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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두 가지 이야기를 소개한다. 먼저 예수께서 제자들과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실 때 일어난 일이다(22절). 예수께서 배 안에서 잠 드신 사이에 광풍이 몰아쳐 배가 침몰할 지경에 이르렀다(23절). 겁에 질린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자 예수께서는 바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사 잠잠하게 하셨다(24절).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을 물으셨고, 제자들은 예수가 누구인지 두려워했다(25절). 호수를 건너 도착한 곳은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이었다(26절). 예수께서 내리시자 귀신 들린 자 하나가 예수 앞에 나와 소란을 피웠다(27-28절). 그는 예수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고백하는데(28절), 흥미롭게도 이는 25절에 나온 제자들의 질문,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하나님은 이제 제사장들에게 명령을 내리신다(1절). 하나님의 계명을 마음에 두지 않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저주를 내리실 것이고(2절) 그 자손을 꾸짖으실 것이다(3절). 하나님은 "절기의 희생의 똥"을 제사장들의 얼굴에 바를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3절), 이는 제물 짐승의 똥을 제하여 진영 바깥에서 불살라 버리던 제사 규정(출 29:14, 레 4:12, 8:17, 16:27)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즉 제사장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성막/성전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의미이다. 사실 하나님이 이런 명령을 내리신 것은 레위와 세운 언약 때문이었다(4절).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주신 이유는 레위가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5절). 그래서 레위는 하나님을 경외하며(5절) 그와 동행하였고 많은 사람을 깨우쳤다(..
백성들은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며(1절) 먹을 것이 없어(2절) 모든 것을 팔아야 할 지경임을 토로했다(3-5절).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분노하여(6절)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었다(7-8절). 그리고 모든 이자를 없애자고 제안하였다(9-11절). 그들은 제사장들 앞에서 그렇게 행하기로 맹세했다(12-13절). 오늘 본문은 느헤미야가 부딪힌 두 번째 난관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로 백성 간의 빈부 격차로,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사이다. 본문 1절은 흥미롭게도 "백성들"과 "유다 사람들"을 구분한다. 8절에서 유다 사람들이 "도로 찾"은 대상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가리키는 듯 하고, "백성들"은 바벨론의 점령 이후 그 땅에 남아 살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늘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살펴 본다. 아닥사스다가 조서를 내렸다는 말이 따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으나, 맥락상 에스라의 요청에 따라(스 7:6) 아닥사스다가 성전 공사를 돕기 위해 쓴 것으로 보인다(11절). 조서는 먼저 발신인과 수신인을 밝히고 있는데, 발신인은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요, 수신인은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이다(12절). 수신인을 이처럼 표현한 것이 특이하다. 이는 에스라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준다. 아닥사스다는 페르시아에 잡혀온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에스라와 함께 가기를 원하는 자들은 함께 갈 수 있도록 허락하는 한편(13절), 페르시아 정부로부터 부여받은 에스라의 임무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는 것으로 규정한다(14절). 그런데 그 형편을..
여호사밧은 온 이스라엘을 다니며 여호와 신앙을 회복시켰고(4절) 각 성읍마다 재판관을 세워(5절) 하나님 앞의 공평한 판결을 주문하였다(6-7절). 또한 예루살렘엗 사람을 세워 재판을 맡게 한 후(8절) 그들에게도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하였다(9-10절). 그리고 조직을 정비하였다(11절). 열왕기에 평행 본문이 따로 등장하지 않는 오늘 본문은 재판 개혁을 그 핵심으로 한다. 4절만은 여호사밧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하나님께 돌아오게 했다는, 조금 다른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기자는 이 내용과 그 이후 내용이 연결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즉,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공의로운 재판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유다 각지의 재판관들에게(6-7절), 그리고 예루살렘의 재판관들..
아비야와 여로보암 사이의 전투에서, 여로보암은 복병을 배치하여 유다를 압박한다(13절). 그러자 유다는 하나님께 소리 질렀고(14절), 하나님은 그에 응답하사 이스라엘을 치셨다(15절). 이스라엘은 완패하고 물러나(16-18절) 많은 성읍을 유다에게 빼앗겼다(19절). 여로보암은 결국 쇠약해져 죽었고(20절) 아비야는 강성하였다(21절). 그의 치세는 잇도의 책에 기록되었다(22절). 본문은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 여로보암은 전술적으로 훌륭한 꾀를 내어 복병을 묻어 두었다. 그리고 유다는 순진하게 그 매복에 걸려들었다(13절). 인간적으로 보면, 유다는 이스라엘에게 완패해야 했다. 하지만 유다는 그 상황에 하나님께 부르짖었고(14절) 하나님이 일하시자 이스라엘은 완전 패망하..
