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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의 마지막이다. 전도자는 다시 한 번 헛됨을 외친다(8절). 전도자는 사람들에게 지혜를 가르쳤고(9절) 지혜의 말을 기록으로 남겼다(10절). 이 지혜의 말은 듣는 이의 마음에 깊이 박힌다(11절). 하지만 공부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12절). 전도자는 자신의 교훈을 마무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고 권면한다(13절). 이는 하나님이 최후의 심판자이시기 때문이다(14절). 오늘 본문은 전도서의 시작 부분과 잘 대응된다. 전도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외치면서 자신의 교훈을 시작했다(전 1:2). 마무리 역시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로 끝난다(8절). 또한 시작 부분에서 전도자가 소개되었던 것처럼(전 1:1) 마무리 부분에서도 전도자가 소개..
오늘 본문은 아마 전도서에서 1장 2절 이후로 가장 유명한 말씀일 것이다. 전도자는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권면한다(1, 7절). 나이가 들어 삶이 곤고하고 기력이 쇠하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하라(1-2절). 여기서 전도자는 창의적인 비유를 들어 노년의 삶과 죽는 순간을 그려낸다(3-7절). 몇 가지 비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를 원한다. 노년의 삶은 어떠한가? 우선 전도자는 명시적으로 이 때를 "아무 낙이 없"고 "곤고한 날"이라고 말한다(1절). 전도자는 눈이 어두워지는 것을 일월성신이 어두워지는 것에 빗대고, 머리가 빠지고 하얗게 되는 것을 비와 구름으로 비유한다(2절). "집을 지키는 자들", "힘 있는 자들"은 근육과 뼈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고, "맷돌질"은 치아를, "창들로 내다 보는" 것은 시력을..
전도서는 슬슬 대단원을 향해 흘러간다. 이제 전도자는 청년의 때와 노년의 때를 비교하여 가르침을 베푼다. 빛은 아름다운 것이지만(7절), 그 빛을 보지 못할 날들도 장차 다가올 것이다(8절). 따라서 젊은 날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그 때를 만끽하되,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고 죄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하라(9-10절). 젊은이들은 흔히 미래를 생각하지 못한다. 전도자는 그들에게 "캄캄한 날들"을 생각하라고 권면한다(8절). 만약 노년의 어둠을 생각한다면, "눈으로 해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된다(7절). 전도자는 이 맥락에서 청년들에게 교훈을 베푼다. 젊은 시절을 근심 없이 즐기라. 다만 심판주가 계심을 인식하고 죄를 짓지는 말라(9절). 10절은 이를 잘 요약한다. "근심이 네 마음..
전도자는 본문에서 여러 가지 비유와 격언을 사용하여 미래를 알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먼저 그는 떡을 물에 던지면 다시 찾을 것이라고 말하며(1절), 먹을 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권한다(2절). 우리는 흔히 구름을 보면 비를 예측할 수 있고 나무는 쓰러진 자리에 그대로 머무른다고 생각하지만(3절),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기에(5절) 우리의 예측을 믿어선 안 된다(4절). 그러므로 아침에도 저녁에도 쉬지 않고 수고하여 위험 부담을 낮추라(6절).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 본문은 구름과 비의 관계, 그리고 바람에 의해 쓰러진 나무의 방향을 예로 들어 우리의 예측을 묘사한다(3절). 하지만 우리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5절). 본문은 당시 지식의 한계를 반영하..
어제에 이어 전도자는 우매와 지혜에 대한 격언을 남긴다. 우매한 자들의 말은 결국 스스로를 패망하게 한다(12-13절). 그는 장래를 알 수 없으면서도 큰 소리를 치고(14절), 아무런 소득 없는 수고를 반복할 뿐이다(15절). 망하는 나라는 권세자들이 우매한 나라요(16절), 흥하는 나라는 권세자들이 지혜로운 나라이다(17절). 게으른 것은 화의 근원이다(18절). 잔치와 포도주는 이로운 것이지만, 돈은 악하게도 쓰일 수 있다(19절). 남에 대한 험담은 주의해서 해야 한다(20절). 오늘 본문은 크게 보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우매와 지혜에 대한 전반부(12-15절)와, 격언 모음집으로 보이는 후반부(16-20절)이다. 하지만 나는 후반부도 우매와 연관지어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전반..
