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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 1:15-22 본문
시어머니를 붙들고 떠나지 않는 룻에게, 나오미는 동서 오르바처럼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면한다(15절). 그러자 룻은 그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끝까지 나오미를 따르게 해달라고 간곡하게 청한다(16-17절). 이 부분에서 흥미로운 문학적 장치가 눈에 띈다. 나오미는 오르바가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 돌아갔다고 말하는데(15절), 룻은 그 말을 받아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16절). 그리고 바로 이어 "여호와"를 언급함으로(17절) 그가 여호와 신앙에 들어왔음을 표현한다.
나오미는 룻의 굳은 결심을 보고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18절). 그들은 함께 원래 엘리멜렉이 살던 고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는데(22절), 그러자 베들레헴 사람들이 나오미를 알아보고 떠들기 시작했다(19절). 아마 당시 베들레헴에서 엘리멜렉 가문이 꽤나 유력했던 모양이다(cf. 21절 "풍족하게 나갔더니"). 나오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자신의 이름 "나오미"(희락) 대신 "마라"(괴로움)로 불러달라고 말한다(20절). 그는 자신이 겪는 고통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고백한다(20-21절). 하지만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행하셨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오늘 본문에서 드러나는 두 가지는 나오미의 고통(20-21절)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와 함께 있고자 하는 룻의 인애(16-17절)이다. 나오미의 고통은, 나오미의 고백에서부터 드러나듯, 단순히 돌고 도는 세상사의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그를 "징벌하"신 것이었다(21절). 신의 징벌 앞에서, 룻은 감히 그 신앙을 껴안고 그 신을 자신의 신으로 섬기겠다고까지 고백한다(16절). 룻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나, 그 시어머니를 성심성의껏 봉양하고자 하는 선한 의도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해 볼 수는 있다(cf. 룻 2:11).
내가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 고통 중에 있을 때, 나는 그 고통을 껴안으며 그와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 룻은 기꺼이 그 길을 택했다. 자신을 "괴로움"이라고 부르는 시어머니를 따라(20절), 그가 가는 곳에 자신도 가고 그가 머무는 곳에 자신도 머물며 그가 죽는 곳에서 자신도 죽을 것이라는 엄청난 고백을 한다(16-17절). 이 고백을 보며 그 안에 담긴 순수한 사랑을 느낀다. 내 안에도 그러한 사랑이 있기를 원한다. 내가 사랑해야 하는 자들에게 내 모든 것을 내어주며 그들과 함께 하는 삶, 마치 우리 주님처럼 살아가는 그러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한다. 내 사랑으로 불가능하니, 예수여 나를 도와 주소서.
사랑은 오래 참고
자신을 내어주네
서로 사랑할 때 세상은 주 보네
사랑은 절대 지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