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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23:1-19 본문
오늘 본문 역시 사회 정의와 절기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절기법 본문과 그 앞까지의 사회 정의 본문이 정확하게 나누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으로부터, 사회 정의와 절기의 상관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원한다.
우선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정의는 거짓을 멀리하는 것이요(1절), 다수의 뜻을 맹신하지 않는 것이요(2절),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그가 옳다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3, 6절). 정의는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보호하는 것이요(7절), 그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는 뇌물을 받지 않는 것이다(8절).
그런데 이 "정의" 본문에서 조금 생뚱맞게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등장한다. 원수가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다면 그걸 돕는 것이 마땅하다(4-5절).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정의의 기본은 무슨 상황 가운데서도 '옳은 것'을 따르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판단이 흐려질 수 있는 경우를 몇 가지 열거하신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옳은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내가 어떤 이에게 원한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옳은 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의를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어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시고(9절), 자연스럽게 안식년/안식일 개념으로 넘어가신다. 7년에 한 해는 땅을 묵혀두고(10-11절), 7일에 하루는 쉬어야 한다(12절). 이는 약자를 보호하는 측면이 크다. 하나님의 관심은 "네 백성의 가난한 자", "들짐승", "네 소와 나귀",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11-12절).
이 모든 사회 정의는 우상숭배 금지령과 마찬가지 수준의 엄격함을 요구했다(13절). 또한 안식년/안식일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절기(14절)와 대등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는 무교일, 즉 유월절(15절), 맥추절(16절), 수장절(16절)로서, 그 때는 온 백성이 하나님께 "보이는" 때였다(17절). 하나님을 섬기는 것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되었다(18-19절). 19절의 '염소 새끼' 본문은 이방 제의를 따라하지 말라는 의미로 보인다. (그런데 그게 "생명의 존엄성을 경멸하는 매우 야만적인 행위"일까? 날샘 필자는 크림 소스로 요리한 송아지 스테이크는 안 드시려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 율법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의'를 쫓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붙잡을 수 있다. 세상은 성공을 위해 남을 짓밟으라고, 이방 제의를 따라 이익을 추구하라고 말한다. 그런 메시지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올바른 방법으로 예배 드리며 이웃을 섬겨야 한다. 심지어 원수까지라도 말이다. 다시금, 나 자신을 다잡고 종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을 따르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