지난 본문에서 이방 나라들이 받을 심판을 선포한 선지자는, 이어 예루살렘이 받을 심판을 선포한다. 언뜻 보면 "그 성읍"(1절)이 니느웨(습 2:13)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 하나님"(2절), "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5절) 등의 표현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택하신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가리켜 "패역하고 더러운 곳"이자 "포학한" 성읍으로 묘사한다(1절).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2절). 한두 명의 문제가 아니고, "방백들", "재판장들", "선지자들", "제사장들"이 전부 공모하여 하나님을 배반해 버렸다(3-4절). 이들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으로 "불의를 행..
전도서의 마지막이다. 전도자는 다시 한 번 헛됨을 외친다(8절). 전도자는 사람들에게 지혜를 가르쳤고(9절) 지혜의 말을 기록으로 남겼다(10절). 이 지혜의 말은 듣는 이의 마음에 깊이 박힌다(11절). 하지만 공부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12절). 전도자는 자신의 교훈을 마무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고 권면한다(13절). 이는 하나님이 최후의 심판자이시기 때문이다(14절). 오늘 본문은 전도서의 시작 부분과 잘 대응된다. 전도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외치면서 자신의 교훈을 시작했다(전 1:2). 마무리 역시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로 끝난다(8절). 또한 시작 부분에서 전도자가 소개되었던 것처럼(전 1:1) 마무리 부분에서도 전도자가 소개..
하나님이 하신 일은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다(13절). 오직 하나님만이 미래를 아시기에, 형통을 즐거워하고 곤고 가운데 반성하는 것이 옳다(14절). 항상 의인이 성공하고 악인이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15절). 사람은 지혜와 공의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더라도 망하고(16절), 지혜와 공의를 완전히 무시해도 망한다(17절). 그저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사는 것이 삶의 지혜다(18절).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인간의 유한함에 초점이 맞춰 있다.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항할 수 없고(13절), 하나님은 다 아시는 미래도 알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다(14절). 따라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하루하루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옳다. 만약 오늘이 형통하다면 그에 감사하며 기뻐할 것이요, 오늘이 곤고하다면 혹 ..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하나님 앞의 태도에 대해 가르침을 베푼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는 발을 삼가고(1절),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말며(2-3, 7절), 하나님께 드린 서원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4-6절). 이 모든 것은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7절)라는 말로 정리될 수 있다. 먼저 발을 삼가는 것의 의미(1절)에 대해 생각해 보길 원한다. 해당 구절에서 전도자는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과 "제물 드리는 것"을 대조하고 있다. 이로부터 형식적인 제사는 발을 삼가지 않는 것에 해당한다고 유추할 수 있다. 여기서 이사야 말씀이 떠오른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2) 함부로 성전에 들어서는 행위는 "..
일하는 자의 수고는 헛되다(9절). 하지만 그 수고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10절). 다만 그 수고의 결과는 인간에게 감춰져 있기에(11절), 사는 동안에 할 수 있는 것은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12절), 그리고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즐거움(13절)이다. 계속 세대가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 같지만(15절), 결국 이 모든 일의 목적은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 하시는 것이다(14절). 이제서야 변죽만 울리던 본문이 본색을 드러낸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선포는 결국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 살면서 행복을 누리라는 권고로 귀결된다. 수고의 열매 때문에 수고한다면 그는 후회할 것이다(9절). 왜냐하면 그 결과는 인간의 손에 달려있지 않기 때문이다(11절). 수고는 그 자체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10..
새해부터는 날샘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진도를 정해서 큐티를 하고자 한다. 성경을 흐름에 따라서 읽는 것이 좋은데, 큐티 책을 따라가다 보면 긴 기간 빠질 때 아무래도 해당 본문들을 건너 뛰게 되기 때문이다. 어젯밤에 미국에 돌아왔고, 오늘부터 다시 일상이다. 디도서로 새해를 시작해 보고자 한다. 본문은 편지의 서두 부분이다. 바울은 스스로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사도직을 설명하고(1-3절), 수신인인 디도를 축복한다(4절). 바울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종"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소개한다(1절). 헬라어 원문과 NIV 번역을 참고해서 본문을 읽어 보면, 바울의 사도직은 "영생의 소망"(2절) 안에 있는 "믿음"과 "지식"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1절). 영생은 하나님이 약속하셨다가(2절) 때가 되어..
