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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본문에서 바울은 옛 사람의 습성대로 살아가는 고린도 교인들을 질책하며(고전 6:8-10) 이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면했다(고전 6:11). 어째서 그런가?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설명한다. 우리의 몸은 이제 성령의 전이다(19절). 예수 그리스도의 "값"으로 산 것이므로 이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20절). 따라서 무엇을 하든 그것은 우리의 자유지만 우리는 그 자유를 스스로 제한한다(12절). 그리고 "주를 위하여" 몸을 사용한다(13절). (바울은 여기서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를 부연하기 위해 14절을 첨언한다. 주가 우리 몸을 위해 계신다는 것은, 우리의 부활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께서 먼저 사신 것이 우리의 부활을 예표하는 사건이 된다.) 우리의 몸은 "그..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판단"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이는 지난 본문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라는 권면(고전 5:12)과 연결된 내용으로 보인다. 성도는 세상(2절)과 천사(3절)를 판단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도 고린도 교인들 중 일부는 분쟁이 발생했을 때 세상 권세를 찾아갔다(1, 4절).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부끄러워 해야 한다고 말한다(5절). 성도들 가운데 지혜로운 사람이 없어서 세상 사람들을 찾아가는가(5-6절)? 바울은 이것 자체가 "뚜렷한 허물"이라고 말한다(7절). 차라리 조금 억울하더라도 참아내는 것이 더 나은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가해자 편을 드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가해자들에게도 엄중히 경고한다. 형제 자매에게 불의를 행하고 그들을 속이는 악한..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을 질책하던 바울은 "음행"의 문제를 지적한다. 이방인 중에서도 하지 않는, 계모와 관계를 갖는 악한 일(1절)에 대해 바울은 교회가 단호하게 그를 찍어내야 한다고 권고한다(2절). 바울이 비록 몸으로 함께 하지는 않지만, 고린도 교회의 모임에 영으로 함께 하여 그를 판단하고 "사탄에게 내주었"다(3-5절). 따라서 고린도 교인들이 그를 찍어내지 않고 자신들의 처사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6절). 누룩은 비록 그 양이 적을지라도 온 덩어리를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6절). 바울은 교회를 가리켜 "누룩 없는 자", 즉 죄 없는 자라고 칭하며 이 죄의 문제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셨음을 상기시킨다(7절). 바울은 유월절 식사에서 먹는 무교병을 비유로 들어 누룩 없이,..
고린도 교인들을 질책하던 바울은 자신의 의도가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권면이라고 말한다(14절).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15절). 그는 아들이 아버지를 닮는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을 닮기를 원했다(16절). 무엇을 닮으라는 말인가? 바울은 디모데를 통해 자신의 가르침과 행실이 상기되길 원했다(17절). 즉, 그렇게 기억난 "나의 행사"를 닮으라는 이야기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한편으로 바울이 오지 않을 것을 알고 바울을 비난하는 자들도 있었다(18절). 바울은 그들을 향해 엄중히 경고한다. 그는 고린도 교회에 가서 그들의 말이 아니라 능력을 알아보겠다고 말하며(19-20절), 그 때가 처벌의 때가 아니라 사랑의 친교를 나누는 때가 되길 기원했다(21절). 이 부분..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와 "너희"를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본문에서 "사도"라고 지칭되고 있는데(9절), 특히 바울과 아볼로와 같은 전도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6절). 반면 "너희"는 문자적으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광의적으로는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을 가리킨다. 우선 바울은 자신들을 보며 배우라고 권면한다(6절). 바울파와 아볼로파로 갈라져 싸웠던 고린도 교인들과는 대조적으로, 바울과 아볼로는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6절). 고린도 교인들이 교만해진 것은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이룬 것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지만, 실상 그 모든 것은 다 받은 것이었다(7절). (여기서 그들에게 전달해 준 주체가 하나님인지 사도들인지 불분명한데, 맥락상 사도들로 보는 것..
말의 지혜에 현혹되기 쉬웠던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바울은 "어리석은 자가 되라"고 권면한다(18절). 이는 이 세상 지혜가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다(19-20절). 이는 1-2장에서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대조하였던 바울의 메시지와 일치한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강조하는데(21절), 이로부터 고린도 교인들이 각자 자신이 추종하는 전도자를 내세워 자랑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말의 지혜'는 아볼로를 떠올리게 한다. 행 18:24 참조.) 전도자가 누구건 간에 그들은 전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한다(22절). 만물도, 세계도, 생명도, 사망도, 지금 것도, 장래 것도 모두 성도들의 것이다(21-22절).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할 수..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에 대해 열변을 토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질책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은 "신령한 자들"과, 세상의 영으로 말하는 "육신에 속한 자"를 구분한다면 고린도 교인들은 육신에 속한 자다(1절). 물론 바울은 그들이 공동체 밖에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형제들"이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었다. 다만 "어린아이들"이었을 뿐이다(1-2절). 이들이 아직도 육신의 구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증거는 "시기와 분쟁"이었다(3절). 특히 어느 전도자를 따르는지에 따라 파당을 나누어 다투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육의 사람"이었다(4절). 바울은 그들에게 사역자들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설명한다. 이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사역한 사람들로서(5절), 모..
