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고통 (21)
Lovos credit
마지막 외침이다. 예언자는 "제사장들", "제단에 수종드는 자들",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을 향해 외친다(13절). 그들은 굵은 베 옷을 입고 슬피 울어야 한다. 이는 더 이상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13절). 그리고 이들은 사람들을 성전으로 모아 함께 하나님께 외쳐야 한다(14절). 본문은 이어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음을 선포한다(15절). 이 날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15절), 먹을 것이 끊어지고 성전의 기쁨마저 사라지는 날이다(16절). 본문은 17-18절을 통해 그림 언어로 이 날의 비참함을 묘사한다. 곡식도 시들고(17절) 가축도 말라가는 때(18절)이다. 이제 예언자는 하나님께 부르짖는다(19절). 그는 하나님께 이 날의 참혹함을 탄원한다(19-20절). 본문이 보여..
오늘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외침을 살펴본다. 두 번째 외침은 "취하는 자들"과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을 향한 외침이다(5절). 이들은 울어야 하는데, 더 이상 술을 마실 수 없기 때문이다(5절). 강한 민족이 하나님의 땅에 임하여(6절)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다 도말해 버렸다(7절). 이제 그들은 극심한 슬픔에 잠길 것이다(8절). 제사조차 그치고(9절), 모든 즐거움이 사라져 버렸다(10절). 세 번째 외침은 "농부들"과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을 향한 것인데(11절), 밭의 소산이 없으므로 애통해 해야 한다고 외친다(11절). "밀과 보리"(11절) 뿐 아니라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대추나무, 사과나무 등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어 버렸다(12절). 시들었다는 표현으로 볼 때 이는..
어떤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갈릴리 사람들이 제사 중에 살해 당한 사건을 이야기한다(1절). 맥락으로 볼 때 당시 유대에서는 이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벌로 이렇게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생각이 팽배했던 모양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특별히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2절) 누구나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3절). 마찬가지로 무너진 망대에 치어 죽은 자들도 더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니다(4절). 누구나 회개하지 않으면 망할 것이다(5절). 그리고 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할 것이라는 말씀을 부연하기 위해 비유를 주신다(6절). 어떤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3년 동안(7절) 열매를 구했지만 열매를 얻지 못했다(6절). 그는 포도원지기..
오늘 본문은 두 가지 사건을 다루고 있다. 첫 번째 사건은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사건(1절)으로, 어느 백부장이 자신이 사랑하는 종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께 유대 장로들을 보냈다(2-3절). 이들은 이 백부장이 유대인들을 사랑하고 회당까지 지어줄 정도의 사람이므로 도와달라고 간청했다(4-5절). 그런데 예수께서 가시는 길에 백부장은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보내 오실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6절). 그는 말씀만 하시면 종이 나을 것이라 말하며(7절) 예수의 주권을 인정한다(8절). 예수께서는 그의 믿음을 칭찬하셨고(9절) 그 종은 깨끗이 나았다(10절). 다음 사건은 나인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11절). 예수께서 성문 근처에 이르시자 어느 시신을 메고 나오는 행렬을 마주치셨다(12절). 그 시신은 과부 어머니..
예수께서는 산에 올라 밤새도록 기도하신 후에(12절) 제자들 중 열둘을 택하여 사도로 칭하셨다(13절). 본문은 그들의 이름을 수록한다(14-16절). 그리고 예수께서 평지에 내려오시자 많은 무리가 예수께로 모였고(17, 19절) 예수께서는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다(17-18절). 그리고 그들에게 설교를 시작하셨다(20-26절). 본문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장소의 전환이다. 예수께서는 산에서 기도하시고 사도들을 세우셨다(12-16절). 그리고 평지로 내려와 가르치고 치유하는 사역을 행하셨다(17-19절). 이는 산에 올라 율법을 받고 평지로 내려온 모세를 연상하게 한다. 따라서 "산"은 예수께서 하나님을 만나시는 곳이었고, "평지"는 그 예수께서 사역하시는 장소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도..
