼의 필요성을 요청하고 있고, 바로 이어 열두 제자를 세우시는 장면이 나온다. 즉, 독자는 자연스럽게 "추수할 일꾼들"로서 열두 제자(1절) 혹은 열두 사도(2절)가 세워졌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에게 주어진 원칙(10장 나머지 부분)이 자세히 기록된 것을 볼 때, 이들이 받은 사명은 그 이후 세대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본문은 그 "일꾼들"이 할 일로서 두..
예수께서는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 나가셨다(1절). 40일을 금식한 후(2절)에 마귀가 나타나 먹을 것으로 유혹한다(3절).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물리치신다(4절). 다음으로 마귀는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5절) 뛰어내리라고 유혹한다(6절). 예수께서는 다시 한 번 말씀으로 물리치신다(7절). 마귀는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경배하면 모든 것을 주겠다고 유혹한다(8-9절).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그를 물리치셨고(10절), 마귀는 떠나갔다(11절). 이 익숙한 본문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먼저 이 시험의 의미를 생각해 보길 원한다. 예수께서는 "광야"(1절)에서 "사십 일"(2절)을 금식하시고 시험을 받으셨다. 마귀는 두 번 예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3, 6..
전도서의 마지막이다. 전도자는 다시 한 번 헛됨을 외친다(8절). 전도자는 사람들에게 지혜를 가르쳤고(9절) 지혜의 말을 기록으로 남겼다(10절). 이 지혜의 말은 듣는 이의 마음에 깊이 박힌다(11절). 하지만 공부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12절). 전도자는 자신의 교훈을 마무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고 권면한다(13절). 이는 하나님이 최후의 심판자이시기 때문이다(14절). 오늘 본문은 전도서의 시작 부분과 잘 대응된다. 전도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외치면서 자신의 교훈을 시작했다(전 1:2). 마무리 역시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로 끝난다(8절). 또한 시작 부분에서 전도자가 소개되었던 것처럼(전 1:1) 마무리 부분에서도 전도자가 소개..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먼저 지혜를 예찬한다(1절). 그리고 왕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고 권한다(2-5a절). 지혜자는 때와 판단을 잘 분별하여서 화를 피할 수 있다(5b-6절). 일반적으로 사람은 장래 일을 알 수 없고(7절), 당면한 위기를 피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8절). 오늘 본문도 얼핏 보면 온갖 관련 없는 경구들을 다 뒤섞어 만든 잡탕찌개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혜에 관한 이야기가 앞뒤로 나오는 것(1, 5절)을 볼 때, 이것을 열쇠로 삼아 본문의 일관성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본문이 왕 앞에서 지혜 있는 사람이 행동할 강령을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도자는 반복해서 왕에게 순종하고 그를 노하게 하지 말라고 권한다(2-3절). 이는 왕이 권위 있는 자로서 마음대..
하나님이 하신 일은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다(13절). 오직 하나님만이 미래를 아시기에, 형통을 즐거워하고 곤고 가운데 반성하는 것이 옳다(14절). 항상 의인이 성공하고 악인이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15절). 사람은 지혜와 공의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더라도 망하고(16절), 지혜와 공의를 완전히 무시해도 망한다(17절). 그저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사는 것이 삶의 지혜다(18절).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인간의 유한함에 초점이 맞춰 있다.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항할 수 없고(13절), 하나님은 다 아시는 미래도 알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다(14절). 따라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하루하루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옳다. 만약 오늘이 형통하다면 그에 감사하며 기뻐할 것이요, 오늘이 곤고하다면 혹 ..
이제 전도자는 공의와 재주의 두 가지 측면에서 인간사를 살펴보고 다시 한 번 헛됨을 깨닫는다. 세상의 권세자들은 약자들을 학대하나, 약자들은 위로를 받지 못한다(1절). 그래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고(2절), 죽는 것보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3절). 재주가 많은 사람은 이웃의 시기를 받고(4절), 재주가 없는 사람은 혼자 고생하고 만다(5절). 따라서 재주가 없는 편이 차라리 낫다(6절). 오늘 본문은 다분히 역설적이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고(2절), 죽는 것보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은가(3절)? 그렇다면 본문은 자살을 조장하고 있는가? 그리고 재주와 지혜는 정녕 없는 것이 나은가(6절)? 이는 잠언의 가르침과 상충되지 않는가? 이러한 수사법들은 저자의 진의를 표현한다기보다 본래 하려..
바울의 권면은 이어진다. 이번에는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는 순종하고(1절) 다른 이들과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2절). 아마 당시 그레데 교회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종종 다툼을 일으켰던 것이 아닐까 싶다. 특별히 이들은 자신들의 불평을 교회의 이름으로 정당화하지 않았을까. 바울은 그들에게 단호하게 말할 것을 주문한다. 바울의 권면은 조건부가 아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아무도" 비방하지 말고,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야 한다(2절).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2장에서 바울은 반복해서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연결된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설사 나의 유익과 배치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와 하나님을 생..