세상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이야기하던 바울은,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그 지혜를 우리에게 보이셨다고 말한다(10절). 즉,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로 주어진 지혜라는 말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기에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알고 계시다(10-11절). 따라서 성령을 받은 "우리"는 사람의 지혜를 따르지 않는다(12-13절). 그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알려주신,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적인 일"을 가르칠 뿐이다(13절).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이해할 수 없다(14절). 여기서 바울은 인간의 지혜를 따르는 고린도 교인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영적인 사람, 즉 올바른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그를 판단할 수 없다(15절). 이는 판단 자체가..
본문에서 바울은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이 기독교 신앙에 있어 무익함을 강조한다(1절).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뿐이다(2절). 그 외의 논리나 철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믿음이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즉 십자가의 도에 뿌리 박아야 하기 때문이다(5절). 바울은 일견 약한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3절). 그의 말에는 그리스 철학의 아름다운 논리가 보이지 않았다(4절). 하지만 그의 증거에는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이 있었고(4절), 이것이 고린도 교인들을 회심하게 만든 계기였다. 바울은 이것을 다시금 되새겨주며 고린도 교인들이 십자가 앞으로 돌아오길 촉구한다. 혹 어떤 이들이 궁금해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야기하던..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 즉 "십자가의 도"가 세상의 가치보다 우월함을 논증한다. 말의 지혜를 따르는 고린도 교인들조차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했다(26절). 성도들의 모습만 봐도 하나님이 육체의 기준을 따라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이 아님이 확실하다. 대신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 "세상의 약한 것들",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선택하셨고(27-28절), 이로써 제 능력으로 선택받았다고 주장하는 자가 없게 하셨다(29절).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은 세상의 기준과 무관하다.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제 능력을 자랑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이는 하나님께로서 온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30절). 다시 말해, ..
바울은 이전 본문에서 언급한 "[복음 증거를]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 1:17)라는 구절을 부연 설명한다. 십자가가 무엇인가? 그리고 왜 말의 지혜보다 십자가가 우월한가? 여기서 복음의 요체가 드러난다. 특히 "말의 지혜"를 추구하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본문은 경종을 울린다. 십자가의 도는 미련해 보이지만 구원 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18절). 무슨 뜻인가? 이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21절). 이는 하나님께서 이 세대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셨기 때문이다(19-20절). 대신 십자가의 도, 세상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하나님께 이르는 구원의 길이 된다(21절).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는다..
11월부터는 고린도전서를 묵상한다. 바울 서신의 기본적인 형태를 따라, 고린도전서는 인삿말(1-3절)과 기도(4-9절)로 시작한다. 먼저 인삿말에서는, 편지의 발신인과 수신인이 언급되며, 간단한 축복 인사가 뒤따라온다. 우선 발신인이 단순히 바울이 아니라 바울과 소스데네로 등장하는 것(1절)에 주목하자. 이 소스데네가 행 18:17의 회당장 소스데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고린도의 회당장이었던 그가 개종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자신이 잘 알고 지내던 고린도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함께 쓰고 있다고 상상해 볼 수 있겠다. 이어 수신인으로 고린도 교회와 더불어 "각처에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 언급되는 것(2절)을 볼 때, 바울은 자신의 편지가 회람되기를 기대했던 것 ..
성막이 세워졌다. 그러자 구름이 덮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다(34절). 하나님께서 성막에 임한 것이다. 얼마나 그 영광이 컸는지 모세가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35절). 하나님의 인도는 성막의 구름을 통해 주어졌는데,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면 나가라는 신호요(36절), 떠오르지 않으면 머무르라는 신호였다(37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38절). 성막은 인간이 하나님을 뵙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였다. 그곳에 하나님께서 임하셨고, 친히 인간들의 행로를 인도하셨다. 이스라엘은 그 분명한 신호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나아갈 바를 결정하였다.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현현하셨고,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내주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음과 같..
하나님의 명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은 "둘째 해 첫째 달 ... 초하루"에 성막을 세운다(17절). 본문은 어찌 보면 지루할 정도로 성막을 세우는 과정을 한 단계 한 단계 풀어 설명한다. 성막 구조물이 세워지고(18-19절), 증거궤를 들여놓고(20-21절), 진설병 상(22-23절), 등잔대(24-25절), 향단(26-27절)을 성막 안에 두었으며, 성막 문 앞에 번제단(29절)과 물두멍(30절)을 설치했다. 본문은 매 작업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19, 21, 23, 25, 27, 29, 32절)라는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즉, 본문은 성막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세워졌음을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성막을 세웠고, 이 성막이 이제 이스라엘과 함께 할 ..