시어머니를 붙들고 떠나지 않는 룻에게, 나오미는 동서 오르바처럼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면한다(15절). 그러자 룻은 그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끝까지 나오미를 따르게 해달라고 간곡하게 청한다(16-17절). 이 부분에서 흥미로운 문학적 장치가 눈에 띈다. 나오미는 오르바가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 돌아갔다고 말하는데(15절), 룻은 그 말을 받아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16절). 그리고 바로 이어 "여호와"를 언급함으로(17절) 그가 여호와 신앙에 들어왔음을 표현한다. 나오미는 룻의 굳은 결심을 보고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18절). 그들은 함께 원래 엘리멜렉이 살던 고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는데(22절), 그러자 베들레헴 사람들..
오늘부터 룻기를 묵상할까 한다. 룻기는 예전 교회에서 리더를 할 때부터 조원들과 성경 묵상을 실습하는 용도로 자주 묵상했던 성경인데, 이번 큐티를 통해 더욱 깊이 있는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원한다. 룻기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1절)를 그 배경으로 한다. 그 때는 어떠한 때였는가?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때(삿 17:6, 21:25)였다. 즉, 모세와 여호수아가 세상을 뜨고, 율법의 말씀을 직접 받았던 출애굽 1세대와 2세대가 다 사라져 버린 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제멋대로 살던 때였다는 것이다. 룻기는 그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를 살아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본문은 흉년이 들어 베들레헴에 살던 한 가족이 모압 지방으로 이주했..
여로보암이 여호와 신앙을 박해하였기 때문에(14-15절) 북이스라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유다로 넘어왔다(13절). 또한 하나님을 참되게 찾는 자들도 함께 넘어와서(16절) 르호보암을 도왔다(17절). 르호보암은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내들을 맞았고 많은 자식을 두었으며(18-22절) 이들을 유다 각지에 흩어 놓았다(23절). 오늘 본문은 열왕기에 그 짝이 존재하지 않는 본문이다. 본문의 의도는 르호보암을 칭송하는 것으로 보인다. 열왕기는 르호보암에 대한 평가를 직접적으로는 하지 않지만 당시 유다가 악했던 것으로 묘사함(왕상 14:22-24)으로써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은 도리어 이 시기에 유다가 하나님을 착실히 따랐던 것으로 묘사한다(17절). 심지어 북이스라엘에서 참된 신앙을 찾아 ..
이제 예수께서 운명하시는 장면이다. 예수께서는 세 시간을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신 끝에(45절) 고통의 탄식을 내뱉으시고(46절) 이해하지 못하는 구경꾼들 사이에서(47-49절) 운명하셨다(50절). 그 순간 여러 기적이 일어나고(51-53절) 지키던 자들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한다(54절). 육시부터 구시, 즉 정오부터 3시까지 한창 밝아야 할 시간에 온 땅에 어둠이 임하였다(45절). 이는 '빛' 되신 예수께서 떠나실 시간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cf. 마 4:16). 그리고 예수께서는 시편 22:1에 등장하는 다윗의 탄식 시를 외치신다(46절). 이로써 그는 고난 받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예언을 성취한다. 하지만 미련한 사람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엘리"(나의 하나..
사형 판결을 받으신 예수는 군인들에게 끌려가 희롱을 당하신다(27-30절). 희롱이 끝나자 그들은 예수를 끌고 십자가형을 집행하러 출발한다(31절). 가는 길에 구레네 시몬을 만나 그에게 십자가를 지우고(32절) 골고다에 이르렀다(33절). 예수께 쓸개 탄 포도주를 드렸지만 예수께서는 안 마시셨고(34절), 그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35절). 지나가던 자들과 종교 지도자들, 그와 함께 못 박힌 강도들이 입을 모아 예수를 욕했다(38-44절). 오늘 본문의 핵심은 '고통'이다. "쓸개 탄 포도주"는 예수 당시 사형수의 마취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예수께서는 그 정체를 아시고는 거부하셨다(34절). 이는 죄인들의 죗값을 온전히 고통 중에 감당하고자 하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비록 본문에 육신의 고통이 드러..
