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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두 가지 사건을 다루고 있다. 첫 번째 사건은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사건(1절)으로, 어느 백부장이 자신이 사랑하는 종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께 유대 장로들을 보냈다(2-3절). 이들은 이 백부장이 유대인들을 사랑하고 회당까지 지어줄 정도의 사람이므로 도와달라고 간청했다(4-5절). 그런데 예수께서 가시는 길에 백부장은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보내 오실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6절). 그는 말씀만 하시면 종이 나을 것이라 말하며(7절) 예수의 주권을 인정한다(8절). 예수께서는 그의 믿음을 칭찬하셨고(9절) 그 종은 깨끗이 나았다(10절). 다음 사건은 나인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11절). 예수께서 성문 근처에 이르시자 어느 시신을 메고 나오는 행렬을 마주치셨다(12절). 그 시신은 과부 어머니..
오늘부터 룻기를 묵상할까 한다. 룻기는 예전 교회에서 리더를 할 때부터 조원들과 성경 묵상을 실습하는 용도로 자주 묵상했던 성경인데, 이번 큐티를 통해 더욱 깊이 있는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원한다. 룻기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1절)를 그 배경으로 한다. 그 때는 어떠한 때였는가?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때(삿 17:6, 21:25)였다. 즉, 모세와 여호수아가 세상을 뜨고, 율법의 말씀을 직접 받았던 출애굽 1세대와 2세대가 다 사라져 버린 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제멋대로 살던 때였다는 것이다. 룻기는 그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를 살아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본문은 흉년이 들어 베들레헴에 살던 한 가족이 모압 지방으로 이주했..
사도 요한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선언한다(14절). 따라서 사랑하지 않는 자는 아직 사망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14절), 심지어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것과 같다(15절). 살인자 안에서 영생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14절은 다소 해석이 필요한데, 요한일서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cf. 요일 5:13). 도리어 이 구절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간 자가 나타낼 모습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할 듯 하다. 즉,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자는 자연스레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인용하여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그 사랑을 아는 자라면 마찬가지로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게 된다고까지 말한다(16절). 이는 요 15..
요시야는 애굽 왕 느고가 갈그미스로 올라가는 길에 방비하러 나갔다(20절). 느고는 요시야에게 유다를 치러 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지만(21절) 요시야는 그 말을 듣지 않고 므깃도에서 전투를 벌인다(22절). 요시야는 전투 중에 화살에 중상을 입었고(23절) 급히 후퇴하였으나 예루살렘에서 사망한다(24절). 유다 백성은 그의 죽음을 슬퍼했고(25절), 그의 사적은 열왕기에 기록되었다(26-27절). 오늘 본문은 열왕기하 23:28-30에 짤막하게 기록된 요시야의 전사 기사를 좀 더 자세하게 전달한다.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열왕기는 요시야가 전장에서 죽은 것으로 쓰는 반면(왕하 23:28), 역대기는 요시야가 예루살렘에 와서 죽은 것으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24절). 이는 예루살렘 밖에서 왕이 죽는 ..
이번에는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왔다(23절). 그들은 율법을 근거로(24절) 부활이 있다면 큰 모순에 봉착함을 증명하고자 하였는데(25-28절), 예수께서는 그들의 논리가 무지에서 온 것임을 증명하셨다(29-30절). 그리고 모세오경에 이미 부활에 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음을 지적하셨다(31-33절).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로서(23절), 모세오경만을 참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했다. 그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꾸며내어 부활을 반증하고자 했는데, 그 이야기는 두 가지를 근거로 한다. 첫째, 율법에는 형사취수제가 규정되어 있다(24절). 둘째, 부활 후에도 이 세상과 같은 혼인 관계가 지속된다(28절). 만약 이 두 가지가 전부 참이라면, 부활 후에는 일부일처제가 깨져버리는 큰 ..