다시 격언 모음집이다. 큰 주제는 우매와 지혜로 보인다. 우매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전체를 망하게 만든다(1절). 지혜로운 사람은 성공할 것이지만, 우매한 자는 망할 것이다(2절). 심지어 우매한 자는 지혜가 없음을 이리저리 떠벌린다(3절). 주권자의 분노 앞에서는 겸손하라(4절). 주권자가 우매하면 재난이 된다(5절).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할 사람들이 낮은 자리에 있고 낮은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있게 된다(6-7절). 지혜가 없으면 제 꾀에 당하게 되고(8-9절), 미련하면 손발이 고생한다(10-11절). 오늘 본문은 우매를 경계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파리 시체가 향수에 들어가면 향수 전체를 못 쓰게 만드는 것처럼, 우매가 조금이라도 섞이면 지혜도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1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 같이 능력이 있는 자가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11절). 이는 분명 인간이 다룰 수 없는 "때"라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12절). 지혜는 분명 큰 것이요(13절), 강한 군대 앞에서 성읍을 구할 만한 것이지만(14-15절), 그렇다고 지혜자가 항상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15-16절). 지혜는 권력보다(17절), 무력보다(18절) 낫지만, 그 역시 악인으로 인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18절). 본문에서 전도자는 지혜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분명 지혜는 이로운 것으로(13절) 다른 여러 가지 가치보다 낫지만(17-18절), 그럼에도 지혜자가 항상 복과 성공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11, 15-16절). 이는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범위의 요소들 때문이다(12, 1..
전도자는 사람이 미래의 일을 알 수 없다고 고백한다(1절). 사람이 어떻게 살았더라도 결국은 악이 가득하여 죽고 말 것이다(2-3절).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낫다(4절). 이는 죽은 자들에게 돌아갈 몫이 영영히 없기 때문이다(5-6절). 따라서 기쁨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 옳다(7절). 외모를 단정히 하고(8절), 가정을 행복하게 꾸려라(9절). 일을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라(10절). 이는 죽은 후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10절). 이번 본문은 죽음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1-3절과 4-10절로 나누어 볼 수 있을 듯 하다. 전반부에서는 죽음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며, 죽음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가르친다. 의롭게 사는 사람이나 지혜롭게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들이 항상 좋은 결과를 얻..
전도자는 인과응보가 세상에서 성립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악인들이 잘 되는 것 같지만(9-12a절),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장수하고 잘 될 것이다(12b-13절). 세상에서는 악인 때문에 벌을 받는 의인이 있고, 의인 때문에 상을 받는 악인이 있다(14절). 따라서 세상을 살 때는 그저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좋다(15절). 하나님의 뜻은 설령 지혜자라 하더라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16-17절). 본문은 전도자가 관찰한 불합리한 사항과 그에 대한 신앙적 대답이 교차하여 등장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부분(9-13절)에서, 전도자는 사람을 해롭게 한 악인(9절)의 행위가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지는 것에 대해 절망감을 표한다(10절). 결국 그 징벌..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먼저 지혜를 예찬한다(1절). 그리고 왕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고 권한다(2-5a절). 지혜자는 때와 판단을 잘 분별하여서 화를 피할 수 있다(5b-6절). 일반적으로 사람은 장래 일을 알 수 없고(7절), 당면한 위기를 피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8절). 오늘 본문도 얼핏 보면 온갖 관련 없는 경구들을 다 뒤섞어 만든 잡탕찌개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혜에 관한 이야기가 앞뒤로 나오는 것(1, 5절)을 볼 때, 이것을 열쇠로 삼아 본문의 일관성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본문이 왕 앞에서 지혜 있는 사람이 행동할 강령을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도자는 반복해서 왕에게 순종하고 그를 노하게 하지 말라고 권한다(2-3절). 이는 왕이 권위 있는 자로서 마음대..
