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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역시 사회 정의와 절기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절기법 본문과 그 앞까지의 사회 정의 본문이 정확하게 나누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으로부터, 사회 정의와 절기의 상관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원한다. 우선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정의는 거짓을 멀리하는 것이요(1절), 다수의 뜻을 맹신하지 않는 것이요(2절),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그가 옳다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3, 6절). 정의는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보호하는 것이요(7절), 그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는 뇌물을 받지 않는 것이다(8절). 그런데 이 "정의" 본문에서 조금 생뚱맞게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등장한다. 원수가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다면 그걸 돕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내려주신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다시금 되새기는 데서 시작한다(2절).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하셨으니 이제 너희는 이 계명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셈이다. 하나님은 당신 외에는 그 무엇도 섬기지 말라고 엄하게 말씀하신다(3-5절). 하나님 외의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고(5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6절).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하나님은 그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고 하신다(7절). "망령되게" 부르는 것이 뭘까? 성경에서 같은 단어(לַשָּׁ֑וְא)가 사용된 가장 비슷한 곳은 시 139:20이..
하나님께 언약 계시를 받은 모세는 산을 내려와 백성에게 그 말씀을 전달한다(7절). 백성은 그 언약을 받아들이기로 결단하고(8절), 이를 다시 하나님께 전달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친히 강림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11절). 이는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심을 믿게 하려 하심이다(9절).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백성이 준비해야 하는 것은 "성결"이었다(10절). 성결 의식은 옷을 빠는 것(10, 14절)과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15절)으로 나타났고,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자리에 가까이 하지 않는 것 또한 중요했다(12-13절). 이 모든 것은 순수한 거룩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임재를 본 이사야는 망하게..
오늘 본문은 지난 본문의 1-2절, 즉 하나님께서 "처음 난 모든 것"을 구별하여 드리라고 하신 말씀에 대한 모세의 설명에 해당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면(11절), 인간과 가축의 모든 첫째 자식을 하나님께 바쳐야 했다(12절). 사람이나 나귀는 모두 어린 양으로 대속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려면 그 자체를 죽여야 했다(13절). 그 의미는 애굽에서 빠져나올 때 애굽에 임한 재앙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처음 난 모든 것들을 죽이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처음 난 모든 것들 역시 "죽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바치는 대신 대속하는 형태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었다(14-15절). 모세는 앞서(출 13:9)와 동일한 표현으로 이 규정을 마치는데(16절),..
이번에는 '우박 재앙' 차례다. 하나님은 다시 모세에게 명하사 바로에게 나아가게 하셨다. 이번 기사에서 아론이 사라졌음에 주목하자. 아론의 중요성은 점차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모세의 권위를 강조하려는 출애굽기 기자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전달시키신 명령은 동일하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13절) 하나님은 애굽을 그대로 멸망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분이었지만(15절) 애굽을 완전히 멸망시키시는 대신 당신의 능력을 보이실 정도만 일하실 것이다(14, 16절). 이 재앙은 교만함으로 히브리 백성을 속박하는 애굽 왕 때문에 임하는 것이다(17-18절). 흥미롭게도 하나님은 재앙에 덧붙여 피할 길을 알려주신다(19절). 이는 애굽인(20-21절)이라도 아예 ..
모세는 자신을 쓰려 하시는 하나님께 그 분에 대해 여쭌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어떤 신인가?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13절) 그러자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라고 스스로 소개하신다(14절). 사람이 만든 신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만이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다. 이어 하나님은 그 "스스로 있는 자"가 어떻게 인간들과 관계를 맺으셨는지 설명하신다. 하나님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다. 이와 같은 이름은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칭호이다(15절). (동시에 하나님은 스스로 "여호와(יהוה)"라고 부르시는데, 이는 "스스로 있는 자(אהיה אשר אהיה)"라는 표현을 축약하여 부르는 이름이 아닐까 싶다.) ..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사도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자"(1절)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로마 교회 안에서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두고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채소만 먹는 자들과 모든 것을 먹는 자들 사이의 다툼이 있었고(2절), 안식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자들과 모든 날을 동일하게 보는 자들 사이의 다툼이 있었다(5절). 여기서 바울의 해결책은 무엇이었는가? 바울은 서로 무시하거나 비판하지 말 것을 권면한다. 이는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있기 때문이다(3-4절). 하나님 앞에 서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행동이 어떻든 다 주를 위하여 하는 것이다.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는 것이고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않는 것이다(6절). 따라서 우리는 판단할 수 없다. 각 사람은 하나님..
