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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7:19-22 본문
오늘 본문은 이전 본문에 연결되는 내용으로 보인다. 전도자는 먼저 지혜를 찬양하고(19절), 이어 온전한 의인이 존재할 수 없음을 가르친다(20절). 그리고 사람들의 평판에 신경을 쓰지 말라고 권한다(21-22절). 개역개정은 이 단락을 이전 단락과 나누어 놓았지만,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좀 더 일관성 있는 해석을 낳을 것 같다.
우선 이전 본문(전 7:11-12)처럼 지혜는 좋은 것으로 나타난다(19절). 이전 본문에서 지혜는 돈과 비견되었는데, 이번 본문에서는 권력과 비견되고 있다. 권력자 열 명의 권력을 합쳐 놓아도 지혜자의 지혜를 감당할 수 없다. 이는, 전 7:12를 따르자면,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혜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본문은 이어 두 가지 예를 제시한다.
먼저, 지혜 있는 사람은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않는다(전 7:16). 이는 온전한 의인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20절; 롬 3:10-12). 이로부터 우리는 의인이 되려는 사람이 왜 "스스로 패망"한다(전 7:16)고 전도자가 가르치는지 알 수 있다. 아무리 의인이 되려고 몸부림 치는 사람이라도, 어딘가 흠은 발견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그 틈을 타고 그가 평소에 보이던 의로움을 고깝게 여기던 자들이 그를 공격해 멸망시킬 것이다.
다음으로, (연결되는 이야기지만) 다른 이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않는다(21절). 나 역시 다른 이들을 종종 헐뜯었으니(22절) 누구나 나를 헐뜯을 수 있다. 흔히들 하는 이야기처럼, 내가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데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는 없다. 내가 내 종이 나를 헐뜯는 이야기를 듣는다면(21절) 그것은 누구에게 이롭겠는가?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나를 욕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일희일비하지 말라.
종합해 보면, 전도자가 말하는 지혜는 나의 나 됨을 인정하고 다른 것에 흔들리지 않는 것을 가르친다. 고귀한 가치에도, 세속적인 평판에도 나 자신을 묶어두지 말고, 그저 묵묵히 하루하루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cf. 전 7:14)이 지혜이다. (본문의 구조를 보건대, 11절부터 22절까지는 묶여서 점층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이 단락에서 전도자는 지혜의 가치를 찬양하고 그 지혜에 따른 처세술을 가르친다.)
본문의 가르침을 다른 말로 하자면, 본분을 지키라는 말이 되기도 한다. 내게 주어진 본분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남들의 말에 휘몰리지 말고, 지혜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하루하루 감당하며 살아가는 내가 되기를 원한다.