관리 하나가 예수께 나아와 죽은 딸을 살려달라고 청한다(18절). 예수께서 그를 따라가시는 길(19절)에 12년을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치유의 소망을 가지고 예수의 옷자락을 만진다(20-21절). 예수께서는 그를 보고 구원을 선포하셨다(22절). 예수께서는 관리의 집에 도착해 장례를 준비하는 자들을 내보내신 후(23-25절) 소녀를 살려내셨다(25절). 이 소문이 널리 퍼졌다(26절). 오늘 본문은 유명한 본문으로, 마가복음(막 5:21-43)과 누가복음(눅 8:40-56)에도 동일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묘사는 조금씩 다른데, 예를 들어 마태복음의 "관리"는 마가복음-누가복음의 "회당장 야이로"와는 달리 딸이 이미 죽었음을 알고 예수께 나아온다. 그럼에도 세 복음서 모두 동일한 액자식 구성..
오늘 본문은 제자도에 관해 가르치고 있다. 예수께서는 많은 무리를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셨다(18절). 그 곳에서 어느 서기관이 예수를 따르겠다고 하자(19절) 당신은 머리 둘 곳이 없으시다고 답하셨고(20절), 어느 제자가 아버지 장례를 치르겠다고 하자(21절)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22절). 오늘 본문은 다소 난해하다. 앞선 본문과의 연관성도 그다지 커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본문에 집중해서 해석해 볼까 한다. 먼저 본문에 등장하는 세 부류의 인물을 살펴보자. "무리"(18절), "서기관"(19절), 그리고 "제자"(21절)다.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예수께서는 무리를 피하셨지만(18절) 제자는 당신을 따르기를 원하셨다는 것이다(22절). 이 둘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18..
오늘 본문은 아마 전도서에서 1장 2절 이후로 가장 유명한 말씀일 것이다. 전도자는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권면한다(1, 7절). 나이가 들어 삶이 곤고하고 기력이 쇠하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하라(1-2절). 여기서 전도자는 창의적인 비유를 들어 노년의 삶과 죽는 순간을 그려낸다(3-7절). 몇 가지 비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를 원한다. 노년의 삶은 어떠한가? 우선 전도자는 명시적으로 이 때를 "아무 낙이 없"고 "곤고한 날"이라고 말한다(1절). 전도자는 눈이 어두워지는 것을 일월성신이 어두워지는 것에 빗대고, 머리가 빠지고 하얗게 되는 것을 비와 구름으로 비유한다(2절). "집을 지키는 자들", "힘 있는 자들"은 근육과 뼈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고, "맷돌질"은 치아를, "창들로 내다 보는" 것은 시력을..
전도자는 사람이 미래의 일을 알 수 없다고 고백한다(1절). 사람이 어떻게 살았더라도 결국은 악이 가득하여 죽고 말 것이다(2-3절).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낫다(4절). 이는 죽은 자들에게 돌아갈 몫이 영영히 없기 때문이다(5-6절). 따라서 기쁨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 옳다(7절). 외모를 단정히 하고(8절), 가정을 행복하게 꾸려라(9절). 일을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라(10절). 이는 죽은 후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10절). 이번 본문은 죽음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1-3절과 4-10절로 나누어 볼 수 있을 듯 하다. 전반부에서는 죽음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며, 죽음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가르친다. 의롭게 사는 사람이나 지혜롭게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들이 항상 좋은 결과를 얻..
오늘 본문은 삶과 지혜에 대한 통찰을 나눈다. 먼저 전도자는 삶과 죽음, 잔칫집과 초상집을 비교하여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할지를 가르친다(1-4절). 모든 사람의 끝에는 죽음이 있고(2절), 이것을 기억하며 사는 것이 지혜이다(4절). 우매한 자들은 생각 없이 즐기나(6절), 그를 따르느니 지혜로운 자들의 견책을 받는 것이 더 유익하다(5절). 오늘 본문은 격언 형태로 되어 있고 다양한 수사법이 사용되고 있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가장 먼저 전도자는 좋은 "이름"과 좋은 "기름"을 비교한다(1절). 기름은 향료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향기를 날리는 이름이 향료보다 낫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설령 그렇게 세상을 산다 해도 그보다 세상을 떠나는 것이 더 낫다(1절). 더..
