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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2:22-3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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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2:22-37

로보스 2016. 9. 6. 22:28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또 다른 병자를 고쳐주신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22절). 이 기적을 보고 사람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지만(23절), 바리새인들은 이를 귀신의 역사라고 해석했다(24절). 예수께서는 그 논리의 허점을 짚어내시며(25-29절),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반대하는 것은 악한 일임을 강하게 주장하신다(30-37절).


마태복음 12장에 흐르는 중요한 주제는 바리새인과 예수 사이의 갈등이다. 그리고 그 위에, "무리"와 바리새인이 예수의 기적에 대해 보이는 확연히 다른 태도가 드러난다. 오늘 본문에서도 역시 병자를 고쳐주신 예수의 기적(22절)을 두고 무리와 바리새인이 서로 다른 해석을 한다. 무리는 이를 메시아의 증거로 보았지만(23절), 바리새인은 예수가 귀신의 왕과 결탁했다고 주장했다(24절).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을 살펴보자. 먼저, 예수는 귀신의 왕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모순임을 지적하셨다(25-29절). 여기서 가정되고 있는 것은 귀신이 인간의 몸에 사는 것이 귀신에게 이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귀신의 복리(?)를 위해 존재하는 귀신의 왕이 귀신을 쫓아내겠는가(26절)? 또한, 예수 외에도 귀신을 쫓아내는 많은 사람들(심지어 바리새인 중 일부까지!)이 있었는데, 바리새인의 논리대로라면 이들의 역사 역시 귀신의 역사가 되어버린다(27절).


이 다음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은 의미심장하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다(28절)! 이에 대한 부연이 29절에 나온다. 나는 여기서 "강한 자"는 바알세불을, "세간"은 귀신 나부랭이를 가리킨다고 본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다는 것은, 이미 귀신의 왕을 꼼짝 못하게 결박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오심으로 귀신의 왕이 결박되었기에,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한 것이다. (여기서 "천국 βασιλείας τῶν οὐρανῶν"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가 사용되고 있음을 주목하자. 어쩌면 마태는 두 단어를 조금 다른 의미로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역사가 성령의 역사임을 밝히신 후(28절), 이를 반대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설명하신다(30-37절). 우선 예수에 대한 태도는 둘 중 하나이다. 그를 따르든지, 그를 반대하든지(30절). "무리"는 따르는 자들이었지만, 바리새인들은 반대하는 자들이었다. 예수는 그들에게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31-32절). (여기서 예수는 "인자"를 "사람"의 하나로 언급한다.)


끝으로 섬뜩한 경고가 따라붙는다. 나무가 좋다는 것은 그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듯(33절), 사람이 선하다면 선한 말이 나올 것이다(35절).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성령을 모독하며 악한 말을 일삼기에 그들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34절). 어떤 말을 하든 심판 날에 그 모든 말에 대해 심문을 받을 것인데(36절), 그 날 그들의 악한 말 역시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37절).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귀신의 왕이 결박되었다는 복된 소식을 생각해 본다. 이제 남은 것은 세간을 탈취하는 것, 즉 귀신의 왕이 다스리던 공간에 하나님의 나라가 침투하는 것 뿐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이 과정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일어날 것인데, 그 때 우리는 어느 편에 설 지 결단해야 한다. 나는 예수를 따르며 성령에 순종하겠는가, 아니면 예수를 반대하며 성령을 모독하겠는가? 대답은 쉬울 수 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건가

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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