오늘은 지혜에 대한 잠언이다. 전도자는 스스로 지혜를 쫓았으나 잡지 못했음을 고백한다(23-24절). 지혜와 명철을 연구하던 그(25, 27절)는 음녀를 피해야 한다는 지혜를 얻었다(26절). 또한 여자에게는 지혜가 없음을 깨달았고(28절), 하나님의 창조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죄성이 문제임을 깨달았다(29절). 오늘 본문 역시 명백한 주제로 묶여 있지 않다. 다만 모든 경구들이 지혜와 연결되어 있다. 먼저, 전도자는 사람이 온전히 지혜를 취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역설한다(23절). 그 누구도 지혜에 "통달"할 수 없다(24절). 이는 지혜라는 것이 결국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같은 지혜를 인간이 어찌 가질 수 있겠는가(cf. 욥 38-41장)? 그럼에도 전도자는 지혜를 연구한다(2..
오늘 본문은 이전 본문에 연결되는 내용으로 보인다. 전도자는 먼저 지혜를 찬양하고(19절), 이어 온전한 의인이 존재할 수 없음을 가르친다(20절). 그리고 사람들의 평판에 신경을 쓰지 말라고 권한다(21-22절). 개역개정은 이 단락을 이전 단락과 나누어 놓았지만,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좀 더 일관성 있는 해석을 낳을 것 같다. 우선 이전 본문(전 7:11-12)처럼 지혜는 좋은 것으로 나타난다(19절). 이전 본문에서 지혜는 돈과 비견되었는데, 이번 본문에서는 권력과 비견되고 있다. 권력자 열 명의 권력을 합쳐 놓아도 지혜자의 지혜를 감당할 수 없다. 이는, 전 7:12를 따르자면,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혜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본문은 이어 두 가지 예를..
하나님이 하신 일은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다(13절). 오직 하나님만이 미래를 아시기에, 형통을 즐거워하고 곤고 가운데 반성하는 것이 옳다(14절). 항상 의인이 성공하고 악인이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15절). 사람은 지혜와 공의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더라도 망하고(16절), 지혜와 공의를 완전히 무시해도 망한다(17절). 그저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사는 것이 삶의 지혜다(18절).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인간의 유한함에 초점이 맞춰 있다.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항할 수 없고(13절), 하나님은 다 아시는 미래도 알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다(14절). 따라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하루하루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옳다. 만약 오늘이 형통하다면 그에 감사하며 기뻐할 것이요, 오늘이 곤고하다면 혹 ..
오늘 본문은 격언 모음집 같은 느낌이다. 어떻게 본문 연구를 해야 할까 생각해 보았는데, 짤막짤막한 경구들이라 하나씩 살펴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먼저 전도자는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낫다고 한다(8절). 이 구절은 지난 본문 1절과 대응시켜 보면 좋다. 거기서 전도자는 명성을 얻는 삶이 좋고, 그보다 더 이상 괴로움을 겪지 않아도 되는 죽음이 낫다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모든 일이 마무리되는 시점에는 더 이상 불확실성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시작하는 시점보다 낫다. 참는 마음과 교만한 마음은 1절의 "좋은 이름"과 관련시켜 이해할 수 있다. 좋은 이름을 내기 위해서는 교만하게 구는 것보다 참는 것이 낫다. 이어 전도자는 분노에 관한 격언을 준다(9절). 개역개정은 9..
오늘 본문은 삶과 지혜에 대한 통찰을 나눈다. 먼저 전도자는 삶과 죽음, 잔칫집과 초상집을 비교하여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할지를 가르친다(1-4절). 모든 사람의 끝에는 죽음이 있고(2절), 이것을 기억하며 사는 것이 지혜이다(4절). 우매한 자들은 생각 없이 즐기나(6절), 그를 따르느니 지혜로운 자들의 견책을 받는 것이 더 유익하다(5절). 오늘 본문은 격언 형태로 되어 있고 다양한 수사법이 사용되고 있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가장 먼저 전도자는 좋은 "이름"과 좋은 "기름"을 비교한다(1절). 기름은 향료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향기를 날리는 이름이 향료보다 낫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설령 그렇게 세상을 산다 해도 그보다 세상을 떠나는 것이 더 낫다(1절). 더..