본문은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13절)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이미 독자가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논리가 진행된다. 본문을 근거로 이야기를 재구성해보자면, 어느 나라에서 가난하게 태어난 젊은이가 감옥에 갇혀 고초를 당한 끝에(14절) 왕의 다음 자리에 올랐고(15절), 결국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13절)을 대신하여 왕위에 오른다(14-15절). 하지만 그가 죽은 이후 후세 사람들은 그를 좋게 평가하지 않았다(16절). 이 이야기는 요셉, 혹은 다윗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정확히 그들의 이야기와 대응되지 않는 걸로 봐서, 어쩌면 이 이야기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유명한 우화였는지도 모르겠다. 전도자는 이 이야기로부터 두 가지 상반된 교훈을 끌어낸다. 첫째는 지..
전도자는 인간의 판결이 불완전할 수 밖에 없음을 직시하며(16절), 언젠가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소망을 둔다(17절). 인간과 짐승은 하나님 앞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로(18절), 동일하게 죽음을 맛본다(19-20절). 어떤 이들은 두 존재의 운명이 다르다고 하나 이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21절). 따라서 사람은 현재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낫다(22절).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과 사후 세계에 대해 다룬다. 사람의 판결에는 악이 끼어들 수 밖에 없다(16절). 이는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공의를 베풀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심판만이 의롭다(17절). 따라서 사람의 판결에 실망하더라도 의로운 재판관이 언젠가 심판하실 것을 기대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전도자는 사후 세계에 대해 불가..
아하수에로와 하만은 에스더가 베푼 두 번째 잔치에 참석한다(1절). 왕이 다시 한 번 소원을 묻자(2절), 에스더는 이제 자신의 생명과 자신의 민족을 왕에게 구한다(3-4절). 그게 누구인지 묻는 왕에게(5절) 에스더가 하만을 지목하자(6절) 하만은 에스더에게 생명을 구한다(7-8절). 하지만 왕의 분노는 하만을 나무에 달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9-10절). 드디어 하만의 최후가 등장했다.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 속에서 에스더의 기지가 빛을 발한다. 에스더는 자신과 유다 민족의 멸망을 단순히 개인적인 비극으로 묘사하는 대신, 왕의 제국에 손해가 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4절). 그 결과 아하수에로는 에스더의 슬픔을 제국의 손해로 연결시켜 분노할 수 있었고(5절), 결국 하만을 제거하기에 이른다(10절). 본..
더 이상 그림자가 아니라 예수 그 분을 바라보라고 권면한 바울은 이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 세상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바울은 "위의 것"과 "땅의 것"을 구분짓는다(2절). 우리의 삶이 예전에는 땅의 것에 속했지만(7-8절), 이제는 그리스도에게 속했으므로(2-3, 9-10절) 그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죽음-삶의 도식으로 우리의 중생을 바라본다. 거듭남과 더불어 "땅에 있는 지체"는 죽었다(3, 5절).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고(1절), 재림 때 함께 영광을 누릴 것이다(4절). 그렇다면 이제 "옛사람과 그 행위"(9절)는 벗어 버리고(8절) 새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한다(10절). 바울은 5절과 8절에서 구체적인 죄를 열거한다. 5절은 마음의 죄, ..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서 드보라와 바락은 시스라의 마지막을 노래한다. 시스라를 죽인 야엘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24절). 그는 시스라를 귀하게 대접하였고(25절) 동시에 비참하게 죽였다(26절). 시스라의 어머니가 시스라가 늦는 것을 걱정한다면(28절) 시녀들은 시스라가 승리하여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올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29-30절). 하지만 이는 여자 앞에서 엎드러진 비참한 죽음으로 판명날 것이다(27절). 노래는 주의 원수들에 대한 저주와 주를 사랑하는 자들에 대한 축복으로 끝난다(31절). 드보라의 예언(삿 5:9)대로, 시스라는 여자의 발 앞에서 엎드러져 죽었다(27절). 그 영광은 바락이 아닌 야엘에게로 돌아갔다(24절). 본문은 아이러니를 가지고 시스라의 죽음을 묘사한다. 야엘은 시스라를 귀..