다음으로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의 가족들도 고치셨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을 앓는 것을 보시고(14절) 손을 만져 낫게 하신 것이다(15절). 예수께서는 그 외에도 여러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셨다(16절). 마태는 병자 치유 기사를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마무리한다(17절). 마태는 의도적으로 세 편의 병자 치유 기사를 병치해놓은 것 같다. 이들은 각기 다양한 배경과 다양한 관계를 가진 자들이었다(유대인 나병환자, 이방인 백부장의 종, 제자의 장모). 그리고 이들 모두는 당시 사회에서 소수자였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병환자는 사회에서 격리되어 천대 받던 사람들이었고, 비록 군대의 고급 장교였지만 이방인은 본질적으로 선민에 포함되지 않았다. 끝으로 베드로의 장모는 여성으로서 많은 사회적 제약에 직..
왕의 조서가 반포되자 각 지방에서 유다인들이 애통하며 부르짖기 시작했다(3절). 모르드개 역시 슬픔을 표시하며 대궐 문 앞까지 이른다(1-2절). 그 소식을 들은 에스더가 자초지종을 묻자(4-5절) 모르드개는 진상을 밝히고 왕에게 민족을 위해 구하라고 권한다(6-8절). 에스더는 그 일이 쉽지 않음을 알린다(9-11절). 고난을 겪는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본문은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누"웠다고 증언한다(3절). 금식하는 것, 베옷을 입는 것, 재에 눕는 것은 모두 육체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행위이다. 하나님 앞에서 슬픔을 표현함으로써 하나님께 자신의 뜻을 전달하려는 것이다(cf. 사 58:3-5). 모르드개는 거기에 더하여 왕후 에스더에게 청을 넣는다..
지난 본문까지 교회 공동체의 성립을 설명한 사도행전은, 오늘 본문에서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때(1절) 미문에서 구걸하던 못 걷는 사람 하나(2절)가 그들에게 구걸하였다(3절). 베드로와 요한은 그를 바라보고(4, 5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했다(6절). 그의 다리는 그 순간 회복되었고(7, 8절) 이를 본 백성들이 깜짝 놀랐다(9, 10절). 본문은 구원 받고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능력이 따르는지 잘 보여준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있었던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뿐이었다(6절). 하지만 그 이름 앞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고, 걷지 못했던 그 사람의 삶은 이제 구걸하는 삶에서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으로 바..
시인은 자신이 시험에 들 뻔 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는 하나님의 의로움을 믿지만(1절), 그럼에도 시험에 들 뻔 하였다(2절). 이는 악인이 형통하기 때문이었다(3절). 악인은 죽을 때까지 고통 없이 지내면서(4-5절) 교만한 태도를 일삼는다(6-9절). 이 모습을 본 "그의 백성"은 하나님의 지식을 의심한다(10-11절). 악인들은 계속 평안하고(12절), 스스로 의를 지킨 시인은 고난 중에 있다(13-14절). 어쩌면 그들처럼 악행을 행하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15절). 시인의 고백은 진솔하다. 주위를 보면 가난한 자들을 등쳐 먹는 악인들이 더 흥하고, 하나님 말씀을 팔아서 장사하는 장사꾼들이 더 인정을 받는다. 나는 올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막상 내게 주어지는 것은 고통 뿐이다...