로마서 3:10은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시편 14편과 53편의 인용이다. 2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 14:2-3) 2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시 53:2-3) 그런데 오늘 전도서를 읽다가 비슷한 지혜가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15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
아비멜렉이 집권한지 3년이 흐르자(22절),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신한다(23절). 이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요(23절),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의 죄를 벌하기 위함이었다(24절). 세겜 사람들은 강도짓을 일삼으며(25절) 가알이라는 새로운 지도자를 쫓는다(26절). 이들은 아비멜렉을 저주하며(27절) 전쟁을 선포한다(28-29절). 오늘 본문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은 모두 무죄한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였고, 양쪽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24절). 그 결과 그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다(23절). 불과 삼년 전에 "그는 우리 형제라"라고 말했던(삿 9:3) 세겜 사람들이 이제는 아비멜렉을 저주한다(27절). 죄를 지은 자는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
바울의 변론을 듣던 유대인들은 이방인 선교에 대한 격렬한 반감을 표출한다(22-23절). 히브리말을 모르는 천부장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기 위해 바울을 고문하려고 하였지만(24절),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내세워 고문을 중단시킨다(25-29절). 천부장은 이튿날 유대인 공회를 소집하여 바울을 데리고 나타났다(30절). 그 자리에서 바울은 당당하게 신앙을 고백하고(1절), 이를 비난하는 대제사장에게 응대한다(2-3절). 그러나 그가 대제사장임을 깨닫고 이내 잘못을 수긍한다(4-5절). 본문은 바울의 당당함과 침착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는(23절), 분노한 대중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받은 소명을 설명했다. 로마 병사들이 자신을 묶을 ..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의 의미를 깨닫지 못해 의아해 하고 있을 때(17절),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하여 베드로를 찾았다(18절).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그들과 함께 가라고 명하셨고(19-20절), 베드로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들을 따라 나섰다(21-23절). 베드로가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의 집에 도착하자(24절), 고넬료는 그 앞에 절하였고(25절) 베드로는 그를 일으켰다(26절). 베드로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27절) 율법을 어기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왔음을 밝힌다(28-29절). 고넬료는 그런 베드로에게 자신이 받은 계시를 설명한다(30-33절). 본문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고넬료의 신실함이다. 고넬료는 "의인"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22절..
욥바로 온 베드로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렀다(43절). 이제 무대는 가이사랴로 옮겨간다. 이탈리아 부대의 백부장 고넬료(1절)라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2절) 그곳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하나님의 천사가 임하여(3절) 그에게 베드로를 청하라고 명한다(4-6절). 고넬료는 즉각 아랫사람들을 욥바로 파송한다(7, 8절). 성경이 고넬료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흥미롭다. 그는 "경건하여 [...]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다(2절). 천사는 그에게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선언한다(4절). 즉, 본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정의할 수 있는 두 가지, 기도와 구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에..
오늘 본문에는 여호수아와 기브온 주민들이 나누는 대화가 수록되어 있다. 여호수아는 그들이 거짓말 한 것은 질책하는 한편(22절), 그 결과로 그들이 "대를 이어 종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23절). 기브온 주민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변명하는 한편(24절), 처분을 여호수아에게 맡긴다(25절). 여호수아는 그들을 죽이는 대신(27절) 성전의 종으로 삼았다(28절). 여기 본문을 보면 성경이 기브온 주민들에게 우호적인 것을 더 잘 볼 수 있다. 여호수아의 책망(22절)에 대해 그들은 할 말이 있었다(24절).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고 그 명령이 그대로 준행될 것을 알았기에, 두려움으로 이 일을 행한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건져짐", 즉 구원을 받았다(26절). 더욱 흥미로운 것은 ..
이제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에 진을 쳤다(19절). 여호수아는 요단에서 가져온 열두 돌을 길갈에 세웠다(20절). 이 돌들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대대로 기억하게 하기 위하여 둔 것(21-22절)이었다. 여호수아는 이 돌을 세우며 신학적 해석을 덧붙인다. 출애굽 2세들 앞에서 요단을 말리시고 건너게 하신 것은 출애굽 1세들 앞에서 홍해를 말리시고 건너게 하신 것과 같다(23절). 그리고 이 두 가지 기적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주신 것이다(24절). 이 목적은 그대로 달성되어 가나안 백성은 이스라엘로 인하여 두려움에 빠졌다(1절). 하나님의 역사는 때로 반복된다. 홍해가 갈라진 것처럼 요단이 갈라졌고, 엘리야가 죽은 아이를 살린 것(..
금송아지 숭배와 그에 따른 심판이 지나간 후,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사자"가 이스라엘과 함께 할 것이고(2절) 결국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를 것이다(1, 3절).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함께 가지 않으실 것이다(3절). 이는 이스라엘의 교만으로 인해 그들을 진멸하실까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슬픈 소식이었다(4절).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이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이다(cf. 출 33:15-16). 다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태도를 보고 최종적으로 결정하시겠다고 하셨고(5절), 이에 이스라엘은 장신구를 떼고 자신의 즐거움을 포기하였다(4, 6절). 여기까지의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은 약간의 교만, 약간의 불순종도 참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