결국 밀려서 로마서 13장 전체를 묵상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네. 그 동안의 맥락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자면,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방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거룩한 산 제물"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롬 12:1)? 12장에서는 교회 내에서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설명하였고, 이어 "원수"를 대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어쩌면 바울은 "박해하는 자"(롬 12:14), "원수"(롬 12:20)를 언급하면서 "위에 있는 권세들"(1절)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로마 제국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로마 제국에 대하여 "복종하라"고 권면하고 있다(1절). 이는 하나님의 통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1절..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한 산 제물"로 살아가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 바울은, 이제 원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세상은 선을 선으로, 악을 악으로 갚으라고 가르치지만 바울은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권면하며(17절), 또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권면한다(18절).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라는 것인가? 원수가 생겼을 때 원수를 직접 갚지 말고(19절) 그 원수를 사랑으로 품으라(20절). 바울은 이를 명쾌한 한 마디로 정리한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21절) 바울의 마지막 한 마디가 심금을 울린다. 저 말을 뒤집어 보면 원수를 직접 갚는 것,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악에게 지"는 ..
바울은 "거룩한 백성"이 살아가야 하는 방법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9a절, NIV). 이 문장이 오늘 본문을 관통할 수 있는 핵심 문장으로 보인다. 즉, 바울은 거짓이 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첫 번째로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고 권면한다(9b절). 이 구절은 주의를 요하는데, '악'과 '선'을 단순히 법적인 개념으로 해석해 버리면 뒷부분 본문과 어울리지 않게 된다. 나는 여기서 '악'과 '선'이 결국 사랑의 실천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선'이요, 사랑을 저버리는 것이 '악'이다. 이어지는 본문에서 바울은 언뜻 보기에 서로 다른 주제들을 교차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 모두를 관통하는 ..
아아 로마서의 진수! 내 생일에 이런 뜻깊은 말씀을 묵상하게 되어 너무도 기쁘다. 잠시 지금까지의 맥락을 살펴보자. 7장에서 죄에 끌리는 연약한 육신을 고백한 바울은, 8장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칭의된 자임을 선포한다(롬 8:1-4). 육신은 연약하여 하나님을 따를 수 없지만, 영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을 따를 수 있다(롬 8:5-11). 따라서 더 이상 육신을 따르지 말고 영을 따르라(롬 8:12-17). 고난 중에 있더라도 장차 받을 영광을 기대하며 참고(롬 8:18-25),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성령을 기억하며 참으라(롬 8:26-27).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부르셨다(롬 8:28-30).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31절)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시라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무슨 말을 하겠는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 속에 메아리친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다. 나는 해방되었다. 내겐 결코 정죄함이 없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다스린다. 율법의 요구는 이루어졌다. 나 십자가 대할 때에그 일이 고마와..
오늘 본문은 어제 본문의 부연 설명을 담당한다. 어제 본문의 주제문은 1-2절로, 칭의를 받은 자들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은혜에 들어가 영광 속에서 즐거움을 누릴 것을 선포한다. 동일한 표현들이 오늘 본문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우선 본문 7-8절은 5-6절에서 이야기하는 바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드러났다는 것을 보강한다. 남을 위하여 죽는 것은 쉽지 않다. 설사 의인이나 선인을 위하여 죽는 것이라 해도 그렇다(7절).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위하여 죽으셨고,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되었다(8절). 하나님의 사랑은 다른 무엇보다 십자가를 통해 가장 확실하게 증명된다. 예수의 죽으심 덕분에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그 결과 심판을 면하게 되었다(9절). 이제..
본문은 칭의의 결과에 대해서 설명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이다(1절). 그렇다면 우리에게 무엇이 주어지는가?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1절). 또한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게 되었다(2절). 이 모든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1절).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 순간,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본래 원수였던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평이 선포된다(롬 5:10, 골 1:21-22). 저주에 빠져있던 우리가 은혜로 옮겨지고, 천박한 우리가 영광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바울은 우리가 받은 축복이 세상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한다.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게 된다..
본문은 편지의 인삿말(1-2절)과 본론의 서두(3-5절)로 이루어져 있다. 인삿말에서 바울은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히고, 수신자 디모데에게 축복한다. 본문의 후반부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로 보인다. 첫 번째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품은 마음이다. 그는 "쉬지 않고" 디모데를 생각한다고 말한다(3절). 이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청결한 양심"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고 있다. (NIV로 보면 조금 더 본문의 구조가 명확하게 보인다. "청결한 양심으로"라는 구는 "섬겨 오는"이 아니라 "감사하고"에 묶이는 부사구고, 그 양심을 부연하는 것이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이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의 눈물을 기억하며 그를 보고 싶어한다(4절). 4절만 보면 마치 눈물을 보는 것이 바울에게 ..