그간 미국은 연휴였어서 큐티를 하루 건너뛰었다. 지난 본문에서 이어지는 본문으로 계속한다. 오늘 본문은 짤막짤막한 경구가 이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주제별로 끊어보자면, 식욕과 식탐(7절), 지혜의 유익과 헛됨(8-9절), 역사의 반복성(10절), 헛됨의 애가(11-12절)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주제는 먹는 것이다. 사람이 수고하는 이유는 결국 먹기 위함이다. 이는 창세기 말씀의 반영이다.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 하지만 자족하지 않는다면, 식욕은 완전히 채울 수 없다. 전도자가 계속해서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이 낙이라고 말하는 것을 감안할 때, 여기서 이야기하는 "식욕"은 1차적인 욕구로서의 식욕이 아니라 식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
전도자는 행복과 불행에 관해 가르친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대로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 중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권한다(18절). 재물과 부요도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부터 누리는 행복이 하나님의 선물이다(19-20절). 반대로, 주어진 환경 속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사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1절). 재물이 많더라도(2절), 장수를 누리더라도(3-6절), 그 가운데서 만족하지 못한다면 불행하다. 전도서의 중심 주제가 다시 등장한다. 매일매일 먹고 마시며 일하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라(18절). 이미 헛되다고 평가한 재물조차도, 그것을 누릴 줄 알고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줄 안다면 "하나님의 선물"이 될 수 있다(19절). 즉, 행복이 목적이 된다면 다른 모든 것들(부귀, 명예, 권세 등)은 도구로..
오늘 본문은 크게 두 가지 주제로 나뉜다. 불의한 세상에 대한 잠언(8-9절)과 물욕에 대한 가르침(10-17절)이다. 불의한 세상에 대해, 전도자는 불의한 자들을 판단하는 분이 계시다며(8절) 최종적인 심판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모든 인간이 먹을 것 앞에서 평등하다(9절)는 주제를 징검다리 삼아 물욕 이야기로 넘어간다. 물욕을 가진 자는 자족하지 못한다(10-13절). 죽을 때 가져가지도 못하는 재물로 인해 평생 고생만 하게 될 것이다(14-17절). 전반부는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지난 본문에서부터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인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세상의 불의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다. "빈민을 학대"하고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자들은 결국 그들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기 때..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하나님 앞의 태도에 대해 가르침을 베푼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는 발을 삼가고(1절),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말며(2-3, 7절), 하나님께 드린 서원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4-6절). 이 모든 것은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7절)라는 말로 정리될 수 있다. 먼저 발을 삼가는 것의 의미(1절)에 대해 생각해 보길 원한다. 해당 구절에서 전도자는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과 "제물 드리는 것"을 대조하고 있다. 이로부터 형식적인 제사는 발을 삼가지 않는 것에 해당한다고 유추할 수 있다. 여기서 이사야 말씀이 떠오른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2) 함부로 성전에 들어서는 행위는 "..
본문은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13절)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이미 독자가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논리가 진행된다. 본문을 근거로 이야기를 재구성해보자면, 어느 나라에서 가난하게 태어난 젊은이가 감옥에 갇혀 고초를 당한 끝에(14절) 왕의 다음 자리에 올랐고(15절), 결국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13절)을 대신하여 왕위에 오른다(14-15절). 하지만 그가 죽은 이후 후세 사람들은 그를 좋게 평가하지 않았다(16절). 이 이야기는 요셉, 혹은 다윗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정확히 그들의 이야기와 대응되지 않는 걸로 봐서, 어쩌면 이 이야기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유명한 우화였는지도 모르겠다. 전도자는 이 이야기로부터 두 가지 상반된 교훈을 끌어낸다. 첫째는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