옷니엘이 죽고(삿 3:1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12절). 하나님은 모압 왕 에글론으로 그들을 치게 하셨고(12, 13절), 이스라엘은 18년 동안 에글론의 치하에 있었다(14절).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왼손잡이 에훗"을 세우셨다(15절). 에훗은 공물 바칠 때를 노렸다(15절). 그는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칼을 품고(16절) 에글론에게 나갔다(17절). 에훗은 에글론에게 은밀하게 말을 전하는 척 하며 사람들을 물리치고(18-19절), 둘만 남았을 때 칼을 빼어 에글론을 찔렀다(20-22절). 비둔한 에글론(17절)은 피와 기름을 흘리며 죽었다(22절). 이스라엘 백성은 미련한 행동을 다시 한 번 반복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교회가 이스라엘 지경 밖으로 확장되고 있던 그 때에, 헤롯 왕이 예루살렘 교회를 공격하여 야고보를 사형에 처한다(1-2절). 유대인들을 쌍수를 들어 환영하였고, 헤롯 왕은 베드로마저 잡아들인다(3절). 베드로는 철저한 감시 하에 투옥되었고(4절) 교회는 그를 위하여 중보하였다(5절).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6절), 천사가 나타나 족쇄를 풀어주고 잠긴 문을 열어주어 베드로를 밖으로 끌어냈다(7-11절). 베드로는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향했다(12절). 본문은 교회를 공격하는 세상의 세력과, 그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헤롯과 유대인들은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
공회에 끌려나온 사도들은(27절) 대제사장의 힐난(28절)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자신들을 변호한다(29-32절). 공회원들이 분노하고 있을 때(33절) 율법교사 가말리엘이 그들을 진정시켰다(34-39절). 공회원들은 사도들을 채찍질하고 경고한 후 놓아주기로 결정하였고(40절), 사도들은 공회를 나와서도 계속해서 증언을 쉬지 않았다(41, 42절). 분명 유대인들은 예수를 고소하면서 그의 피를 자기에게 돌리라고 말했다.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마 27:25)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대제사장은 자신들이 예수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며 뻔뻔한 태도를 보인다(28절). 그럼에도 사도들은 전혀 개의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는 예수가 죽지 않고 사셨기 때문이며(30절..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의 고별 설교를 담고 있다. 본문은 이스라엘에 평화가 찾아온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죽음을 앞두었다고 말하며 시작된다(1절). 사실 이 때 아직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다 정복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본문은 여호수아와 그 때의 이스라엘이 받은 사명을 다했기에 마치 가나안 정복이 완료된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 평화로운 때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불러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긴다(2절). 그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행하신 역사를 돌아보며(3, 9절)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 함께 하실 것이라고 고백한다(4, 5, 10절).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해야 할 책무가 있었다. 바로 율법을 지키며(6절) 이방 신을 멀리하는 것이었다(7절). 즉 ..
라합과 정탐꾼들 간의 대화가 끝나고, 이제 라합은 그들을 진영으로 돌려보낸다. 그는 그들을 "창문에서 줄로 달아 내"렸고(15절), 그들의 안위를 염려하며 조언을 해준다(16절). 정탐꾼들은 자신들이 줄을 타고 내려온 창문에 "붉은 줄"을 매어두면 그 집에는 손을 대지 않겠다고 약속한다(17-20절). 라합은 그들의 권면대로 창문에 붉은 줄을 매어 두었고(21절), 정탐꾼들은 라합의 조언대로 3일간 산에 숨어 있다가(22절) 진영으로 돌아가 정탐 결과를 보고한다(23-24절). 이들의 보고에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확신이 묻어 있었다(24절). 오늘 본문에서 눈에 띄는 것은 "창문"이다. 본문은 굳이 정탐꾼들이 빠져나간 방법과 그 이유를 길게 설명하고 있다(15절). 그리고 정탐꾼들이 라합에게 표식을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