이제 성막을 세울 준비가 다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을 세우라는 명을 내리신다(1절). 성막을 세우는 것은 첫째 달 초하루(2절)로, 인간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날을 택하신 듯 하다. 하나님은 성막에 있어야 할 물품들을 하나씩 열거하시며 빠진 것 없이 성막에 넣을 것을 명령하신다(3-8절). 이어 기름을 바르는 의식을 거행해야 했다.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9절),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10절), "물두멍과 그 받침"(11절)에 기름을 바르면 그것이 거룩하게 될 것이다. 아론과 그 아들들을 씻기고(12절) 옷을 입힌 후(13, 14절) 기름을 부어(13, 15절) 그들 또한 거룩하게 해야 했다. 모세는 이 모든 명령에 순종하였다(16절). 기름을 붓는 의식을 한 번 묵상..
지난 본문에 이어 이번 본문에서는 성소를 세우는 준비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살핀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은사를 받은 브살렐, 오홀리압, 그 외 여럿이 작업을 준비하는 동안(2절), 이스라엘 자손은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예물을 가져 왔다(3절). 문제는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왔다는 것이었고, 결국 재료가 너무 많아져서 헌물을 중지시켜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4-7절). 본문은 "헌금"에 대한 자세를 일러준다. 우선 헌금의 목적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이들은 맹목적으로 "하나님께 바쳐야 하니 바친다"는 태도로 예물을 가져오지 않았다. 이들은 분명히 자신의 예물이 성소를 세우고 제사장의 옷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용도에 걸맞는 예물을 ..
본문은 당시 성막과 제사장의 의복을 만들 책임자를 호명한다.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이 총책임자였고(30절),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이 그를 도와 작업을 지휘했다(34절). 그들의 재능은 다양하여 금속 세공(32절), 보석 세공(33절), 목각(33절), 섬유 공예(35절) 등이었고, 이를 통하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진행하였다(1절). 주목할 것은 그들의 재능이 어디에서 왔는가이다. 본문은 반복적으로 그 재능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브살렐을 부르셨고(30절), 하나님의 영을 부으사 "지혜와 총명과 지식"을 주셨고(31절),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감동"시켜 다른 이들을 가르치게 하셨다(34절). 이러한 표현은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다시금 상기..
모세가 하나님께 물질과 헌신을 바칠 사람은 자원하여 바치라는 말씀을 대언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그 말씀을 듣고 돌아가(20절) 회막과 제사장의 의복을 위해 필요한 예물을 바쳤다(21, 29절). 그 품목으로는 금 예물(22절)과 각종 섬유(23절), 은, 놋, 나무(24절), 다양한 실(25-26절), 보석(27절), 향품(28절) 등이 있었다. 본문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 하나 있다. "마음이 감동된"(21절), "자원하는"(21절), "마음에 원하는"(22절), "마음에 감동을 받아"(26절), "마음에 자원하는"(29절), "자원하여 드린"(29절)이 그것이다. 즉, 본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예물을 자원하여 바쳤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하나님께 바칠 때 중요한 것은 자원하..
모세는 시내 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명령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한다(1절). 흥미롭게도 본문은 두 차례에 걸쳐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달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1, 4절). 각 문장을 새로운 내용의 시작이라고 본다면 본문은 크게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첫 번째 주제에서는 안식일 규정을 다룬다. 안식일은 "여호와께 엄숙한" 날이자 "너희를 위한" 날이다(2절). 어떤 일도 하지 말아야 하며, 심지어 불도 피우지 말아야 한다(2-3절). 나는 안식일을 가리키는 명칭에 주목하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안식일이 분명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 하신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님의 말씀(막 2:27)은 이 맥락에서 해석해야 ..
모세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40일간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지낸다(출 34:28). 이것만 해도 신적인 기적인데, 모세가 이제 증거판을 들고 산 아래로 내려와보니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이다(29절). 이는 다른 이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게 만드는 기이한 일이었다(30절). 모세는 우쭐해지지 않고 그들을 불렀다. 먼저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와 대화했고(31절), 이어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다가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32절). 말씀 전달이 끝나자 모세는 광채를 가리기 위해 수건을 얼굴에 덮었다(33절). 이 과정은 계속 반복되었다. 하나님을 뵙고 그 말씀을 전달할 때는 수건을 벗고 있다가(34절) 그 이후에는 다시 수건을 썼다(3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