이 글은 동성애 논란에 엮인 글임. 나는 동성애자들이 교회 내에서 당하고 있는 고난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바이며, 현대 교회가 때론 성경을 왜곡하여 동성애를 핍박해왔다는 데에 동의한다. 하지만 과연 이 강연에서 이야기하는 성경 해석이 정녕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앞으로 제기할 의문은 철저히 성경해석학 및 조직신학의 범위 내에 있는 질문일 뿐이며, 동성애자들에 대한 공격/박해와는 별개의 문제임을 분명히 한다. 주어진 텍스트를 해석하는 작업은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다. 특히 성경과 같이 오래 전에 쓰여져서 현대의 시각에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텍스트는 더욱 그렇다. 이에 관하여 나는 복음주의자로서 성경의 영성을 무시하는 자유주의에도 반대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성경에 대한 문자적 ..
내 입장과는 별개로, 생각해 볼 만한 좋은 강연인 것 같아서 여기 소개한다. 아래의 한글 요약은 내가 한 것이며, 인용하는 성경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하였다. 이에 대한 내 코멘트는 별도의 글로 달도록 하겠다. 1. 전통적인 성경 해석에 따르면 동성애자들은 문제 있는 사람들이고, 죄를 범한 자들이며,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해석에 기반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이 동성애자들을 억압하고 박해한다. (최소한 심정적으로 이질감을 갖는다.) 2. 하지만 전통적인 성경 해석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2-1. 마태복음 7장(산상수훈 일부)에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은혜로 충만했던 수련회가 끝나고, 아직도 박희원 목사님의 사자후가 머릿속에 쟁쟁한 상태에서, 졸업을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책, 을 손에 잡았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해서” 읽는 것은 참 오랜만의 일이다. 그리운 제자반의 내음을 알씬 느끼며 책을 펼쳤다. 저자인 오스 기니스는 특유의 박식함으로 “소명”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솜씨 좋게 풀어놓는다. 그 중심에는 “소명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다.”라는 대명제가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이들이 소명을 나 자신의 의지, 나 자신의 계획, 나 자신의 꿈과 혼동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명의 주체가 하나님 그 분이라는 것이다. 기니스는 이 당연한, 그러나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연해지지 않은 진리를 몇 개의 장을 할애하여 설명한다. 그렇다면 ..
이 애 이 애 걱정 마라 나도 같이 쓸어주마 나 위해 쓸자는 그 방 내가 쓸어 너를 주고 닦다가 닳아질 네 맘 내 닦아주마 쓸지 닦지 하던 마음 그것조차 맘뿐이고 님이 손수 쓸으시고 나까지도 앉으라시니 내 자랑이라곤 없소이다 참 없소이다 함석헌 선생의 시 의 일부. 김기석 목사님의 를 읽고 있다. 책장을 넘기다 위 시를 마주하게 되었다. 쿵,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귀하디 귀한 님을 맞이하려고 쓸고 닦고 하지만, 채비를 채 차리기도 전에 님이 오셨다. 준비 안 된 어수선한 광경을 보시며 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친히 비를 드신다. 난 곁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님은 청소를 마치시고,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시며 내게 앉으라고 권하신다. 부끄럽다. ..
난 주러 왔을 뿐인데 오히려 내가 받고 갑니다 눈물 닦아주러 왔을 뿐인데 내 눈물만 흘리고 갑니다 씻어주러 왔을 뿐인데 오히려 내가 씻겨졌습니다 고쳐주러 왔을 뿐인데 오히려 내가 치료되어 갑니다 전하러 왔는데 이미 이곳에 계신 예수를 보고 갑니다 꿈을 가지고 와 꿈을 보고 돌아갑니다 난 이렇게 많이 받았는데 다만 다함으로 주님을 사랑하지 못했죠 사랑하러 왔는데 더 큰 사랑을 받고 돌아갑니다 죽은 영혼 살리러 와 내가 살아서 갑니다 난 이렇게 많이 받았는데 더 주를 사랑하지 못하니 미안합니다 유은성 새 앨범의 타이틀 곡. 이번 여름 연인팀과 함께 하면서 느낀 점들이 잘 녹아 담긴 곡이다. 특히 "전하러 왔는데 이미 이곳에 계신 예수를 보고 갑니다" 가사를 들으면서 눈물이 왈칵 났다. 그래, 그 땅에는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