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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 1:1-5 본문
오늘부터 룻기를 묵상할까 한다. 룻기는 예전 교회에서 리더를 할 때부터 조원들과 성경 묵상을 실습하는 용도로 자주 묵상했던 성경인데, 이번 큐티를 통해 더욱 깊이 있는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원한다.
룻기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1절)를 그 배경으로 한다. 그 때는 어떠한 때였는가?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때(삿 17:6, 21:25)였다. 즉, 모세와 여호수아가 세상을 뜨고, 율법의 말씀을 직접 받았던 출애굽 1세대와 2세대가 다 사라져 버린 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제멋대로 살던 때였다는 것이다. 룻기는 그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를 살아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본문은 흉년이 들어 베들레헴에 살던 한 가족이 모압 지방으로 이주했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1절). 이들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2절)로, 남편은 엘리멜렉, 아내는 나오미, 두 아들은 말론과 기룐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2절). 모세오경에 보면 기근을 피해 이주하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아브라함은 애굽으로(창 12:10-20), 이삭은 블레셋으로(창 26:1-11) 간 적이 있었고, 야곱과 그 자손들은 요셉이 총리로 있던 애굽으로 통째로 이주했다. 이 본문들을 살펴보면, 먼저 흉년을 피해 아예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것이 매우 드문 일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고, 두 번째로 그 이주의 모든 과정조차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엘리멜렉의 이주 또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엘리멜렉이 세상을 떠났다(3절). 특별한 이유는 제시되지 않는다. 그리고 두 아들은 각각 모압 여자에게 장가를 들었는데, 말론은 룻(cf. 룻 4:10), 기룐은 오르바라는 여인을 아내로 맞았다(4절). 이 결혼이 부친상 이전인지 이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이주한지 10년 쯤 지나 말론과 기룐 역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는 것이다(5절). 본문은 "남았다"(וַתִּשָּׁאֵ֥ר)라는 표현을 두 번(3, 5절) 동일하게 씀으로써 나오미의 상실을 표현하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엘리멜렉의 죽음, 그리고 말론과 기룐의 죽음이 이들의 행실과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약속의 땅을 떠났기에 엘리멜렉이 죽었고, 이방 여인들과 결혼했기에 말론과 기룐이 죽었다는 것이다. 모세오경의 가르침과 연결시켜 생각해 볼 때 일리가 없는 주장은 아니나, 본문 자체가 그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나는 이 주장을 택하는 대신, 여기서 남편, 그리고 두 아들의 죽음이 나오미에게 '주어진' 것이었음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들의 죽음이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빈 손으로(cf. 룻 1:21) 홀로 "남았다".
흉년을 피하고자 남편을 따라 모압 땅으로 갔다가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은 한 여인 나오미.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야기의 결말을 아는 우리는 이 모든 일 뒤에 하나님이 계셨음을 알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그것을 알 수 없다. 아마 나오미도 이 비극 앞에서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슬퍼하고, 분노하고, 절망하지 않았을까. 엘리멜렉을 데려가신 것으로 부족해서, 말론을, 기룐을, 그렇게 데려가셔야 했는가? 하나님의 뜻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 울부짖는 여인 앞에서 하나님은 아마, 언제나처럼 침묵하셨을 것이다.
영문 모를 비극이 우리 삶을 덮칠 때가 있다. 욥의 경우가 그랬고, 오늘 본문의 나오미가 그렇다. 그 때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본문은 나오미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보여주지 않지만, 이후 본문을 보건대 그가 신앙을 버리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그 고통조차, 그 충격조차 신앙 안에서 꽁꽁 싸매어, 혹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 앞에서 욕을 퍼부을지언정 그를 떠나지는 않는 것, 그것이 신앙인의 모습이 아닐까. 할 수 있다면, 그 아픔을 기도로, 노래로, 눈물로 승화시킨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말이다.
그 때에 나는 새 노래를 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리
가난하고 갇힌 자들의 소릴 들으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높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