오늘 본문은 종들을 향한 권고이다. 바울은 두 가지를 권면한다. 상전을 거스르지 말고 기쁘게 할 것(9절)과 신실하게 일하는 것(10절)이다. 그리고 그 근거로서 동일한 것을 제시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하기 위함이다(10절). 노예제가 폐지된 현대 사회에서 이 본문은 사회에 존재하는 위계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보다 사회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대할 때, 그의 권위 아래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않는 것이 옳다(9절). 일하는 자세 역시 "모든 참된 신실성"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10절). 바울은 노예제를 뒤집어 엎으라고 명하는 대신, 그 권위에 순종하여 복음 전파에 기여하라고 권한다. 이는 디모데전서의 입장과 같..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결단을 촉구하고(4:12-14), 에스더는 3일 금식 후 규례를 어기고 왕 앞에 나아가겠다고 약속한 후(4:15-17) 그 말대로 왕에게 나아간다(5:1). 왕은 에스더를 사랑스럽게 보아 무슨 청이든 들어주겠다고 약속한다(5:2-3). 에스더는 왕과 하만을 잔치에 초대하였고(5:4-5), 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소원을 묻는 왕에게(5:6) 다음 날 잔치에서 알리겠다고 답한다(5:7-8). 하만은 이 특별한 초청에 고무되어(5:10-12) 기고만장하여 모르드개를 죽일 계략을 세운다(5:9, 13-14). 에스더의 행동은 "규례를 어기"는 것이었다(4:16). 그리고 에스더가 행동하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은 어떻게든 유다인을 구원하셨을 것이다(4:14). 하지만 에스더는 쓰임 받는 쪽을 ..
왕후 후보로 오른 처녀들은 몸을 정결하게 하고(12절) 원하는 대로 치장한 후(13절) 왕 앞에 나아갔다. 이는 단 한 번의 기회였다(14절). 에스더는 정해진 치장 외에는 하지 않았지만 사랑스러웠고(15절), 왕도 그를 마음에 들어 하여 왕후로 삼았다(16-17절). 전국에 "에스더를 위한 잔치"가 열렸다(18절).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에스더가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였"지만(15절) 왕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는 다른 처녀들과의 대조를 통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12-13절). 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의 노력으로 아무리 꾸며봐야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사람을 당해낼 수 없다. 에스더는 ..
지난 본문에서 화평을 권유한 야고보는 다툼의 원인으로 정욕을 지목한다(1-3절).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다(4절). 성령은 이를 질투하신다(5절).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므로(6절) 하나님께 복종하고(7절) 그를 가까이 하며(8절) 주 앞에서 겸손히 행해야 한다(9-10절). 또한 야고보는 서로 비방하지 말 것을 다른 각도에서 권면한다(11절). 다른 이를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을 심판자로 인정하지 않는 행위이다(11-12절).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심판을 따를 뿐이다. 예수께서도 비판하지 말라 하셨고(마 7:1-2) 사도 바울도 야고보와 동일한 입장에서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고 권면한다(롬 14:4). 마지막으로 야고보는 우리가 장래 일을 알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뜻..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를 구체적으로 지시한다. 아내-남편 관계(18-19절), 자녀-부모 관계(20-21절), 종-상전 관계(22-25, 1절)에 대해 고루 권면이 나오고, 기도에 관한 권면(2-4절)과 신앙인이 아닌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에 대한 권면(5-6절)까지 다뤄진다. 전반부의 아내-남편, 자녀-부모, 종-상전 관계는 흥미로운 대칭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내(18절), 자녀(20절), 종(22절)은 모두 남편, 부모, 상전에게 "순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순종의 근거는 모두 "주"에게로 소급된다. 마찬가지로 남편(19절), 부모(21절), 상전(1절)은 아내, 자녀, 종을 괴롭히면 안 된다. 바울은 여기서 사회에 존재하는 위계 질서를 인정하는 동시에,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학대하..
하나님께서 승리를 약속하신 날, 이스라엘은 군사를 매복해 둔 채(29절) 베냐민 앞에서 싸우는 척 하다가 거짓으로 패주한다(30-32절). 베냐민은 거기에 말려들었고, 이스라엘은 그 때를 놓치지 않고 급습한다(33-37절). 방심한 베냐민은 기브아가 점령된 후에야 깨닫고(38-42절) 크게 패배한다(43-48절). (날샘이 애매한 곳에서 본문을 끊어놔서 내일 본문까지 한 번에 묵상한다.) 오늘 본문은 자칫 전투 전략에 관한 본문으로 읽을 수 있다. 어떻게 병력을 매복시켰고 어떻게 적군을 이끌어 냈으며 어떻게 급습을 했는지 상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문은 단순한 전투 기록과는 다르다. 바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치시매"(35절)라는 표현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승리는 정교한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