바울은 몸의 비유를 들어 교회 공동체가 어떠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약해 보이는 지체가 더 요긴하고(22절) 더 귀하게 대접 받는 것을 보라(23절). 하나님께서 부족한 지체가 더 귀히 여기게 하셔서(24절) 분쟁이 없도록 하신 것이다(21, 25절). 모든 지체는 서로의 고통과 영광을 분담한다(26절).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를 구성하는 성도들은 지체의 각 부분이다(27절). 따라서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약하고 부족해 보이는 성도들을 돌아보며 그들을 귀히 여겨야 한다. 각자의 고통과 영광은 공동체의 고통과 영광이 된다. 이것이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가져야 할 모습인 것이다. 내가 귀히 여겨야 하는 형제자매들은 누구인가? 고민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원한다.
오늘 본문은 그 유명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규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실 이 규정이 얼마나 일반화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는 본문이 "임신한 여인"에 대한 피해 규정만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본문을 보며 율법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살펴보자. 사람이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하였으면 벌금을 내야 했다(22절). 다만 "다른 해가 없으면"이라는 부가 조건이 따라 붙는다. 그 외의 해를 입었다면 그대로 가해자에게 벌을 주어야 했다(23-25절). 종의 경우에는 그대로 갚지는 않았지만, 그 눈이나 이를 상하게 하였으면 그 대가로 그를 놓아주어야 했다(26-27절). 종 역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중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난 본문과 마찬가지로, 본문은 피해 보상과 정..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신 광야"를 떠나 "여호와의 명령대로" 르비딤에 이르렀다. 하지만 물이 없었다(1절). 이 첫 구절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삶이 어떠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삶은 고통이 없는 삶, 어려움이 없는 삶이 아니다. 도리어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7절) 의심이 생길 수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따지고 들었고(2절), 모세를 원망했다(3절). 모세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그들을 진정시키는 한편(2절) 하나님께 부르짖었다(4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고(5-6절), 백성의 원망은 한 순간에 잦아들었다. 원망이 잦아든 것도 잠시, 아말렉이 쳐들어왔다(8절).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지휘권을 맡긴 채, ..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낸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15절)은 바로에게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한다(15-16절). "당신의 백성의 죄"(16절)라는 말로부터 볼 때, 그들은 그 잘못을 아랫사람들에게 돌리면 바로가 마음을 고쳐 먹을거라 기대한 모양이다. 하지만 바로는 냉랭했다.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17절) 그는 자신의 지시가 변개되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 번 천명한다(17-18절). 여기서 우리는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핍박을 가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로는 제사를 드린다는 생각은 게으름의 소치라고 말한다. 즉 제사에 신경 쓸 시간에 일이나 더 하라는 말이다. 신앙이 게으름으로 비치는 순간이다. 하지만 신앙을 포기할 수 없는..
오늘 본문에서는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쫓겨나게 된 계기를 설명한다. 모세는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치는 것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살해했고(11-12절), 그 소식이 애굽 왕의 귀에 들어가자 이를 피하여 미디안 땅으로 도망갔다(15절). 흥미로운 것은 모세가 히브리 사람을 "형제"(11절), "동포"(13절)로 여기고 있었다는 점이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되고 있음을 볼 때, 히브리 사람이 당하는 고난(11절)에 분노하는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공명할 수 있는 자였다. 다만 그는 아직 "두려워하"는 자였고(14절), 이 두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 신적 소명이 필요했다. 과연 본문이 날샘의 설명처럼 모세의 행동을 비난하고 있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본문은 그저 ..
바울은 새로운 주제로 들어선다. 그는 큰 근심과 고통 중에 있었다(1-2절). 이것이 거짓말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자신과 자신의 양심을 율법이 요구하는 두 명의 증인으로 내세운다(1-2절). 무엇 때문에 바울은 그리도 괴로워하였는가? 바로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한 것이었다(3절). 그는 심지어 그들을 위해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말한다(3절). 그들은 누구인가? "이스라엘 사람"이다(4절). 바울은 여기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특권을 이야기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주셨다. 양자 됨, 영광, 언약들, 율법을 세우신 것, 예배, 약속, 조상들이 다 유대인들에게 속했고, 심지어 그리스도마저 그들의 혈통에서 나셨다(4-5절). (여기서 바울이 그리스도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